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없애주는 신약이 개발됐습니다! 이름은 올나이트.
말 그대로 인간의 생활 반경을 밤 전역으로 확대해주는 혁신적인 약.
한국인들이 이걸 어떻게 참습니까? 경쟁과 유흥의 민족. 올나이트는 날개 돋힌 듯이 팔려 나갑니다.
그러나 수면에는 치유의 효과도 있었던 것인데, 단지 기능적인 면에만 치중한 약물은 이를 간과하였지요.
불 붙은 욕망으로 남용되는 약물이 뇌 손상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로 과열되는 한국 사회가, 작은 학급 단위부터 들끓습니다.
제가 읽기에 작가님 글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1. 합리적이고 간결한 진행
소설 도입부에서 올나이트가 소개된 후, 곧장 제약회사를 다니는 주인공 아빠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약의 작용 기전을 알려주는 부분인데요. 어렵지도 않고 논리가 명쾌합니다.
동시에 약을 둘러싼 쟁점이 몇 가지 제시됩니다. 정부의 일반의약품 허가, RK홀딩스의 로비, 과다복용에 의한 부작용 주의, 엄마의 동생에 대한 아픈 기억 등.
가족 간 대화의 빠른 진행이지만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와중에도 상황 풀이에 개연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약회사 로비받아서 사악한 약이 허가됨’이라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었습니다. 밤낮 구별이 없어짐에 따른 경제활성화를 노린 정부의 셈법이나, 다소 부정한 로비가 있음을 알면서도 좋은 취지로 넘어가자며 가족들에게 비밀엄수를 시키는 아빠의 묘사 등 현실성을 챙긴 디테일이 훨씬 풍성합니다.
이러한 풍성한 이야기를 빠르고 과감하게 제시하며 물 흐르듯 통과시킨다는 것. 이것이 참 좋은 장점으로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독자로서 시원시원하게 읽히는 맛이 좋았습니다. 단편 치고는 분량이 적지 않은 편인데도 말이죠.
2. 현재 한국 사회의 쟁점을 널리 포섭하는 것
글의 소재도 그렇고 배경도 그렇고, 경쟁에 미친 한국 사회를 정확히 표적 삼은 소설입니다.
수능을 향해 달리는 고3 학급이나, 오픈런을 위해 새벽같이 줄 서는 사람들이 나오는데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올나이트라는 소재와 연결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잘 포착하신 셈입니다.
다만 우리와 가까운 만큼이나 풍자로 삼기에는 조심해야 할 텐데, 이 소설은 일단 올나이트가 원흉이기 때문에 ‘경쟁에 미친 한국 사회’가 묘사되어도 거부감이 없습니다. 우리가 직접 지적당하는 게 아니니까요.
이렇게 출발한 ‘과열경쟁과 서로 속물이 되어가는 관계’라는 우리 사회의 쟁점은, 후반부 드러나는 형서의 과거에서 좀 더 직접적으로 비판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거부감이 없습니다. 이미 위에서 한 단계 거쳐 들어온 쟁점이기도 하거니와, 형서 역시 속물이나마 그들과의 관계를 필요로 했다는 고백이나, 여전히 가영이를 좋아하고 이해한다는 말을 함으로써, 이것은 형서 본인의 입체적인 이야기가 되었고, 그래서 독자는 사회비판보다는 우선 ‘형서의 이야기’로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시작부터 ‘우리 사회 비판’이라고 깔고 들어가면 사실 보수적인 독자는 경계하면서 봅니다. ‘이 작가가 그 현상의 복잡한 여러 층위를 세심히 살피고 비판하는 게 맞나?’ 하지만 잘 조형한 등장인물에 제대로 이입한 뒤라면 경계심은 이미 허물어집니다.
물론 위에서 보았듯 이 글이 실제로 현실적 디테일을 챙기는 풍성함을 갖추고 있더라는 점도, 독자가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데 크게 작용했습니다.
작가님의 의도가 실제 풍자였든지 아니면 단순히 소재 차용에 불과했든지 간에, 이처럼 우리 사회와 밀접하게 결합되면서도 무난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3. 등장인물에 대한 공감대 형성
위 1, 2에서 자연스럽게 뻗어나오는 장점인데요.
등장인물의 합리적인 행보와 입체성 있는 묘사,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인 점 등등이 모두 결합되어 인물에 쉽게 이입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여진, 조력자 형서뿐 아니라 중간에서 흔들리는 아빠, 심지어 문제를 일으키는 주인공의 엄마, 가영이에게도요.
특히 엄마가 점차 돈에 혈안이 되어 뻥튀기를 팔다 이런저런 사건이 겹치며 감정이 격해져 폭주하는 씬은, 그 고조되는 현장감이 일품입니다. 이를 두고 가영이가 ‘내가 중간고사를 망치면 다 네 엄마 때문이다’라고 쏘아붙이는 것이 화룡점정이죠. 그 현장뿐 아니라 올나이트가 만들어내고 있는 이 상황 전부가 어떤 극한으로 치닫고 있음을 단박에 깨닫게 해주는 굉장한 연출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1, 2, 3의 장점이 서로를 보강하고 더 튼튼하게 만들어주기에, 독자는 이 소설을 막힘없이 순식간에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현실을 담아낸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소설이니까 소설로서’ 편히 읽히는 일종의 경지라고 할까요.
그러면 제가 한편으로 짚고 싶은 아쉬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후반부 이야기라서, 스포일러 달겠습니다.
우선 구조적으로 제가 가장 주목한 부분입니다.
1. 결말의 아쉬움인데요.
