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가 수정되었습니다.

소설적이라는 강박을 벗어던질 수 있다면… <미지의 세계> 공모(비평)

대상작품: 미지의 세계 (작가: 이열, 작품정보)
리뷰어: 하얀소나기, 3일 전, 조회 36

*

 

 

미지야, 넌 아직 너 자신을 몰라. 그게 문제야. 그래서 내가 필요해.”

(본문.P204)

 

 

*

 

 

우리는 관습적으로 ‘소설적이다’라는 요소에 대해서 고민합니다만, 어쩌면 무척 단순한 문제라는 말로 가볍게 규정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장 국어 교과서만 봐도 ‘소설’의 요소를 정리하며 설명하니까요. 그렇다면 곧 ‘이상적인 소설’이라는 형태 또한 이런 ‘소설적 요소’에서 기반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력적인 소설은 어떤 재료가 필요할까요?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매력적인 인물이 필요할 테고, 또 긴장과 갈등을 오가는 사건이 필요할 테죠. 여기에 실감나는 대사와 더불어, 깨달음을 줄 법한 철학적인 주제로 깊이를 더한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두가 지루했습니다. 굳이 이런 교과서적인 요소를 되짚어본 것은, 이번에 읽은 <미지의 세계>가 이런 요소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다소 부담스럽게 해석하고 있는 듯한 감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님 본인이 소설 창작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어떤 ‘소설은 이런 거야!’라는 강박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요소가 관찰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감평에서는 <미지의 세계>를 읽고 작품에서 보인 매력과 아쉬움을 세 가지 키워드에서 살펴볼까 합니다. 다음 내용은, 문해력이 부족한 독자가 주절거리는 주관적인 해석에 불과하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경험입니다.

 

흔히 경험하지 않은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데, 냉정히 말하면 경험하지 못 한 것을 상상할 수 있기에 여느 작품들이 빛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말이 일리가 없는 공허한 교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 경험’과 ‘소설적 경험’은 명확히 구분되는 경계가 있지만, 결국 이 둘은 상호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해석 정도면 충분한 창작의 교양으로 받아들일 법합니다.

 

다만 <미지의 세계>에서 보이는 경험이 아쉽다고 느끼는 것은, 이 작품에 담긴 경험이란 것이 굳이 상상할 필요가 없을 만큼 두께가 얇다는 데서 비롯됩니다.

 

(작품소개). 전 남자친구는 스토커가 되었고, 현재 남자친구는정체를 숨기고 있다.

 

사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사건적 컨셉은 무척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장 짧은 시놉시스만으로도 전 남차친구가 여자를 납치한 사정과, 그 여자와 현재 엮여 있는 남자의 사정 등 궁리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의 갈래가 엿보이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스토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남자 ‘아인’의 사정이었습니다. 실제로도 이 작품은 대부분의 경험을 아인에게 채워줌으로서 인물적 깊이를 찾으려는 시도가 눈에 띄게 많은 편이었습니다.

 

(P.109) 중학교 시절, 나는 일진들의 샌드백이었다. 사소한 실수로 찍힌 뒤론 매일같이 폭언과 폭력이 쏟아졌다.

(P.115) 그 시절 유일한 도피처는 온라인 게임이었다. 나는 게임 속에서만큼은 활달하고 자신감 넘치는 인물로 변했다.

(P.118) 다행히도 공부는 곧잘 했다. (중간생략) 졸업 후엔 동기들이 선망하는 대기업 취업에도 성공했다.

(P.120) 냉혹한 진원 선배 밑에서 나는 일진한테 당할 때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훔쳐야 했다.

