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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안팎으로 부딪히는 위협과 갈등 <오란비말: 비가 그치지 않는 마을> 공모(감상)

대상작품: 오란비말: 비가 그치지 않는 마을 (작가: 이도건, 작품정보)
리뷰어: 소나기내린뒤해나, 25분 전, 조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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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귀신들이 돌아온기다….”

(본문.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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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닫힌 사회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2.외부와 대적하는 내부의 인간들

3.과연 마을에는 비가 그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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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닫힌 사회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런던의 뒷골목이야 소리만 지르면 도와줄만한 신사가 있겠지만, 평화로운 농가의 범죄는 아무도 모르겠지.”

 

‘셜록홈즈 시리즈’의 단편 ‘너도밤나무 저택’에 실린 이 문구는, 흔히 ‘닫힌 사회’라고 불리는 한정된 공간과 집단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사정들을 지적하는 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이런 인식들은 어느 집단에게 둘러싸여 위기에 빠지는 여느 스릴러 장르에 뼈를 만들고 있습니다. 외딴 시골마을, 버려진 섬, 심지어 이웃의 눈이 들지 않는 가정집까지 그 폐쇄된 환경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죠. 결국 이 장르에서 발견되는 요소는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외부의 간섭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공간이 제시되며.

둘째, 그 공간에 사고와 목적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가 완성되며.

셋째, 그 바깥에서 관찰될 수 있는 제3자의 등장을 제시.

 

물론 이 요소들이 틀에 박힌 듯 지켜지는 작품보다는, 그 요소에서 탈피하려는 작품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간에서 완성되는 공동체, 즉 그 환경을 구성하는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장르에서 해당 사회의 구성원들은 머리와 팔다리가 함께 움직이는 ‘집단’으로 움직이며, 외부에서 영입된 관찰자는 그들의 사고에 대한 반감을 구성으로 대척점을 이루는 것이 주요 플롯으로 작용합니다. 이런 구성은 같은 인간 대 인간이라는 구도는 수적우위로 누르고 감출 수 있는 밀실의 공포와 결을 같이 하게 됩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오란비말: 비가 그치지 않는 마을 (이후 ‘오란비말’)> 또한 이런 사회적으로 동떨어져 그들만의 집단을 이루고 있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긴장감 있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빗소리 외에는 고요함이 일상이던 마을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사건이 발생하고, 외부에서 파견된 경찰 ‘명철’의 시선을 통해 이 마을이 가리고 있던 이기적인 비밀들을 발굴하는 과정이 무척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죠. 그 종국에 명철과 독자들은 하나의 질문에 다다르게 됩니다.

 

과연 이 마을에 비가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더 나아가, 이 마을에 비를 내리게 만들고 있던 것은 누구였을까요?

 

 

2.외부와 대적하는 내부의 인간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며 주목한 것은 마을이라는 환경을 두고 벌어지는, ‘외부(外)’와 ‘내부(內)’로 구분되는 인간 사이의 마찰이었습니다. 해당 장르에서는 마을이라는 규모가 있는 개념조차 폐쇄된 공간으로서 기능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지형을 비롯한 환경적 요소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공간을 꾸리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곧 폐쇄된 환경을 구성하기 마련입니다.

 

<오란비말>에서도 그 구성은 영리하게 뼈대를 갖추고 있단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배경이 되는 마을은 모종의 사건을 겪고 스스로를 폐쇄시키고 있는 사람들을 묘사합니다. 그 뒷면에는 마을 사람들이 숨기기 급급한 어두운 비밀이 근원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비밀이 주는 무게감은 꺼림칙한 공포로 작용하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공동체의 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적으로는 바깥으로 표출되지 않는, 표출될 리가 없는 공동체의 비밀은 ‘마을’이라는 집단의 테두리 안쪽에 보관하는 심장과도 같은 역할입니다. 이런 근원을 엿보게 되는 데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마을이라는 집단에 균열을 내고 외부의 시선이 닿게 되는 근원. 그것이 바로 장마철에 닥친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균열입니다.

