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이 이미 결정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마치 누군가의 잘 쓰인 각본처럼, 혹은 무슨 설계도처럼 말이다. 나의 사주나 관상, 혹은 손금 같은 것이 이미 나의 운명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고, 그렇게 나의 삶은 그 결정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라면?! 대충 생각해봐도 좀 허무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내가 뭘 하든 이미 내 삶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어떻게 하더라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보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생각도 들고, 앞으로의 삶에도 그 어떤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운명론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어떤 것까지 운명으로 정해져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그런 운명을 그렇게까지 믿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즐기지는 않지만 어쩌다가 누군가를 따라가서 사주, 관상, 손금 정도나 보는, 딱 그 정도의 재미만 느끼는 정도랄까?!
나와는 다르게 운명론을 확고히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믿지 않는다고 그들까지 그렇게 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는 사실은 확실히 하고 가자. 그저 나와 다를 뿐이고, 때로는 그 다름에 호기심이 생겨 더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 바로 이 <미신>이라는 작품이었다. 제목부터 ‘미신’이다. 그런데 장르는 ‘SF, 호러’이다. 그 시작부터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낯선 조합이 아닐까?!
가까운 미래. 지진과 해일 때문에 원자력 사고가 나는 바람에 결국 한반도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고 그 틈을 타 미국은 한반도에서 방사능을 먹고 사는 미생물을 실험하게 된다. 그런 실험의 장으로 투입이 돼 실험체를 채집하는 게 주인공의 직업. 그리고 이 글은 그런 주인공이 쓴 것이다.
작가가 직접 쓴 작품 소개이다. 어떻게 보면 종말 문학 같은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는 추측(?!)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작품 소개 그대로 이런저런 사고로 한반도가 커다란 실험의 장이 된 상태에서 주인공이 그곳에 투입되는 것은 맞는데… 음… 전체적으로 보자면, 투입 이전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투입된 이후로는 갑자기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이 호기심가득 바라보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예상 못한 흐름이라고 할까?!
주인공이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그 사람은 오랜 시간 위험한 곳에서 -다른 이들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그런 곳에서- 임무를 수행함에도 결코 죽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의 손금 때문이라나?! 숱한 죽음의 고비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는 이유가 ‘평생 동안 사고로는 절대 죽지 않을 손금’ 때문이라고 한다. <미신>은 팔자니 운명이니 하는 것들을 절대 믿지 않던 주인공이 그 사람 때문에 그것을 믿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직접 보고 느낀, 그 믿음을 가져오게 만든 그런 경험들을 글로 써내려간 것이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에 방사능을 먹고 사는 미생물이라는 설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그 미생물이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에 대해 수많은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도 등장하는 다양한 존재(?!)들은 독자의 호기심을 끌만한 수준이었고, 몰입도도 꽤 괜찮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결코 사고로 죽지 않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에서는 그 한계를 스스로 만든 것 같아 아쉽게 느껴졌다. 생각하지 못했던 존재들이 정보를 수집하는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모습들을 슬쩍 드러내 보이면서 독자들을 호기심에 빠뜨리지만, 결국에는 다시 ‘그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오는 것이다. 단순히 사고로 죽지 않는 그 운명론의 이야기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좀 더 미스터리하게, 혹은 좀 더 무섭게 또 다른 줄기를 하나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미신>은 내용만이 아니라 문체도 보통과는 다른 느낌이 전해진다.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고 해야 하나?! 좋게 말한다면, 보통의 평범한(?!) 글과 달리 생생한 느낌이 더 많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좀 냉정히 말하면 정리가 되지 않은 문체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쓸데없이 긴 문장이 많다거나, 크게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반복되는 말들, 그리고 문장 호응이라고 해야 하나?!, 앞과 뒤가 맞지 않는 문장들이 생생한 느낌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정리만 깔끔하게 된다면 특유의 느낌으로 생생한 느낌을 보다 더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미신>이라는 제목과 내용, 그리고 작가의 의도까지 모두 더해서 정리를 해보자면, <미신>은 운명론, 그 중에서도 온전하게 손금으로 결정되는, 그런 세상을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뭐 물론 재미있는 상상이지만, 그만큼의 또 다른 어떤 메시지도 함께 전해지는 작품이었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어쨌거나,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생각들, 운명론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