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하는 말 중에 ‘산 입에 거미줄 치랴?’ 하는 게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설마 굶기야 하겠느냐? 그러니 걱정 마라.’ 하는 의미로 곧잘 하곤 합니다. 거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과 비슷한 용도라 할 수 있겠네요. 온오수 작가의 ‘내 입에 거미줄’은, 물론 어디까지나 제 가정입니다만, 바로 이 말에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말처럼 정말로 입에 거미줄이 쳐지는 이야기거든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연유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먹을 때마다 입에 거미줄이 쳐져서 어쩔 수 없이 굶기를 밥 먹듯 해야 하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확실한 이유는 없어도, 계기는 있습니다. 신체검사가 문제였어요. 과체중 때문에 3급을 받았는데, 남자는 그 때문에 자신의 인생마저 3류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바로 그 후에 먹기만 하면 입에 거미줄이 쳐졌습니다. 홍길동이 마음대로 호부 호형을 못 하듯, 거미줄 틈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 몸이 되고 만 것이죠. 마치 몸이 과체중을 유지할만한 행위를 절대적으로 거부하듯이 말이죠. 이런 측면에서, 이야기 속에 정신분석학에서 프로이트 만큼이나 유명한 융이 언급되기에 하는 말입니다만, 거미줄의 의미를 정신분석의 이론을 살짝 빌려 말해 본다면 아무래도 현재 자기 모습을 부정하려는 마음의 구현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의 확장이 아니라 나의 부정 혹은 축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짜 거미나 ‘스파이더맨’의 거미줄과 정확히 반대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제목은 예전 인기를 끌었던 노래 ‘내 귀에 캔디’를 살짝 비튼 것만 같은 모양새 입니다만(중간 쯤에 있는 병원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사탕은 아무래도 그 노래 제목 때문에 나오게 된 게 아닐까 싶네요.) 실상 이야기는 전혀 달콤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야기는 입에 존재하는 거미줄로 인해 자신이 겪는 곤란 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겪는 곤란에 보다 중점을 두고 진행됩니다. 처음엔 여동생이, 그 뒤엔 여자 친구가, 또 그 다음엔 소설가인 친구 그리고 방송에 출연한 뒤의 대중들이 관계의 상대방이 됩니다. 하나같이 결국엔 남자와 소원한 관계가 됩니다. 그 어떤 관계의 상대방이든 주인공인 남자와 긴밀하게 이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거미줄은 원래 연결하는 것입니다만, 남자의 거미줄은 오로지 단절과 격리의 역할만 합니다. 자기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끊어내죠. 음식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닙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죠. 결국 ‘내 입에 거미줄’은 자기 안으로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 입니다.
그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입 안에 거미줄이 존재하게 된 계기가 그 이유의 단서를 제공합니다. 바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 자기 부정이 타자의 거부로 이어져 끝내 자신을 단절과 격리의 연쇄 속에 유폐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입 안의 거미줄을 두고 소설가가 나타낸 부러움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소설가는 입 안의 거미줄이 남자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기에 부럽다고 합니다. 여기서 특별이란 의미는 아마도 다른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온전히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한껏 증명 할 수 있다는 것일 겁니다. 소설가는 자기 내부에 그런 것이 없기에 자신이 쓴 소설에 기대어 그런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남자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으니 부러운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남자의 거미줄은 성경에 나오는 카인의 표지를 닮았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도 등장한, 데미안이란 존재 자체가 가진 강렬한 존재감을 비유했던 그것 말이죠. 그렇게 소설가의 말마따나 남자에게는 자기 스스로 긍정할만한 이유가 충분히 내재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보지 못했죠. 먼저 자기 스스로를 긍정하지 않고 오로지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자신을 긍정하려 했습니다. 그 순서가 잘못 되었기에 그는 결국 단절과 격리의 연쇄에 빠져버린 것이죠.
‘내 입에 거미줄’은 입 안에 거미줄이 쳐지는 다소 엉뚱한 설정을 현실감을 잘 유지하면서 이끌어간 재밌는 소설이기도 합니다만 이런 주제가 은연 중에 투영되어 있었기에 제게 썩 만족스런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맞습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서 타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먼저 긍정하지 않으면 타인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혹여 내 마음에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부정하거나 불신하는 거미줄이 쳐져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