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웠던 점 넋두리 공모(감상)

대상작품: 기적을 부르는 복서 (작가: 한대오,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3시간 전, 조회 10

작가의 말에 적은 대로 라이트 문예 느낌이 나는 작품이었다. 아마 이대로 출간되어서 책의 형태로 작품을 읽었어도 아마추어의 글이라는 생각은 안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이 안정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이후 언급할 모든 아쉬웠던 점을 모두 무시하고 그냥 이대로 어디 공모전에 냈는데 덜컥 당선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아무것도 고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아래로는 아쉬웠던 점을 열거하겟지만 그런 느낌 또한 준 것이 이 작품이다.

나는 이번 달 초에 노스탤지어를 느껴서 좋았다는 취지의 추천글을 썼다. 그러나 이번에는 작품의 식상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노스탤지어와 식상함. 둘의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정답은 모른다. 다만 횟수의 차이는 아니다. 100번 반복해서 접한 클리셰에서 노스탤지어를 느낄 수도 있고, 10번 남짓 본 클리셰에서 물릴 정도의 식상함을 느낄 수도 있다. 취향에 맞는 사람이 맞으면 장르가 되고 아니면 식상하다고 얘기하는, 그러니까 단순히 선호도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직관적으로 느낀 이 인상이 비평이 아닌 감상에 있어서는 전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음료수를 마시고 ‘너무 달다.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음료수에는 설탕이 1g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렇다면 사실 음료수는 달지 않았고 내가 느낀 감상 또한 착각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설탕이 아니더라도 다른 단맛이 나는 첨가제가 들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느낀 인상을 가감 없이 적어보도록 하겠다.

앞서 나는 식상하다고 했는데, 이를테면 내가 처음으로 낙담한 지점은 재벌 2세로 보이는 안하무인 속성의 캐릭터 ‘남용’이 주인공을 괴롭히기 위해 주인공과 친구들이 키우는 토끼를 납치해 불러들인 후, 자기 수행원들을 동원해 주인공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었다. 측근 중 한 명은 전직 프로 복서이기도 해서 주인공과의 대결이 성사되기도 한다. 싸움이 끝난 후 친구가 남용의 발언을 녹음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걸 공개한다. 이로 인해 남용은 처음에는 지탄을 받지만 이윽고 대중들은 망각한다.

사실 하나하나만 떼놓고 보면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장면일 수도 있다. 주인공을 가르치는 인물 ‘태국’은 한때 잘 나갔지만 교통사고를 당해 은퇴한 복서이고, 말투는 사투리에 험하지만 속은 따뜻하다.

주인공을 도와주는 앨리스라는 인물 또한 처음에는 복서를 돈벌이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나 역시 속은 따뜻하다.

히로인 격인 주아는 주인공이 복싱을 해야 하는 동기이자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다. 고등학생이었던 그녀는 ‘버티는 힘’이라고 표현되는, 자기를 괴롭히는 가해자를 상대로도 발휘되는 박애의 도덕적 지침을 완성한 인물로, 간단히 말하자면 성녀의 역할을 한다. 그녀는 남용과의 사건에서 의식을 잃은 후 결말에서 주인공을 용서한다.

그 외에도 훈련이야 물론 하지만 경기의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어김없이 작용하는 정신론에 기반한 퍼포먼스, 주인공이 경기를 펼치는 세 명의 복서가 가진 사연, 주아의 후유장애 보장금을 노리고 부모 행세를 하려는 주아의 친모, 그에 쓰러지는 주아의 보호자인 할머니, 억까를 하자면 그냥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울분과 가난을 복싱으로 해결하려한다는 소재 자체. 앞서 말했듯 아마 이것은 하나하나 떼놓고 보면 크게 문제가 없다. 다른 작품에서 이런 클리셰를 보면서도 의식하지 않고 넘어가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클리셰를 다 때려 박은 것조차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결국은 클리셰라는 뼈대를 감출 수 있는 다른 내실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여기서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기출간된 라이트 문예 작품들을 읽으면서도 종종 느꼈던 것이다만 짧은 분량에 완결된 내용을 집어넣느라 후반부는 내용을 꾹꾹 구겨 담아놓은 느낌이 든다. 과정이 압축되다보니 주인공이 4체급 석권을 했다는 업적이 괴리감을 일으킨다. 다만 이 부분은 (라이트 문예의 타겟층인)10대 독자가 읽으면, 그러니까 이를테면 나 자신이라도 중고등학생 때 읽었으면 느끼지 못 했을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시절에는 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커서 보니 훨씬 분량이 짧았던(나는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를 1500쪽 정도의 엄청나게 기나긴 이야기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대의 시선에선 이 작품이 풍성하게 느껴질지는 그들의 말을 들어보아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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