 

그럼에도 이 ‘아인’에게서 보이는 경험이란 것이 무척 사소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학창시절의 폭력, 게임중독, 취직활동, 직장 내에서 괴롭힘 등……. 하나하나가 분명 정신적인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내 인생이 비참했다’며 단언하는 아인의 독백치고는 그 자체가 인물의 가치관을 정립할 정도로 대단한 경험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이 모든 과거들이 ‘아인이 스토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잡다한 사정들이 그를 구성하는 요소라기보다는 아인을 동정하기 위한 변명 정도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P.192) 어릴 적부터 나는 항상 완벽함을 추구했다. 의사였던 아버지가 자주 하신 말씀, “시온아,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통제하는 자와 통제받는 자.” (중간생략)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의료 사고 원인을 조작한 혐의로 면허 취소를 당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남자 ‘시온’에게서 보이는 경험은 어떤가요? 너무 일상적인 괴로움만을 토로하는 아인에 비하면 분명 신선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설계적인 가치관을 만든 아버지에 대한 경험과, 그 자살로 인한 충격 등 분명 소설적으로 방점을 찍을 부분이 많은 편이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배경지식에 그칠 뿐이라는 것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아버지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인지하고 그것이 분명 큰 충격이 되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지만, 사실 이것은 독자 된 입장에서 개인적인 해석에 불과하지, 작품에서 보여주는 해석은 아닙니다. 이 작은 경험은 그저 ‘시온’이라는 인물이 지금처럼 망가진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부연설명에 그칠 뿐이죠.

 

사실 작중 인물의 뒤로 깔려 있는 경험들의 얇은 두께는,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처음 소설을 쓸 때 나타나는 엉성함과 닮아 있습니다. 처음 학생들에게 습작을 시켜보면 주제들이 놀랍도록 비슷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로에 대한 고민, 학교 친구들과의 갈등, 부모님에 얽힌 문제 등…….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들이 학생 된 입장에서 가장 익숙한 경험이기 때문이죠. 다만 그렇게 태어난 인물들이 여느 학생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에서 소설적인 역할을 하게 되려면 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게 됩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인’과 ‘시온’이 여느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인물 A, 인물 B를 벗어나야한다면 그 바탕에 필요한 재료들이 있습니다. 그 재료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따지자면, 다음 키워드로 연결됩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설득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작품은 무척 강렬한 인물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스토커가 된 남자친구, 살인마라는 정체성을 숨기고 있는 미치광이, 그리고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피를 빨며 살아가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그 예시가 되겠죠. 이런 존재들이 한 데 엮여 있는 것만 해도, 이 작품은 무척 맛이 강렬한 재료들은 냄비에 담아놓은 듯한 인상을 주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인물들에게 마땅한 설득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당장 ‘아인’을 살펴봅시다. 이 인물은 모종의 이유로 스토커가 되기를 자처한 남자를 보여줍니다. 어느 여자에게 집착하는 과정, 그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과정, 어쩌면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과정 등 당장 이 인물에게 필요한 수많은 정보들이 필요합니다.

 

사실 이 정보들이 적은 편은 아닙니다. 작가님은 꾸준히 ‘아인’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정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으며, 자존감이 추락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남자에게 미지라는 여자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로 비춰졌는지까지……. 앞서 설명했던 두께가 얇은 경험들이 그 정보라고 할 수 있죠.

 

다만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들이 ‘아인’을 추락시켰는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찍힙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 보이는 아인은 원래부터가 그런 망가진 인물이었다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죠.

 

(P.110) 처음부터 내 인생이 비참했던 건 아니다. 재수 없게 딱 한 번 뒤집힌 식판이 내 운명을 바꿨다. 급식실에서 장난을 치다 우연히, 유명한 일진 현수의 식판을 뒤엎었던 것이다.

 

아인은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계기를 어릴 적에 일진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일을 꼽습니다. 실제로도 그의 입으로 흘러나오는 인생은 무척 불우합니다. 학창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자존감을 바닥으로 추락했고, 직장 내에서도 심한 꾸중을 듣는 등 고문관으로 찍히며 갖은 수난을 당합니다. 그렇게 자존감이 망가졌다는 인물이 공부를 잘해서 대기업에 갔다거나, 데이트 좀 하라고 소개팅을 받는 등 삶의 일관성이 부족하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본인 생각으로 한정해서) 학창시절의 트라우마는 제 인생에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144) 시온이라고 했나? 그 남자에게서 현수와 진원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상냥함을 그린 가면 아래 섬뜩한 표정을 숨기고 있는 남자.