 

(P.2) 처음으로 발견된 사람은 저기 마을 입구 쪽에 살던 만호라는 영감이었다. (중간생략)하룻밤사이 갑자기 죽어나간 것이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비일상적인 죽음은 일종의 미끼로 작용합니다. 외부에서 시선을 끌어당길 수 있는 미끼. 더 나아가, 외부에서 해당 집단으로 침입할 수 있는 납득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그 ‘외부’를 대표하는 이는 경찰 ‘명철’입니다.

 

(P.71) “그러면 그 시신들이 자네들 눈에는 다 자연사로 보였다는 거지? (중간생략)그러면 서에서 왜 날 여기로 보냈을까? ? 아무 일도 없는데, 왜 보냈지?”

(P.77) “혹시 누가 여기 막고 있나? (중간생략)돌아다니다 보니까 귀신이니 부적이니, 이상한 소리가 들리던데 말이야. 사람이 둘씩이나 죽어나갔는데, 이렇게 입을 싹 닫고 있다고?”

 

발췌된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그간 마을에서 벌어진 모종의 죽음들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지 않았다는 배경과, 그 내부를 지키는 공권력조차 집단의 뜻에 동조하며 함묵하고 있었다는 정황입니다. 하지만 명철의 대사를 보면 그 죽음들은 표면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 무언가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명철이 해당 집단 안쪽으로 침입하는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명철을 집단에 균열을 내는 ‘날붙이’이자, 안을 들여다보는 독자의 시선을 대변하는 ‘눈’ 그 자체입니다.

 

(P.82) “이제부터 내가 직접 확인해 볼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 그리고 사고 지점 근방 CCTV도 싹 확보해.”

 

우리는 독자로서 이 ‘명철’의 인물상도 한 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집단을 공격하는 주연의 입장에 있는 인물이라면, 당연히 그 집단을 공격하는 당위성을 제 자신으로부터 찾기 마련입니다. 여느 만화 속에 나오는 영웅들이 사회적인 공익 이상으로, 자신이 치유하지 못 한 트라우마적 상처들을 강조하며 싸움을 지속할 이유를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철’의 인물상은 다소 공허한 편에 속합니다. 외부적인 사정과 환경적인 요인만이 그가 마을에 침입하는 이유로 작용하며, 그는 해당 집단의 공권력이 하지 못 하는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며 마을의 위협으로 구체화됩니다. 마을을 조사하고 헤집는 모든 과정도, 그가 특출 난 정의감을 실현하고 있다보다는, 해당 집단에서 이뤄지지 않았던 공익적인 질서를 다시 회복시키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말 그대로, 명철은 이 집단에 균열을 내는 ‘날붙이’이자, 독자들의 시선을 가져오는 ‘눈’으로서 역할이 강조된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P.58) “시팔, 지금 짭새 돌아다니는 거 다들 잘 알제? 알아서들 입단속 단디 해라. 알았나?”

(P.130) “형사님,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깁니꺼? (중간생략)무신 놈의 용의자란 말이고! 우리가 한 가족이나 마찬가진데!”

(P.166) “봤다, 저 짭새 놈 눈깔이 꼭 독사맹키로 독기가 가득 찼드라.”

 

이 안팎으로 구분되는 역할의 의미에서, 마을 주민들도 결을 같이 합니다. 그들 또한 이름과 배경이 주어지는 개별적 인물이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지만, 결국 그들의 목소리가 향하는 방향은 해당 집단의 소리를 대변한다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외부의 위협인 ‘명철’에게로 향하는 적대를 한 데로 모으며, 그 과정에서 이견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한 사람의 목소리. 내부에서 들리는 ‘집단’의 목소리 그 자체입니다.

 

(P.39) “그기예, 저기 마을 밖에 사는 최만수라꼬, 정신이 쪼매 이상하다 아입니꺼. 그 치, 치매기도 살짝 있고예.”

(P173) “아무튼 다들 입단속 단디 잘해라. 그라고 짭새 놈이 쉽게 물러날 거 같지 않다. 맞제? 여차하면 만수를 그냥 던져 주삐자. (중간생략)알았다. 어차피 미친놈인데 어려울 것도 없다 아이가.”

