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이번 리뷰도 노래와 관련이 깊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프랭크 시나트라의 ‘Fly me to the moon’을 생각했다. 작가가 의도한 BGM과는 거리가 좀 있을 테지만,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도 이 작품의 분위기와 매우 잘 맞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유튜브에서 찾아들어보았는데, 내가 느끼기로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그것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개인적으로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이것은 아마도 달 표면에서 틀었던 Fly me to the moon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였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라서 좋았다. 정말 케케묵은 구시대의 재즈바에 들어가서, 위스키 한 잔을 주문하고, 돈 아까워서 홀짝거리면서 마시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홀짝거리는 것은 술에 취하고자 마시는 것이 아니다. 분위기에 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의 선곡은 매우 탁월하였다. Fly me to the moon만큼 재즈의 재즈라고 할 만한 작품은 얼마 없지 않을까. 적어도 나처럼 재즈에 조예가 깊지 않은 멍청이 조차도 이 노래를 알고 있으니, 탁월하지 않다 말할 수가 없겠다.
이 작품은 실연 당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런 것치고는 도입부가 매우 특이하다.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서 인공수면에 들어갔다 방금 나온 주인공이라니. 게다가 보통 소설에서 인공수면은 세기를 지나쳐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서는 고작 5년 뿐이 잠들지 않았다. 나는 이 점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나는 현실에 기반한 디테일한 설정을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민간 우주 왕복선이 운항을 시작하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인공수면이 완벽하게 정립되어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매우 현실적이고 살에 와 닿는 이야기였다.
다만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회사가 이제 막 출시하려는 민간 달 왕복선의 티켓을 덤으로 얹어준다는 설정이다. 그렇게 부가가치가 높은 관광산업의 이용 티켓을 그저 인공수면 실험에 참여해줘서 감사하고, 5년 자고 일어나서 감사하다는 이유만으로 준다? 나는 세상이 그렇게 꽃처럼 아름다울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집중적인 구조로 되어있으니까 말이다.
이상하다고 생각된 것이 하나 더 있다. 이것은 인공수면 그 자체에 대한 모순점이다. 주인공은 반쯤 홧김에, 나머지 반은 허탈감에 인공수면에 도전(?)한다. 그리고 신나게 5년 내리 잠들어있다가 막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손등의 상처가 희미해짐을 깨닫는다. 그런데 이것은 좀 이상하다. 인공수면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인공적으로 잠을 재워버리는 행위이다. 냉동인간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많이 다른 것도 아니다. 냉동인간이나 인공수면이나 결국에는 인간의 대사를 극한까지 낮추어야 한다. 대사가 낮아지면 인간의 몸은 활동하지 않는다. 즉, 상처가 희미지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처가 희미해진다는 것은 세포가 분화하고 버려지고 하는 과정을 동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손등의 상처가 희미해지는 것’을 통해 무엇을 은유하고자 했는지는 감이 오지만, 그 장치가 생물학적으로 분명하게 잘못되어있기 때문에 조금 거식한 감이 있다(아마도 내가 생물학과 화학을 이렇케 저렇케 짬뽕시킨 학문을 전공하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정확히는, 사랑에 실패한 남자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민간 달 왕복선의 티켓에 대한 작위적인 설정들 때문에 나는 조금 그 아름다움이 퇴색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괜찮지 않을까? 나는 사랑 이야기가 어색하여 이런 디테일하고 쓰잘데 없는 설정에 더 눈이 잘 갔던 걸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잔잔하고 분위가 어둡고 매우 재즈풍인데, 나 말고 누가 왕복선 티켓가지고 혹은 손등의 상처의 힐링 상태가지고 따지고 들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