 

더 나아가, 이런 경험들은 시온의 민낯을 발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즉, 맞아본 놈이 때릴 놈을 알아본다는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독자 된 입장에서 일진에 대한 트라우마라는 보편적인 경험이 미치광이 살인마를 구분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그 위기감의 정체는 정답이었지만, 아인이 시온을 주목하게 된 계기 자체가 미지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 ‘느낌이 들어서 알아봤는데 역시!’라는 식의 본능에 가까워서 이 관계가 헐겁다는 인상을 주게 됩니다.

 

앞서 말한, 근본적으로 망가진 캐릭터라는 인상이 이런 헐거운 설득력에서 비롯됩니다. 애초에 작중에서 보이는 ‘아인’이라는 인물 자체가 정상적인 기준에서는 많이 멀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버스 창문에 스마일리를 그려서 자신의 기분을 대입한다거나, 곰 인형을 선물하며 ‘자기를 지켜 줄 곰돌이 기사야’라는 대사로 소름끼치는(?) 애정표시를 한다거나, 스토커로 신고 당하고 혼자서 소주 한 병 땡기면서 주먹으로 마루를 때린다거나…….

 

심지어 눈치도 조금 없어서, 굳이 전 여자친구 테이블로 찾아가 남자친구 앞에서 말을 걸고 버티는 등 요즘 기준으로도 상당히 고전적인 감성을 갖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이런 친구가 여자가 자신에게 관심 있는 줄 착각하고 고백하다가 심한 말로 차이곤 하는데, 딱 그 정도의 인물로 보이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P.120) 냉혹한 진원 선배 밑에서 나는 일진한테 당할 때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훔쳐야 했다.

(P.147) 덕분에 스토가 됐습니다, 박시온 씨. 스타트업 대표? 돈이면 다 될 줄 아냐.

 

흥미로운 것은 이런 자신에 대한 ‘아인’의 태도입니다. 이 인물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나약함에 대해 바깥에서 이유를 찾는 나쁜 버릇을 갖고 있습니다. 내 인생이 망가진 건 학창시절 일진 때문이고, 내가 멀쩡하게 직장생활을 못 한건 선배가 배려가 없어서고, 내가 스토커가 된 건 박시온 때문이고, 결국 납치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도 미지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까봐 어쩔 수 없던 거고…….

 

이처럼 아인은 세상 모든 일들이 다 자신을 멸시하기 때문에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며 제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습니다. 분명 제 입으로 공부도 잘 했으며, 옷도 꾸밀 줄 알고, 소개팅도 나가는 등, 자기 스스로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것에 비해, 발이 삐끗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오로지 주변사람들에게 과를 돌립니다.

 

문제는 독자로서 이 모든 사정이 아인에게 설득 된다기 보다는, 그에 대한 거부감으로만 이어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본인의 고문관적 기질이 지금 현 상황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자니, 무려 ‘스토커 납치범’이라는 사례는 너무 극단적입니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 굳이 시온에게 맞서고 미지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는, 그 고민의 정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작가님께서 이런 극단적이고 설득력이 부족한 인물을 가정해서 아인을 악당으로 묘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앞서 나온 아인의 학창시절부터 미지를 만나기까지의 과거들은 전부 불필요한 사족에 불과합니다. 이 인물은 그 자체가 원래부터 행동에 인과를 고려하지 않는 악당인데, 굳이 이런저런 사정을 덧붙여서 행동원리에 대해 납득시킬 필요가 없으니까요. 즉, ‘아인’은 인과가 필요한 소설적 인물로서는 평가가 힘들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어쩌면 이 아인을 굉장히 순수한 나머지 감정과 충동에 휘둘리는 인물로 그렸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도 들지만, 말을 더듬거나 변명이 많은 행동원리를 보면, 순수하다기 보다는 지능이 낮은 인물로까지 비춰집니다. 학창시절의 괴롭힘도 지능이 낮은 학생을 갖고 놀았다는 난폭한 표현을 곁들이면 상당히 그럴 듯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직장 선배의 폭언 또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감정적으로 아인을 괴롭혔다기 보다는, 정말로 일을 못 하니까 열불이 터졌다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기도 합니다. 한 줄로 표현하자면, 전형적인 배움에 어색하고 성찰이 부족한 고문관 기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납득할 수 없는 행동원리에 대해서는 ‘시온’도 결을 같이 합니다.

