초자연현상처리반은 괴담과 같은 이상현상을 관리하는 괴담격리픽션물이다. 요원들은 사건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쐐기’를 확보하고 이상현상을 해결하는 반복적인 구조를 띄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요원들은 계속해서 희생되고 그 희생으로 새로운 요원이 보충된다.
한국총력고, 땅끝마을, 십장생도, 암흑색맹, 절망향의 다섯 에피소드는 모두 특색 있는 설정들을 바탕으로 하였다. 땅끝마을에서는 정신이 바다에 잠기듯 침식당하거나 저택에서 고요함을 유지하면 잡아먹힌다는 등 해안 시골의 한적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하나의 괴담이자 이상현상으로 창작하였다. 십장생도는 없으면 섭섭할 클래식한 조직과 전개가 나온다. 이상현상을 이용하여 수익을 올리는 조직, 이상현상의 개체들 간 관계를 이용하여 이상현상과 맞선다거나, 전이규칙을 이용하여 도로와 함께 진입하는 등 그야말로 초자연현장처리반의 유능함을 보여준다. 그 와중에 십장생을 전부 만나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떡밥도 독자의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십장생이 전부 모이기까지의 과정도 예상을 살짝 비틀어 지루하지 않게 설계했다. 또한 땅끝마을에서 인물들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이상현상의 규칙으로 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구조도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전체적으로 모든 에피소드에서 주요한 설정들은 단순한 긴장감 고조가 아닌 인물들의 캐릭터성을 드러내는 도구로서도 사용된다.
또 다른 특징은 에피소드를 아주 깔끔하고 매끈하게 깎아냈단 점이다. 괴담물에서 패턴을 알아내기 위해 삽질하고, 이상현장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것을 어떻게 해왔고, 무슨 시행착오가 있었으며 어떤 원리로 되는지 등등.. 그런 것들은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 정확히는 그런 광대한 과정을 생략하고 시점을 ‘어느 정도의 규칙을 확인한’ 순간에서 시작한다. 이건 설정놀음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아쉬울 수 있으나 자칫하면 어설퍼지거나 캐릭터보다 이상현상에 초점이 갈 여지를 과감하게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절망향에서는 암흑색맹의 특징을 이용하여 서로 교감하고 의지를 다지며 절망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해내긴 하지만 ‘어떻게’에 해당하는 자세한 원리 같은 설명은 없다. 십장생도 정도가 그 규칙과 이상개체를 자세하게 다루고, 땅끝마을 같은 다른 에피소드에선 이장이나 다른 주민들에 대한 설정은 언급 정도만 해둔다. 그들은 낮에 활동하기에 밤에 움직이는 처리반이 굳이 하나하나 설명하고 설정을 풀 이유도 없으니까. 필요하지 않다면 생략한다. 이런 매끈한 생략 또한 이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메시지에 관해서는 해석이 쉽지 않았다. 리뷰의 필자가 워낙 공포적인 묘사에 시선이 쏠렸기도 하고 초자연현상의 콘셉트가 워낙 좋아 달보다는 그를 가리키는 손가락 자체에 시선이 더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언급되는 공통적인 부분에서 추론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죄도 짊어지지 못한다는 존재라는 거다. 한태준의 말처럼 타인의 죄를 짊어진다는 건 오만한 생각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원죄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타인을 구할 수 없느냐.”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가능하다는 게 작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한태준을 구한 건 그가 구한 황예담이다. 한태준은 황예담의 죄를 짊어진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품고 희생한 예수 같은 존재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를 구했고, 그녀의 존재는 절망향의 해결로 이루어졌다. 아마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작품 설명의 ‘믿음’이 아닐까. 타인의 죄를 짊어지기엔 나약한 우리는 자격이 없고, 그 이유를 찾기에는 세상은 너무나도 어렵다. 그렇기에 자격도 이유도 아닌 비논리적이고 희망 같은 믿음, 그것이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고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마치며, 앞선 설명과 같이 초자연현상 하나하나가 설정이 독특하다. 동시에 난잡하지 않게 각종 추론과 공략과정은 생략하고 몰입과 가독성을 위한 맥거핀이나 죽은 설정들도 처냈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이 있다면 에피소드의 분량과 수이다. 분명히 깔끔하기는 하나, 각 에피소드의 분량이 더 길고, 그 종류 또한 더욱 많았어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그렇게 한다면 분명 다른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생긴다는 걸 알지만 그 반박은 외전이나 후속작으로 받겠다.
날이 더워지는 봄과 여름의 사이의 어느 날, 나는 후속작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