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도 아저씨에게…. 공모(감상)

대상작품: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작가: 이영도 출판, 작품정보)
리뷰어: 소나기내린뒤해나, 2시간 전, 조회 3

 

이영도 아저씨에게…

 

편지에 들어가기에 앞서, 느닷없이 ‘아저씨’라는 간지러운 호칭으로 접근해서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작가님’이라는 딱딱한 호칭을 피하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고민해봤는데, 천진하게 ‘형’이라고 부르자니 30년이 넘는 세월의 차이가 신경 쓰이고, ‘할아버지’라고 하자니 정년마저 늘어나는 현 시대에는 너무 가혹한 호칭이 들었거든요.

 

확실한 건, 이번 편지를 쓰고 있는 저는 신작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출간 소식을 맞아 아저씨와 독자로서의 거리를 좁히고 싶은 수많은 독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에요.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꿈을 꾸는 것이 당연했던 어린 저에게 아저씨의 글은 저에게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눈을 뜨고도 꿈을 꿀 수 있었던 통로로 기억되고 있어요. 차마 활자로 풀어내기도 민망한 신경질적인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던 그때, 복잡하고 막막했던 현실 속에서 도피처를 찾던 저에게 아저씨의 깊고 유려한 문체는 삭막한 일상에 불을 밝히는 지적인 등불이 되어주었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활자 위로 펼쳐지는 장엄한 서사. 예상을 뒤엎는 독창적인 비유. 그리고 세상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문장들. 그 모든 것을 눈에 담아갈 때마다 다른 세상으로 흘러가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요? 책상 맡에서 작가님의 문장들을 읽으며 꿈꾸는 법과 사유하는 법을 배웠던 그 시절의 벅찬 감동과 감사함을, 저는 지금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답니다.

 

…… 죄송해요. 살짝 거짓말했어요.

 

고백하자면, 판타지 소설이 동전처럼 찍혀져 양산되던 시기를 목격했던 저로서는 아직까지도, 아저씨의 이름 석 자로부터 교과서에 실린 오래된 인물을 마주하는 듯한 거리감을 느끼는 거 같아요. 그 위상과 영향력은 글과 말로 오고내리지만, 막상 그 실체를 경험하지 못 한 누군가에게는 사진으로 얼굴만 아는 ‘아저씨’ 정도의 인상으로 다가오는 감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아저씨의 책은 제 기억 한 편에 오래된 책장처럼 굳건히 쌓여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초등학교 도서관에 들어설 때면 항상 책장 중턱을 자리 잡고 있는 ‘피를 먹는 새’ ‘드래곤라자’를 볼 수 있었으니까요. 두꺼운 갈색 하드커버로 무장하고 있는 책들이 우두커니 절 내려다보는데, 어찌나 책이 두툼하고 딱딱하던지 커다란 벽돌들은 쌓아놓은 듯한 위압감마저 느꼈던 기억이 있어요.

 

판타지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작가로서 민망한 이야기지만, 사실 그 시절에 아저씨의 책을 들춰본 경험이 거의 없는 거 같아요. 도서관 책장에는 아저씨의 이름이 적힌 책들이 든든하게 꽂혀 있었지만, 그 웅장한 이야기 앞에 선뜻 다가서지 못했던 감각만이 아렴풋이 남아 있죠.

 

다만 많은 독자들이 아저씨의 책을 들춰봤던 기억을 추억으로 갖고 있는 것처럼, 저에게도 몇 권은 어떤 ‘추억’으로 남아 있기도 해요.

 

그 주인공은 ‘피를 마시는 새 2권’이랍니다.

 

한창 철이 없고 혈기만 좋던 초등학교 시절, 같은 학급에서 불안한 웅성거림에 귀가 뜨이던 것이 시작이었죠. 그 순간이 지나고서야 사정을 알았는데, 남자아이들이 서로 과격한 장난(?)을 치다가, 책상 위에 있는 책을 몽둥이마냥 휘둘렀는데, 그것이 운명처럼 열 살 난 아이의 이마를 과녁으로 삼아 날아간 것이죠.

 

왜 하필 그곳에 도서관에 있어야할 ‘피를 마시는 새 2권이’ 보란 듯이 놓여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인과가 텅 비어 있지만, 확실한 것은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책에 이마를 맞은 아이는 코끝까지 핏물이 떨어질 정도로 출혈이 심했다 것이고, 둘째는 흉기(?)로 사용된 ‘피를 마시는 새 2권’은 쥐도 새도 모르게 도서관으로 돌아갔다는 것이죠. 지금도 그 순간은 제 무료했던 어린 시절에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나머지, ‘피를 마시는 새’라는 제목만 떠올리면 유난히 ‘피’라는 한 글자에 묘한 서늘함을 느끼고 만답니다.