이 소설은 결말을 내는 방법으로 형서 엄마의 회사 증거인멸 시도 폭로 -> 민소리 기자의 재기를 노리는 올나이트 매각 계획 폭로 -> 진실을 알리는 기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여진의 수순을 취합니다.
하지만 소설 중간 부분과 이 결말 사이 연결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중간까지는 이런 결말을 향해서 달리고 있다고 기대된 소설이 아니었다고 할까요?
a. 올나이트를 개발한 회사가 세상에 혼란을 안겼음에도 부정하게 증거인멸을 시도했으니, 이를 단죄하는 구도로 끝맺는 것은 타당합니다.
하지만 그 후, 올나이트를 버리지 못한 사장이 재기를 꿈꾸며, 외국회사에 특허를 매각한다는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지요. 후반부에 갑자기 새 쟁점이 추가되었다가 다시 폭로로 금세 끝나버리면 사족이라고 생각됩니다.
b. 여진이 소설 도중에 진로에 대한 방황, 또는 기자라는 직종에 대한 적대감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위와 같은 이야기가 주로 제시되었다면, 결말에서 여진이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는 것은 그 자체로 확실히 각성, 또는 치유로서 완결성을 가집니다.
그러나 이 소설 흐름의 중심은 그게 아니죠. 이야기의 주 갈등은 여진의 엄마와 절친인 가영의 플리핑, 즉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너지는 데 있습니다.
지금의 결말은 해피엔딩인 것 같긴 한데, 엄마의 회복은 다른 중간 묘사가 생략된 채 기억이 없다고만 나오니, 민소리 기자의 폭로 같은 다른 요소로 ‘사건 잘 해결됐다’라며 넘어가기에는 뭔가 찜찜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흐름이 완결성을 갖추어 맺어지기 위해서는, 그 관계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에 초점을 맞춰야 했으리라 봅니다.
대개 좀비 바이러스 이야기의 정석적인 결말은 백신 개발이죠. 마침 여진의 아빠와 형서의 엄마가 모두 제약업 관계자니까, 이를 활용해서 주인공과 형서가 모종의 에피소드로 그들의 마음을 돌리고, 엄마와 가영이의 인지 능력을 회복시키는 백신 개발에 힘을 쏟게 하여 성공시키는 흐름이 무난했을 것입니다.
여진이 기자로서 꿈을 품게 되는 것은 그 이후의 희망을 상징하는 부분으로, 이를테면 결말을 빛내는 장식 같은 것이지(물론 클리셰에 비해 실질적 의미는 여기가 더 크겠지만), 이것이 메인 결말이 되어버리면 본래 결이 달랐던 메인 줄거리를 따라온 독자는 ‘어라 갑자기’ 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현실성이 떨어지는 흐름
후반부에 RK홀딩스가 증거인멸을 위해서 올나이트 중독자들을 모아 플리핑 환자들을 사냥하도록 시킨 대목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유령회사를 차려서 추적이 미치지 않게 신경썼다고는 하나…
사실 이런 이야기는 현실성이 떨어지죠. 플리핑 환자들은 병원과 공권력의 보호 내지 감시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완전한 아포칼립스가 아니라 여전히 질서가 살아 있는 한국 사회란 말이죠. 그런 상황에 청부살인이나 마찬가지인 행위를 기업 단위로 시도할 수 있을까요?
책임자의 해외 도피가 훨씬 현실적인 대처였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합리적인 개연성이 장점이었던 소설의 중반부까지와 좀 어긋나는 듯합니다.
위 1. 에서의 무난한 결말을 보강하고 민소리 기자를 활약시키기 위해, 사장 외에 구체적인 흑막을 따로 파헤치는 에피소드가 대신 들어가는 것도 구조적으로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 플리핑 환자들의 식탐에 대한 묘사 보강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중요성은 떨어집니다만 읽으면서 응? 했던 부분입니다.
여진이 형서에게 달라붙은 동급생들을 떼어내기 위해 사방에 콜라를 뿌린 대목인데요.
‘가영이 콜라를 좋아하니까 가영이 형서에게서 떨어지는 것은 알겠어.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왜?’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아빠가 플리핑 환자를 떼어놓기 위해 치킨을 던지자는 이야기가 나오고서야, 올나이트의 부작용 중에 식욕 증진이 있었다는 게 기억났어요. 중간에 엄마가 밥을 많이 먹는 묘사도 한 번 나오긴 했습니다만, 이건 본격적으로 플리핑되기 전이고, 플리핑 환자가 ‘배고파서’ 사람을 물어뜯는다는 묘사는 없었어서요.
엄마가 오픈런 당시 보여준 행동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저는 그 물어뜯는 행위가 분노에 취한 공격 행위였다고만 기억했습니다. 식욕과는 연결하지 못했어요. 그 부분에 대한 보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보통 리뷰 쓸 때 장점에 대한 감상만 쓰는 편인데, 명시적으로 비평도 허용하신 참에 한 번 감히 이렇게 써보았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보다는 장점이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어쨌거나 상당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흔쾌히 읽었고, 여진과 형서에 대한 흐뭇한 감상이 남은 글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장점을 소유하신 작가님이 참 부럽습니다. 저는 이렇게 우리랑 가까우면서도 쉽게 읽히는 글은 잘 못 써서…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최근 작가님께 출간과 수상 등 이런저런 좋은 소식이 많더군요, 축하 말씀 더불어 드립니다. (여담입니다만 한 가지 같은 공모전에서 먼저 수상하신 선배 작가님이시고 육아 동지기도 하시어, 혼자 공연히 내적 친밀감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쭉 건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