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가장 무서운 이야기’이고, 이야기 속에서 괴담을 다루고 있기에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가장 무서운 괴담은 어떻게 해서 가장 무섭게 되는 것일까? 제가 알고 있는 괴담 중에 정말 무섭다고 여겼던 것들을 총동원하여 부족한 머리로 그래도 열심히 굴려 생각해 보니 역시 괴담은 이럴 때 가장 무서운 게 되지 않나 싶네요. 경계가 갑자기 무너져 버렸다는 것을 느꼈을 때 말이죠.
풀어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롤러코스터 타는 거 좋아하시나요? 저는 꽤 좋아합니다. 아무리 아찔한 것이라 하더라도 신나게 타죠. 제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제가 롤러코스터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롤러코스터에 단단히 결박시키는 안전벨트와 안전 바에 대한 신뢰가 두려움 없이 롤러코스터를 타게 하는 것이죠. 공포 영화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공포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저 안에 출현한 게 살인마이든, 유령이든, 괴물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결코 스크린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 믿음이 공포 영화를 쾌락의 대상으로 만듭니다. 그렇게 경계라는 게 있습니다. 롤러코스터의 안전벨트 처럼, 공포영화의 스크린처럼, 공포스런 무언가가 존재하는 저편과 내가 있는 이편을 확실히 갈라주는 경계라는 게 말이죠. 마치 높은 담 안의 부자처럼, 경계가 확실하고 그것이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면 경계 저 편의 것은 우리에게 더이상 아무런 공포를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경계가 무너진다면, 그 경계가 그렇게 튼튼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바깥의 공포는 이제 더이상 쾌락의 대상은 아니게 되죠. 우리에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공포가 됩니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얼마든지 그 공포스런 것의 희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습니다. 가장 무서운 괴담은 그런 것을 줄 때입니다.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 나는 구경꾼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가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어느 순간 선명하게 자리 잡을 때, 우리는 소름이 돋는 것과 함께 그 괴담이 정말 무섭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정말 무서운 괴담은 늪과 같습니다. 그것도 짙은 안개 아래에 있어서 어디가 늪이고 어디가 단단한 땅인지 분간할 수 없는 늪 말입니다.
그래서 괴담은 더욱 재밌는 텍스트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괴담은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듣는 이 혹은 읽는 이의 적극적 참여가 있어야만 완성됩니다. 괴담이 노리고 있는 무서움이 실현되려면 어디까지나 경계의 허뭄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것은 이야기에 내재된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독자의 상상에 달린 일이거든요. 독자 스스로 ‘아, 이런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야 괴담은 단순한 단어들의 모음이 아니라 언제든 내 발을 삼킬 수 있는 음험한 늪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괴담은 독자로 하여금 그런 상상을 한껏 부추길 수 있어야 하겠죠.
보다 긴 괴담이라 할 수 있는 호러 스토리도 이와 별 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자신의 이야기에 기꺼이 참여자가 되도록 만들어 자신도 그 이야기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만들 때 이야기가 노리고 있던 공포를 읽는 이에게 가득 심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유이립 작가의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무서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요건을 고루 갖추고 있으니까요. 사설이 길었습니다만, 제가 이 이야기를 왜 성공적이라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호러 스토리는 무작정 뛰어들어 읽었을 때, 이야기가 가진 재미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만큼 그런 재미를 반감시킬 지도 모를, 미리 줄거리를 소개하며 리뷰를 하는 것은 어쩐지 조심스럽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이렇게 썼습니다. 제 사설이 얼만큼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이야기가 섬뜩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야기가 보다 압축 되었다면 그 섬뜩함이 더 커지지 않았을까 하는 조금의 아쉬움을 부연하듯 남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