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호러와 로맨스가 기묘하게 뒤엉킨 고딕적 공포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은 증오와 숭배, 경멸과 측은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적 감정의 폭력성입니다. 사제와 흡혈귀 사이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엔 너무 뒤틀려 있고, 적대 관계라고 하기엔 너무 친밀합니다.
어조와 문체가 만들어내는 불안과 친밀함
이 모든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작가의 탁월한 문체입니다. 작가는 2인칭 서술(‘너’)을 통해 마치 최면을 걸듯이 독자를 주인공 사제의 위치에 강제로 배치시킵니다. 이 선택이 탁월한 이유는, 독자가 사제의 고립과 공포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체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너는 사제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해, 독자 자신이 직접 사제가 되어 그의 공포, 혐오, 혼란, 기묘한 친밀감을 함께 경험합니다.
또한 ‘그것’이라는 지칭은 절묘합니다. 인격을 부정하는 호칭이지만, 역설적으로 흡혈귀의 존재감을 더 강렬하게 만듭니다. 이름이 없기에 더 두렵고, 정의할 수 없기에 더 매혹적입니다.
문장은 짧고 건조하면서도 시적입니다. “꿈틀대는”, “샐쭉”, “시퍼런”, “자글자글” 같은 단어들은 불쾌함을 직접 전달합니다. 반면 “파르라니 밝아오는 새벽녘”, “살풋 찡그려진다”, “처연하게 웃곤 하는”, “색색대는 호흡을” 같은 표현들은 예상치 못한 서정성을 끌어옵니다. 이 대비가 소설의 분위기를 만듭니다. 섬뜩하면서도 아름답고, 폭력적이면서도 애절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러면서도 과장된 묘사라는 느낌은 없습니다. 그 표현들 자체로 소름이 돋는데 더 읽게 만듭니다. 신성함과 타락을 지칭하는 단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성”, “불경”, “경건”, “우상”, “세례” 등이 교차하며 둘의 경계를 흐립니다.
종교 의식으로 위장된 친밀한 폭력
두 존재의 만남은 종교적 형식을 빌립니다. 흡혈귀는 사제의 발치에 무릎 꿇고, 고해를 드리고, 기도를 함께 읊습니다. 하지만 이 경건한 외피 아래에는 극도로 사적이고 폭력적인 친밀함이 흐릅니다.
“움직일 수 없으시죠. 미안합니다.”
‘그것’이 사과하면서 사제의 손을 강제로 자신의 머리 위에 얹게 하는 장면은 섬뜩합니다. 이것은 세례의 형식을 띤 강제적인 스킨십입니다. “너는 나를 좋아하게 되어야 할 거야” 라는 문장을 말 없이 행동으로만 표현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을 모방하면서도 의미적으로는 완전히 전복시키는 이 장면에서, 독자는 두 존재 사이의 힘의 역학이 얼마나 복잡한지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지나 흡혈귀는 역으로 사제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함께 기도는 해드리지요”라고 말합니다(작가님이 가위에 눌렸다가 주기도문 외우는데 귀신이 2배속으로 같이 외운 경험이 있으신가).
“머리에 얹어진 그 손의 모양이 꼭 세례만 같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놀라면서도, 그 감각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입니다. 흡혈귀가 사제의 머리에 손을 얹는 행위는 동정인가, 조롱인가, 아니면 일종의 전도된 헌신인가? 이 장면은 두 존재의 관계가 단순한 포식자와 먹이의 구도를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거기에서 다시 문체가 만들어내는, 촉각적 교감의 묘사는 불편하면서 동시에 친밀합니다.
“터벅터벅 걸어온 그건 네게 기대앉아 네 손바닥에 뺨을 묻었다. 그것이 내쉰 한숨이 네 파리한 손목을 간지럽힌다.”
이것은 연인 사이의 스킨십과 다를 바 없는 묘사입니다. 하지만 순전히 일방적이고 자신의 의지는 반영되어 있지 않기에 폭력적입니다. 사제는 이를 “급격히 불쾌”하다고 느끼면서도 저항하지 못합니다. 물론 묶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그의 정신이 이 관계의 비정상적 친밀함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갈증이라는 이름의 상호 의존
“그러나 갈증, 갈증이 났다.”
이 문장은 단순히 물리적 갈증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제는 흡혈귀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충격받습니다. 그가 혐오하던 존재가 이제는 그의 유일한 연결고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고립된 공간에서 유일한 상호작용의 대상인 흡혈귀를 향한 사제의 감정은 이미 단순 적대감을 넘어섰습니다.
