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SNS 계정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X로 부르기는 싫은 트위터, 블루스카이, 인스타그램, 스레드. 블로그 플랫폼을 포함하면 포스타입이나 네이버 블로그도 여기에 해당되겠지요. 그러나 올리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심지어 올려야 하는 것도 귀찮아서 잘 올리지 않습니다. 특히 인스타그램을 제대로 하려면 사진도 잘 찍고 보정도 잘 먹여야 한다는 점이 그렇게나 귀찮더군요. 카메라를 잘 다루지도 못합니다. 필요에 따라 SNS를 여럿 파기는 했지만, 실상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습니다.
15년 전에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트위터에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그런 와중에도 팔로워를 신경 쓴 적은 없습니다. 수천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가 지인 중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부러워하거나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공지용 SNS 계정을 운영하다보니, 팔로워 수가 제 브랜드의 영향력의 기본 지표라는 것이 어느 정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팔로워를 늘리기 위한 행위를 할 것 같지는 않지만요. 그런 것에 연연하지 못하는 것이 저의 천성인 탓입니다. 좋게 말하면 초연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인기나 유행에 편승하는 것을 싫어하는 소위 ‘홍대병’ 같은 것입니다.
반면, 송로 작가님의 <소원은 팔로워 딱 105명>의 주인공 ‘나’는 누가 보아도 SNS에 중독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기에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해 숫자 119에 대한 강박적인 공포와 혐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공유할 만한 비슷한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주인공 ‘나’에게 큰 공감은 갖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이 소설의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꼭 소설의 성공이 ‘주인공에게 독자가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가’로 판가름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제가 느낀 감정은 당혹감에 가까웠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렇게까지 기피할 이유가 있나? 그런 물음말이지요. 119라는 숫자의 조합은 꼭 ‘나’가 기피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어도 우연한 숫자의 조합으로도 흔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실, 작품 중 스레드 팔로워 숫자에서 119라는 숫자 조합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불과합니다. 마치 밤중에 시계를 보면 11:11이나 22:22가 자주 뜨는 것과 비슷하죠. 물론 우연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그것이 개인에게 어떤 경험이나 감정을 불러온다면 이를 ‘징크스’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징크스의 내용과 영향력에 따라서는 한 사람의 목숨이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주인공 ‘나’가 겪는 징크스의 수준은 마치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119, 숫자 세 개의 조합만으로 트라우마가 재생되고 공황을 겪는 수준의 징크스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작품을 곱씹고 있으면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습니다. 구태여 따지자면 이 징크스는 억지를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을 쉬이 떨쳐내기 힘듭니다. 가장 단적인 그 증거를 이야기하자면, ‘나’가 우울증에 의한 자해로 정신병동에 입원된 시점에서 팔로워 수는 1190명이 아니라 1900명이었습니다.
작중에서 드러나는 내용을 보면 주인공 ‘나’는 왕따를 당해 자해 소동을 했고, 두려운 마음에 스스로 119에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119는 ‘나’를 괴롭히는 주체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를 응급 상황에서 도와준 존재입니다. 트라우마라고 부를 만한 그날의 기억으로 이어질 수는 있어도, 그 숫자 자체가 트라우마가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사고의 연결방식은 다른 법이니, 이에 대한 반론이 이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작품에서 보이는 것만 두고 이야기하자면, 본인이 두려운 마음에 살고 싶어서 119를 불러놓고, 119라는 숫자를 강박적으로 혐오하고 기피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적반하장에 징크스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기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만은 때때로 훌륭한 생존전략이 됩니다. 작중에서 ‘나’가 독백하듯, SNS는 현대인이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고, SNS에서 기만은 당연한 것입니다. 가볍게는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 사진에 보정으로 떡칠을 하는 것부터, 무겁게는 ‘선동과 날조’까지 포함해서요. ‘나’의 기만은 대체로 가벼운 축에 속합니다. 출판사와의 계약까지 아슬아슬하게 닿을 정도고, 자신의 인기를 이용해 남자들과 놀 정도면 조금 무거워지긴 했지만, 끝내 다시 가벼워집니다. SNS의 성장세가 뜸해지면서요.
SNS의 성장세가 주춤한다는 것을, 기만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것을, 그리고 하필 그 과정에서 119라는 숫자가 따라붙는다는 것을, ‘나’는 견디지 못합니다. 이것들이 전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적반하장을 기만으로 숨긴 119 징크스도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게 들통 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숫자 119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은 진짜 징크스가 아닙니다. 사실 ‘나’에게는 징크스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냥, 날 것의 자신을 버티지 못할 뿐이지요. 물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그렇다면 기만이라도 잘 했어야 합니다. 슬프게도, ‘나’는 실패했습니다.
기만이 생존전략이 된 시대입니다. 그러나 기만의 방향은 타인을 속이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나 자신을 기만하는 것까지 나아갑니다. 자신을 잘 포장하고, 그 포장을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을수록 잘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SNS는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방법이고, 저 역시 이에 동의합니다. 타인을 향한 ‘나’의 전략은 거의 성공할 뻔했습니다만, 119 징크스로 스스로를 포장하려는 자기기만은 실패했다고 봅니다. ‘나’의 몰락은 거기서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지요.
아마 마지막 순간에 105명의 팔로워를 채웠어도, ‘나’는 언젠가 또 비슷한 이유로 몰락할 것입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한 포장지를 바꾸지 않는 한 말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적어주신 송로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