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으로 단맛은 극단적으로 쓰게 느껴진다 감상

대상작품: 상처 많은 영혼, 당도 최고 (작가: 김뭐시기,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2시간 전, 조회 7

줄거리

 

주인공의 심리 분석

이 소설의 주인공은 ‘상처 많은 영혼’이라는 제목처럼 깊은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생일날 혼자서 “왜 태어났니”라고 노래하는 장면은 그의 자기부정과 절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도박 중독자 부모 아래서 이 집 저 집을 떠돌며 살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친가와 외가 모두에게 버림받은 그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라는 깊은 자기혐오에 시달린다.

고등학교 시절의 학교폭력은 그의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현유나에게 체육복을 빌려달라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무력함, 룸카페에서 강제로 음식을 먹어야 했던 굴욕, 술에 취한 채 남자들에게 넘겨졌던 폭력의 기억. 주인공은 이 모든 것을 “죽고 싶었다”는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책잡히지 않으려고 올바르게” 살았고, “제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쳤다.

이러한 주인공의 심리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복수심과 죄책감이 뒤엉켜 있다는 것이다. 현유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살기를 띠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났을 때는 “속으로는 덜덜 떨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양경문에 대한 분노는 더욱 복잡하다. 동희가 죽기 전, 자신이 헤어지라고 조언한 것이 동희의 폭력 피해로 이어졌고, 그 일로 동희를 만나지 않았던 것이 평생의 후회로 남았다. “나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무서웠다”는 고백은 주인공이 느끼는 죄책감의 깊이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악마에게 복수를 의뢰하면서도 “그동안 올바르게 살아온 내 인생을 위해 그냥 새신부 속이나 긁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오히려 역설적이다. 그는 자신이 지켜온 도덕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너무 많이 참아왔기에 분노를 표출하고 싶어 한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눈에 뵈는 게 없어져” 용기를 낸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영혼이 빠져나가면서도 “연휴 끝나고 출근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려나”, “한국시리즈 경기도 보고 싶었는데”라고 생각한다. 이 사소한 일상에 대한 미련은 절절하다. 그토록 자신의 삶을 부정했던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가장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는 살고 싶었다. 단지 상처가 너무 많아서,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달콤함과 쓴맛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이야기

이 소설은 제목처럼, 달콤함과 쓴맛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이야기다. 악마가 주인공의 소원을 들어주는 설정은 언뜻 통쾌한 복수극처럼 보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입안에 쓴맛이 퍼진다. 주인공이 느끼는 ‘복수의 쾌감’은 결국 삶에 대한 극단적인 절망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현유나의 결혼식 장면에서 주인공이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나지만, 그 옷은 “숨기고 싶었던 모든 흉터를 다 드러내는” 옷이다. 악마가 준 이 ‘선물’은 주인공에게 복수의 무기이자 동시에 수치심의 증거다. 주인공은 자신의 상처를 무기로 삼아야 한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진정한 치유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혼식이 망가지는 장면을 보며 깔깔 웃는 악마와 달리, 주인공은 “아, 맞다. 악마였지, 참”이라고 허탈하게 웃는다. 복수가 달콤하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이것이 단지 또 다른 폭력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양경문을 만나는 장면은 더욱 비극적이다. 주인공은 동희를 대변하여 양경문에게 분노를 쏟아내지만, 그 과정에서 동희를 지키지 못했던 자신의 무력함과도 마주한다. “나 때문에”, “나를 만나지 않았다”는 죄책감은 주인공을 평생 괴롭혀왔고, 이 복수는 동희를 위한 것이자 자기 자신을 향한 벌이기도 하다. 악마가 양경문의 아내를 죽이는 것을 보며 주인공이 “애는 무슨 죄예요?”라고 묻는 장면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주인공은 자신이 어렸을 때 받았던 부당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무고한 아이가 상처받는 것을 차마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악마는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라고 답한다. 그렇다, 복수는 정의가 아니며, 악은 또 다른 악을 낳을 뿐이다.

가장 쓴 맛은 마지막 장면이다. 영혼이 빠져나가며 의식을 잃어가는 주인공이 떠올리는 것은 거창한 미련이나 한탄이 아니라, 출근과 야구 경기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사실 주인공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들. 누군가에게 상처받지 않고, 사소한 일상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
“왜 태어났니”라고 자조하던 그가, 죽음 앞에서 가장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슬프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2~30대 내내 ‘지루하고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간절히 원했기에 더더욱…;

 

이 소설에서 악마는 주인공에게 ‘당도 최고’의 복수를 선사한다. 그러나 복수가 달콤할수록, 그것이 남기는 뒷맛은 더욱 쓰다. 극단적인 단맛은 결국 극단적인 쓴맛으로 느껴진다. 주인공이 원했던 것은 복수가 아니라 치유였고, 가해자의 파멸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는 상처가 너무 깊어서,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몰랐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평범한 삶을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은 평범함을 꿈꾸는 법조차 모른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거창한 복수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 아닐까. 주인공이 마지막 순간 떠올린 “출근”과 “야구 경기”는, 그가 평생 갈구했지만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의 상징이다. 극단적으로 단 복수는, 결국 잃어버린 평범한 삶의 쓴맛을 더욱 극명하게 부각시킬 뿐이다.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