이것은 스톡홀름 증후군과는 조금 달라보입니다. 사제가 흡혈귀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흡혈귀의 존재 자체가 사제의 정신을 붙들고 있는 유일한 닻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이라기엔 섬찟하고 미물이라기엔 영리하며 악하다기엔 이따금 처연하게 웃곤 하는” ‘그것’의 복잡한 모습은 사제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는 흡혈귀를 “가엾게 여기고 싶어진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역겨워합니다. 이 감정의 혼란이 바로 관계의 핵심입니다.
흡혈귀 역시 사제에게 의존합니다. 그는 사제의 좌절에 반색하고, 사제의 기도에 동참하며, 사제를 통해 자신이 갈구하는 응답을 얻으려 합니다. 어떤 면에서 흡혈귀에게 사제는 신과의 유일한 접점입니다. 그를 파괴하고 싶어하면서도 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두 존재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사제가 흡혈귀의 잿빛 홍채에 비친 자신을 보는 장면입니다.
“그것의 잿빛 홍채에 담긴 수척하고 피로한 인간은 온몸으로 상대를 경멸하고 있었다.”
사제는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봅니다. 그가 품고 있던 경멸과 혐오가 얼마나 노골적이었는지를 깨닫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그를 황망하게 만듭니다. 흡혈귀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가망 없는 죄인은 외면하는 게 당신의 고귀한 신앙이신지?”
이 한 마디는 사제의 위선을 찌릅니다. 모든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사제의 신념과, 흡혈귀를 향한 그의 경멸 사이의 괴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제는 답하지 못합니다. 역설적으로 흡혈귀 역시 사제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봅니다.
“그건 너를 통해 다른 누군가를 보는 것처럼 말했고, 네게 매달려 누군가의 관심을 사려는 듯 굴었다.”
흡혈귀는 사제를 통해 신을 보려 하고, 사제는 흡혈귀를 통해 자신의 위선을 봅니다. 두 존재는 서로에게 거울입니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거울역할을 합니다.
피의 맹세: “공멸만이 기다리는 결말”
소설의 결말은 한 편의 뒤틀린 결혼식처럼 읽힙니다. 사제가 스스로 손목을 내미는 장면은 충격적입니다.
“원하는대로 해라.”
이것은 항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능동적인 선택입니다. 사제는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기 위해, 흡혈귀의 영원한 감시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네게도 감시자 하나쯤은 있는게 좋겠지.”
이 대사는 표면적으로는 책임감에서 나온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영원한 동반의 선언입니다. 사제는 흡혈귀 곁을 평생, 아니 영원히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비극적이고 뒤틀린 형태의 로맨스입니다.
흡혈귀의 반응은 더욱 복잡합니다. 그는 ‘증오와 원망에 가득 차’ 분노합니다. 사제가 자신의 삶을, 죽음조차 박탈당한 영원한 저주를 너무나 쉽게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흡혈귀는 사제의 고결함에 질투하고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탐욕을 느낍니다.
“굳은 맹세를 나누는 것 같은 모양이다.”
이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맹세입니다. 결혼 서약입니다. ‘죽음이 둘을 갈라놓지 못하는’, 오히려 죽음조차 없는 영원 속에서 함께할 것을 약속하는 의식입니다. 흡혈귀가 사제의 손목에 송곳니를 대는 순간은 마치 결혼 반지를 끼워주는 것 같습니다(…). 피로 맺어진 결속, 결코 풀 수 없는 매듭입니다. 소설에서 말한대로, 그 끝은 ‘공멸’이겠지만요.
그래서 제목의 의미
‘지지않을 매듭’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저주이자 약속입니다. 두 존재는 증오와 숭배, 책임감과 경멸, 집착과 측은함으로 뒤엉켜 매듭을 만들었습니다. 그 매듭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풀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둘 다 이 매듭을 진정으로 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책임감과 경멸이라는 이름으로, 흡혈귀는 질투와 동경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묶였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로맨스가 아닙니다. 하지만 가장 극단적이고 순수한 형태의 로맨스입니다.
이 소설은 호러 로맨스라는 장르를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공포는 로맨스를 더 절실하게 만들고, 로맨스는 공포를 더 친밀하게 만듭니다(그래서 이런 장르 전 못쓸라구요). 이 장르 자체가 유발하는 묘한 배덕감 같은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