 

그런 집단의 공유되는 사고에서 생각하면, ‘만수’라는 인물은 집단에서 배제되는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 하다는 이유야 만수를 희생시키려는 변명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마을 밖’에 사는, ‘정신’이 남다른 최만수는 애초에 그들 집단과 위치적으로나 사고적으로나 공유되지 못 하는 ‘외부’의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P.179) “근데 동네 노인네들 다 죽어 나가는데 진짜로 귀신이면 우짜노.”

 

그렇다면 작품 초반부터 ‘귀신’이라는 공상에 두려워하는 주민들을 묘사하는 것 또한 의미심장한 해석을 갖춥니다. 후에 그들이 ‘귀신’이라고 칭하는 이가 한때 마을을 위협하던 존재를 가리킨다는 것이 밝혀지며, 그 또한 ‘내부’에서 비롯된 존재가 아닌 ‘외부’에서 침입한 존재로 위치가 규정됩니다. 물론 그것이 정말로 죽어서 귀신이 되었다고 믿었던 것인지, 아니면 귀신이라는 소문을 퍼뜨려서 해당 존재에 대한 실존을 숨겼던 것인지는 다소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내외의 구분 갈등은, 그 인물이 아닌 역할에 의해 구분되고 있다는 것에 방점을 찍으며 생각하는 바입니다.

 

(P.426) 다행히도 만수는 해코지당하지 않은 듯했다. 다만, 만수의 얼굴 옆에 시커먼 흙 한 주먹과 텅 빈 드링크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마을에서조차 ‘외부’로 밀어내려던 만수가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희생당했는지를 떠올려보게 됩니다. 그는 끝내 ‘내부’의 집단에게 희생당하지 않습니다. 그를 찔렀던 흉기는 어디까지나 집단에 속하지 않았던 ‘외부’에서 날아온 화살이었습니다.

 

 

3.과연 마을에는 비가 그쳤을까요?

 

많은 계절 중에 장마철이 닥친 마을을 배경으로 삼은 것은 작가의 의도가 다분하다고 추측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마을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갖추는 것 이상으로, ‘비(雨)’가 주는 속성에 따른다고 보입니다.

 

‘비’가 내린다는 환경은 인간을 고립시키는 대표적인 현상입니다. 비가 내리는 순간에 지붕을 찾아 도망치는 사람들을 쉽게 연상할 수 있듯이, 비를 피하고 숨어드는 이미지야 이미 관습으로 굳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을이라는 커다란 지붕을 두고 있던, 작중의 주민들에게 부합하는 이미지인 셈입니다.

 

(P.408) 명철은 입술로 담배를 굴리며 CCTV를 수없이 확인했다. 하지만, 비가 쏟아지는 마을을 그림자처럼 종횡무진 움직이는 이는 화면 속에서 끝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외부의 적은 빗속에 숨어서 내부의 적을 하나둘씩 도륙내기에 이릅니다. 비가 내린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막을 수 없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현상에 대처하는 것은 사람의 몫입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니었습니다. 안팎으로 선을 그어놓고 위협에 맞서는 것이 유일한 대처였습니다. 그것으로 어떻게 되었나요? 결국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냈다는 결말에 다다랐을 뿐이죠.

 

(P.12) “그 귀신들이 돌아온기다….”

 

초반에 나온 이 대사는 명확히 ‘귀신들’이라고 복수(複數)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마을에서 벌어졌던 은밀한 사건들이 이번 하나에 불과했다는 뜻은 아니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몇 번씩 이 마을에는 비가 내릴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귀신’이라고 부르는 ‘외부’의 적과 맞닥뜨릴지도 모르죠. 비록 더 이상 집단을 이루는 것조차 불가능한 마을이라 할지라도 그 경계를 따라 무언가 침입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작품에서 ‘비’가 내리는 것은 곧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침입자를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끝내 그치지 않고, 때가 되면 돌아오는 마을의 업보 그 자체이죠.

 

인상적인 이야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품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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