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code 작가님의 [그 너머의 정원]은 사후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그를 탐구하는 과정 혹은 사후 세계 자체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사후 세계라는 소재는 한 없이 가볍게 사용할 수도 있지만 깊이 파고들라 치면 종교와 철학의 전반적인 부분까지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참 재미있는 소재이긴 합니다.
이 작품에서의 정원(靜願)은 일단 단어부터 일반적인 것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다분히 작가님의 의도가 드러나 보이는 부분인데, 그런 다의적인 글의 재미를 강조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이 보입니다.(그 곳의 분위기나 가드너라는 이름의 사용)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죽음을 가까이 접하게 되는데, 이유가 다르기 때문인지 그 세계를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상이합니다.
작품에 쓰인 정원의 정(靜)은 고요할 정 혹은 깨끗할 정입니다. 그리고 원(願) 은 바라다, 원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의 대부분을 고통 속에서 보낸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고통과 평화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요. 그들에게 죽음이란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갉아먹는 시끄러운 고통에서 해방되는 시공간이라고 느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에 비해 삶이 주는 가치에 대한 소명을 아직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저 호기심으로 접근한 사람에게 사후 세계의 체험은 그들에게 유익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작품들에서 이미 묘사가 되었듯이 우리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게 된다면 가장 먼저 느끼게 될 감정은 허무함 아닐까요? 어떤 세계가 있느냐를 떠나서 사후 세계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세상 사람들 중 상당수는 지독한 염세 주의에 빠지게 될 겁니다.
저는 가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참 조화롭게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죠. 앞으로 과학이 얼마나 더 발전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 흐른다 해도 우리가 죽음 이후를 알게 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자연의 섭리인 동시에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 될 테니까요. 사후 세계에 대한 다양한 작품이 여러 매체로 나오는 것도 우주의 끝을 상상하는 것과 같은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주와는 달리 결국 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인식이 우리의 의식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을 해 봅니다.
작품의 주인공 선우의 경우 본인이 원하지도 않았고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순간에 오게 된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 사후 세계는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은 어색한 공간이 됩니다. 게다가 그 정체가 우리가 흔히 상상했던 이미지가 아니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겐 조금 생소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던 곳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사람은 세상 속에서 다른 이들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나는 이렇게 순간 순간이 고통인데 저들은 왜 평화로울까.’ 사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건 다른 이들과 조화롭게 섞여 살아가는 것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일반적인 사후 세계의 전경이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인 데는 사바 세계의 복잡하고 시끄러운 분위기에 대비된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뭔가 두서 없이 떠들어댄 느낌인데, 이런 작품을 읽고 나면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고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 이것 또한 소설을 읽는 의의가 되지 않을까요? 브릿G 여러분들께 죽음이란 혹은 사후 세계란 어떤 이미지인가요? 만약 사후 세계의 존재 유무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오늘을 살던 대로 내일을 맞을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몇 년 전 갑자기 어지럼증이 찾아왔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지금은 어지럼증이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이유로 겪는 증상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만, 처음 증세가 나타났을 땐 정말로 아 이렇게 죽는가 보다 싶었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를 떠올리니 일단 겁이 더럭 났는데, 20분 쯤 지나니 남은 가족이라던가 하던 일에 대한 마무리 등 조금 맥 빠지는 주제로 생각이 옮겨가더군요. 죽음이라는 건 내가 세상과 단절되는 엄청난 사건인데 왜 그 공포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더랬지요. 지금 다시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결국 내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빨리 잊게 된 건 어차피 죽음 후에 어떻게 되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이 걱정돼도 계속 살 수 있는 것이구요.
이 작품은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심오한 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이나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독자 모두가 다른 해석을 하게 될 것이고 각자 그 해석이 옳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것이 이 작품의 묘미이기도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