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을 끝없이 헤매는 용사, 괴물과 모험, 사랑하는 연인과의 조우 이 모든 익숙한 판타지의 세계에서 어떤 딱 하나의 컨셉이 사람의 긴장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이 익숙한 세계에서 얼마나 끝내주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바야흐로 판타지의 시대다. 현실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가고 핸드폰을 쓰는 사람들이지만 판타지는 우리 아주 가까이에 와 있다. 지하철 광고판에서는 용이 날아다니고 핸드폰을 열면 언제든지 던전에서 전투를 시작할 수 있으며 회사 화장실에서는 사람들이 빡치는 순간을 참아내기 위해 몰래 퍼즐게임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판타지의 세계에서 <Amnesia>는 10분이라는 아주 짧고 긴박한 순간의 모험을 제안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용사는 무한히 시간을 되돌려 절대로 죽지 않는 혹은 무수히 많이 죽는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마치 게임처럼 절대로 죽지 않는 용사가 되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재시작을 경험하는 용사를 목격한다. 그렇지만 그 용사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한 게임처럼 죽었다 살아났다 하는 것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니다.
용사가 사랑하는 사람은 용사의 죽음을 통해 구원받았고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죽음은 그래서 그들 사이의 사랑을 좀 더 끈끈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너의 모든 희생, 너의 모든 사랑, 네가 할 수 없는 것을 내가 해나가는 것의 아름다움이 찬란한 비극을 이끌어낸다. 읽으면서 내내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잃는 과정까지도 좋았다. 용사는 사랑을 위해서도 임무를 위해서도 자신의 죽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그의 운명에 주어진 가시관 같은 명예였다.
Amnesia는 기억상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 어떤 기억들을 잊어버리며 살아간다. 그것이 사소한 기억일 때에는 그저 잊어버리는 것으로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기억인데도 계속해서 잊어버릴 정도로 자신의 삶에 충격을 주고 있다면 어떨까? 어떤 목적을 위해서 끝없이 자기자신을 마모해가는 용사와 그와 대적하는 마왕의 존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동료들, 자신이 지켜야 하는 모든 것들마저 그런 충격들 사이에 잊혀져버린다면 어떨까? 용사의 삶에 충격하는 거대한 기억상실의 고통과 위대함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웠다. <Amenesia>에는 익숙한 판타지 세계에서 10분간의 제한 속에서 맞이하는 죽음과 삶과 영광과 사랑, 그리고 용사의 인간적 고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현실의 내가 겪는 충격과 고통, 그리고 아무것도 위대하지 않은 나의 현실을 잊게 만드는 즐거움으로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