 

성인이 된 이후의 기억은 마냥 길 따라 흐르는 개울물처럼 사라지는데, 어린 시절에 목격했던 어떤 것들은 돌부리처럼 박혀서 사라지지 않는 거 같아요. 아저씨의 작품이 얼마나 인상적인 평가를 받는지 알면서도, 저에게는 책을 ‘휘둘렀다’는 이미지와 ‘남자아이 하나를 때려눕힐 정도로 딱딱했다’는 원초적인 이미지만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죠. 그 기억이 아저씨의 독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방해했다고 한다면 변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무조건 두껍고 딱딱한 책을 피하게 된 사소한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한 거 같아요.

 

보통 이 대목에 들어서면, 시간이 흐른 뒤에 아저씨의 작품을 읽고 트라우마를 이겨낸 열성독자가 되었다는 문맥이 필요할 텐데…… 저는 그러지 못 했어요. 기회가 없었다는 쪽이 맞을 거 같아요. 제가 고등학교 무렵에 접어들었을 때는 이미 판타지 소설 시장이 뒤로 물러난 지 오래였고, 제 눈길을 끈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비롯한 추리 소설의 대가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놀랍죠? 그런 아저씨에게 독자가 되고 싶다고 고백하는 편지를 쓰고 있는 제 모습이 말이에요.

 

얼마 전이었어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시점에서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죠. 피곤과 추위에 지쳐 사색을 즐기러 들른 도서관에서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어요, 자료실 한복판에는 시민들이 앉을 수 있는 긴 소파를 두고 있었는데, 막 하교를 마쳤을 법한 시간에 교복을 입은 소년 하나가 책을 한 무더기로 쌓아둔 채 소파를 차지하고 있는 광경을 보고 말았어요. 무슨 책을 저렇게 쌓아두고 읽는 걸까? 몇 걸음 다가가보고 숨을 삼켰어요. 흙색에 가까운 하드커버지. ‘피를 마시는 새’ 어릴 적에 제 추억에 강렬한 ‘흉기’로 남아 있던 그 책이었거든요.

 

도서관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에 가까웠지만, 소년이 책을 벽돌처럼 쌓아둔 채 소파를 점거한 채 몰두하고 있는 그 공간은 더욱 침묵에 가까웠어요. 조금 떨어진 자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니 오랜 세월 동안 감겨 있던 눈 하나가 겨우 뜨이는 기분을 느낀 거 같아요. 저에게는 그 책이 휘두르고 사람을 다치게 만드는 ‘벽돌’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현재에도 누군가에게 열렬히 읽히는 ‘작품’으로서 보이는 순간이었죠. 경이롭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모르겠지만, 더 근사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 시간이었어요. 세월이 흐르고, 독자들의 취향이 수십 번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저씨의 문장을 좇는 새로운 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날, 제 자신을 가로막았던 ‘피를 마시는 새 2권’의 딱딱한 이미지를 비로소 머리 밖으로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아저씨의 글은 여전히 생생한 힘을 가지고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요. 동경. 저는 제가 느낀 감정을 그렇게 정의하고 있답니다.

 

이번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에 대해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부족한 문해력과 조신하지 못 한 필력에 감히 ‘감상’이라는 이름의 평가를 던질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고요.

 

하지만 작품을 정독하던 와중에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언젠가 아저씨의 신작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의 아우성을 건너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 이야기를 들었던 시기도 제법 오래되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렇게 갈증에 시달리던 독자들 또한 교복을 벗을 나이가 되었겠죠.

 

그 독자들도 지금 저와 같은 작품을 보고 있겠죠?

 

그렇다면 어떤 감상을 이 작품에 새겨 넣고 있을까요?

 

저로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아저씨의 이야기를 쫓아가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난감한 사정으로 아저씨의 작품과 멀어져 있던 저를 이곳까지 끌어당긴 것처럼, 멋진 이야기에 갈증을 느끼던 누군가도 이곳에 다다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죠.

 

너무 먼 시간을 돌아왔지만, 이번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을 읽으며 현재의 아저씨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린 눈에 벽돌로 대표되던 책들의 형태는 잠시 머릿속에 구겨두고,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이라는 제목을 눈에 담아두겠다는 결심이죠.

 

과연 이 작품이 한 명의 독자가 되고픈 제 마음에 어떤 불을 지필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아요. 하지만 이 작품을 시작으로 조금씩 과거로 돌아가 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피를 마시는 새> <눈물을 마시는 새> <드래곤라자> 어릴 적에 판타지의 성서(聖書)처럼 여기고 이름만 알고 있던 그 책들과 늦은 맞선을 치를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작품들과 작은 여정을 시작하더라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어요. 아저씨의 독자로서 첫 걸음을 떼어주게 만든 이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은 그 무엇보다 특별한 작품으로 남을 거라고요.

 

너무 늦었지만 만나서 다행이에요. 이 지독할 정도로 면구스러운 말 한마디로 글을 마칠게요. 앞으로도 멋진 작품 기대할게요.

 

나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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