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은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불안과 죄책감을 정교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겉으로는 아내가 잠시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지만, 실질적으로는 폭력 이후의 내면 붕괴와 자기기만, 그리고 현실 인식의 왜곡을 그린 심리극이다.
작가는 외적 사건보다 인물의 심리를 중심에 두어, ‘사라짐’ ‘실종’이라는 단어가 단지 어떤 인물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공백과 기억의 단절을 의미하게 만든다.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된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온 뒤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 부재는 단순한 일시적 실종이 아니라, ‘나’의 불안한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처음에는 단순한 걱정이던 감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로 변하고, 결국 죄책감으로 굳어지는 과정이 스릴러답게 묘사된다. TV의 소음, 시계 초침의 소리, 꺼진 조명 아래의 정적 등이 ‘나’의 심리적 동요를 시각화한다.
이 작품의 결정적 장면은 ‘나’가 전날 밤의 다툼을 회상하는 대목이다. ‘나’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아내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고 고백하지만, “언제 멈췄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기억의 공백, 기억의 [실종]은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죄책감이 만들어낸 심리적 방어기제, 블랙아웃, 단기적 기억상실 같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는 아내의 실종을 마치 ‘자신의 범죄의 결과’처럼 받아들이며, 신고 대신 보험금과 실종 선고를 검색한다.
결말에서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모든 것이 다시 불확실해진다. 아내는 평소처럼 장을 보고 돌아왔고, ‘나’는 안도하지만 동시에 현실이 낯설게 느껴진다. 아내는 정말로 돌아온 걸까? 아니면 이미 어젯밤 죽은 아내를 ‘나’가 상상 속에서 다시 불러낸 걸까?
아내의 등장은 불안해소나 구원이라기보다, ‘나’가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꾸며낸 ‘정상적인 일상’의 장면처럼 보인다. 그는 전등을 켜고, TV를 켜고, 냉수를 마시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알리바이를 구성하는 무의식적 연극일지 모른다. 그것을 반영하듯, 조명도 더 어둡게 느껴진다. 이 시점에 ‘나’의 일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실종]되어 버린 상태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욕실 문 앞에서 수건을 들고 아내를 기다린다. 문틈 아래로 새어 나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여보?” 하고 부르지만, 대답은 없다. 물소리는 실제 샤워 소리일 수도 있고, 그의 불안이 만들어낸 환청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맨 처음에 ‘나’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일부러 켜둔 것일지도 모른다.
이때 독자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아내는 정말로 돌아온 걸까? 아니면 이미 어제 죽은 걸까? ‘나’가 느끼는 죄책감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감추기 위한 자가최면이나 알리바이를 위한 것이 아닐까? 아내는 지금 정말로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을까?
작가는 이러한 질문을 남긴 채, 결말을 열어둔다. 그리하여 ‘실종’의 의미는 물리적 사건을 넘어선다. 사라진 것은 아내의 존재가 아니라, ‘나’의 양심과 현실 인식, 그리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확신이다.
결국 [실종]은 죄책감, 죄의식이 인간의 지각을 어떻게 변형시키는가를 보여주는 심리적 서사라고 생각한다. 진실과 환상이 구분되지 않는 마지막 장면에서, 독자는 등장인물의 현실과 내면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하며 동시에 스스로의 현실인식도 무너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우리에게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질문만을 남긴다.
진짜로 실종된 것은 아내일까, 나의 양심일까, 죄의식일까, 아니면 독자의 현실감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