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그래서 무슨 말씀을..?! 공모(감상)

대상작품: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작가: 이영도 출판, 작품정보)
리뷰어: 세라즈, 2시간 전, 조회 7

이번 신작은 수많은 좀비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숨이 끊어지도록 기다리고, 기다리다 죽어버릴 정도로 기다렸던 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무려 7년만의 장편이었던가요..(으흑) :smiling-tear: 

작가님의 팬으로서 ‘내가 이 명작을 리뷰할 자격이 있나’ 등등의 고민을 하긴 했지만, 인터넷의 익명성에 의존하여 대단히 뻔뻔하게 그냥 해보기로 하죠. 

(※ 리뷰 중에 대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은 대단히 흥미로운 설정에서 시작합니다. 우선 장르가 판타지 추리라는 말에 환호를 올리고 동네방네 이영도 작가님은 역시 천재시라고 떠들고 다녔던 저이지만, 죽은 채 글을 쓰는 작가 이야기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역시 이영도 작가님 최고) 물론 설정은 말해뭐해죠. 스토리 전개나 캐릭터, 중간중간의 유머들이 아주 환상입니다. (“소설팔이 아저씨” “젊지 않은 어스탐의 슬픔” 보고 폭소하다가 부모님이 이상하게 쳐다본 사람 바로 저입니다)

이번 작품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담아 내신 책이라는 말을 사전에 많이 듣고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시옵니까’ 의 생각으로 읽었는데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요부분들인 것 같습니다.

 

1. 작가 vs 글


“피곤하실 테니 간단히 말하자면, 할라도 백작은 어스탐 경의 글을 좋아하시는 거예요. 어스탐 경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지금도 여전히 애호가죠.” P 191

“···· 노래를 잘 불렀다면 가수가 되었을 테고 그림을 잘 그렸다면 화가가 되었겠죠. 글 쓰는 재주가 있으니 글을 쓴 거죠. 효과는 노래가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분명히 그 목소리나 박자감, 음감 같은 걸 좋아하는 걸 텐데도 자주 그 사람이 좋다고 착각해버리죠.” p 467


작가를 좋아하는 것이냐 글을 좋아하는 것이냐. 이 질문은 과거 저도 한 적이 있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뭔가 찔리는 듯한 기분과 함께 뇌리에 박혔습니다. 과연 어떤 것일지 다시 한번 고민해보기도 했구요. 항상 독자와 책과의 만남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시는 작가님을 떠올리며 나는 결국은 글을 좋아하는 것이었던가 하는 쪽으로도 생각을 해봤습니다. 뭐 결국엔 ‘이런 의미있는 질문을 하게 해주시는 작가님이시니 나는 분명 작가님을 좋아하는 걸거야!’ 하는 해맑은 결론에 도달하기는 했습니다만

 

2. 글쟁이는 글로만 말한다.


“‘이 작품을 제작하실 때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셨습니까?’ 같은 소리를 진지하게 할 수 있는 창작자의 대적 칭호가 아깝지 않은 청년까지 있었다니.”

“어이. 중간에 인물묘사 하나가 이상하다?” “창작자의 대적은 뭡니까?” 

후자에 대응하기로 한 사란디테가 세티카를 돌아보았다.

“그건 농담조이긴 했지만, 글쎄요. 창작자는 창작물로 말하겠다고 나선 사람인데 왜 창작자한테 말을 시키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건 어떨까요. 흔히들 자기 농담을 자기가 설명하게 되면 실패라고들 하죠. 왜 그렇죠?” p 458


사실 요부분은 이미 알고 있었고 동의하던 부분이었습니다. 하나의 작품이 독자에 따라 천 개 만 개의 새로운 작품으로 바뀐다는 게 너무 멋지다고 생각하는 1인 이기 때문에, 창작자 본인이 등판해서 정석 해석을 선고해버리면 뭐랄까요. 작품의 분신능력이 소멸되어 버린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요. 

작가님을 인터뷰한 여러 언론매체에서 많이 봤던 부분이라서 (사실 거의 항상 빠지지 않고 매번) 새롭지는 않았지만, 정말 오랜 세월 동안 이 의견을 고수하시고, 작품에서도 이 이야기를 하시는 작가님의 모습을 보고 다른 의미로 감탄했습니다. 저도 요런 모토 하나 정도 잡고 살아보고 싶네요 아아 근본없는 내 인생이여

이렇게 생각해놓고 책을 완독해서 딱 덮은 후 ‘재미있다!…그래서 어떤 의도로 작품을 제작하신거죠?’ 하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 저의 얼탱이 없는 모순적 사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아 진짜 너무 어려워요 진짜.

 

3. 창작에 대하여


“저건 글쓰기가 아닙니다. 창작이 아닙니다! 당사자의 모든 것을 불 살라 만들었다 해도 화장터의 연기는 고인의 예술적 표현이 아닌 것처럼!” p 41

“예술은! 살아있는 자가 창조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게 단 하나뿐인 절대적 기준입니다! 그렇기에, 이미 거기에 절대적 기준이 존재하기에 다른 절대적 기준은 거부되고 배척되고 반려되고 각하됩니다. 살아있는 자가 창조했으면 그건 예술입니다! 제 수염을 꼬고 있으면 비평가로 보인다고 믿는 바보들이 무엇은 예술이고 무엇은 예술이 아니라는 헛소리를 할 수 없게 된다고요! 저급한 예술? 넘쳐납니다. 하찮은 예술? 발에 챕니다. 하지만, 감히, 예술이 아니라고? 녹슨 단검으로 가죽을 벗길 만인의 종들, 예술의 기준을 발명하면 예술의 발명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자신의 독재자들!” p132~133


우선 어휘량에 감탄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 

거부되고 배척되고 반려되고 각하되는 다른 절대적 기준들을 위해 묵념. 

살아있는 사람이 써야 예술이다라는 주장이 책 곳곳에 나오는데 볼때마다 최근 이슈인 ai가 생각 나더라구요. ai 문제에 답을 내놓기 위해서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필수적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위의 것들 외에도 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 하는 인상을 독서 과정에서 굉장히 많이 느꼈습니다. (비록 저의 식견이 부족하여 여러 인물의 상반된 의견 중 어느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하핫) 앞으로 여러 번 돌려보면서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드는군요. :sparkles: 

 

그럼 이제 저는 무덤에 누워 ‘어스탐 경의 9권짜리 대하 장편소설’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거이거 독마새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진겁니다 후후)

왜 벌써 끝나버리는지 당최 알 수가 없는 한 해의 말에 좋은 책과의 만남이라는 행운을 선사시켜 주신 이영도 작가님께, 독자로써, 그리고 아직 <♡발 글 ♡나 잘쓰네>라는 평을 못 들어본 덜 된… -흠 뭐라고 불러야 하죠 아무튼- 글쟁이 외의 어떤 존재로서 정말 정말 큰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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