 

(P.194) 그 사건 이후 나는 내 삶의 모든 요소를 치밀하게 계획했다. 그리고 미지를 만났을 때, 나는 그녀 또한 무결한 내 세계의 일부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P.210) 그녀는 내가 보정해야 하는 사람이다. 단순한 소유욕이 아닌 더 높은 차원의 책임.

(P.231) 미지야, 널 완성시킬 사람은 오직 나 하나야. 넌 나에게로 오게 되어 있어.

 

‘아인’이 전형적인 저지능자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시온’은 한마디로 ‘광인(狂人)’의 표본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실패와 자살을 경험한 ‘시온’은 모든 것을 제 기준에서 설계하고 재단해야 직성이 풀리는 미치광이로 자라납니다. 실제로도 그의 서사 대부분은 미지에 대한 집착과 자기 자신에 대한 과욕이 대부분입니다.

 

언뜻 보면, 그가 지금처럼 망가진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짤막하게 언급되는 아버지에 대한 경험은 그만큼 자극이 크기 때문이죠. 하지만 건조하게 언어를 들여다보며 인과를 궁리하다보면, 그런 배경이 지금처럼 고장 난 철학을 실천하게 된 이유에 대해 어떤 영향을 끼친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 아빠가 이렇게 살았으니, 나는 사람들을 지하실로 데려가서 다 죽여야지’라는 인과 자체가, 처음부터 설명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요약하자면, 이 작품의 인물은 컨셉 자체에서 어긋나 있습니다. 왜 이들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나, 누가 진정한 내 편인가, 인간의 심연을 탐구하고 혼돈과 질서를 연구한다……. 그럴듯한 말들을 갖다 붙일 수 있겠지만, 그 전제는 모두 인간적인 사고가 가능할 때 나타날 수 있는 행동원리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아인’과 ‘시온’은 그런 탐구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정신병자들을, 정상인의 시선에서 이해하고 분석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니까요. 혹자는 ‘아인’의 행동에 대해서 ‘어릴 적부터 이어진 자존감의 파괴로 시온에게 느낀 열등감이 표출된 것’이라는 해석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충동이 ‘스토킹 납치’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너무 과도하다는 느낌입니다. 다만 ‘원래 아인은 지능이 낮아서 사고판단이 어색하다’는 식으로 전제를 덧붙이면, 엉성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일 여지를 주게 됩니다.

 

그렇다면 독자로서 당연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이런 인물들이 주를 이뤄야 했을까요? 그 답은 ‘미지’라는 캐릭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결말’에 대한 해석을 곁들이죠.

 

 

세 번째 키워드는 결말입니다.

 

이 키워드는 앞선 공감과 설득이 부족한 인물들과 결을 같이 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앞선 ‘아인’과 ‘시온’의 극단적인 행동원리에 대해 변명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죠.

 

고백하자면,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충격적인 결말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미지’라는 한 여인이 사건의 중심에서 피해자로 그려졌던 만큼, 그녀가 이번 사건의 흑막이라는 것을 넘어, 흡혈을 하는 초자연적 존재였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자극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인상 깊게 봤다고 표현한 다른 독자 분께서, 이런 결말이 모든 것을 망쳤다고 쓴 소리를 담으신 걸 봤습니다. 모든 걸 망쳤다고 할 만큼 난폭한 언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이 결말에 가기까지 다소 정보가 부족했다는 건 사실로 보입니다. 물론 ‘피가 모자란지 어지럽다’ 등 여러 방면에서 해석될 수 있는 복선이 있지만, 그조차도 결말을 위한 장치라고 보자니 너무 사소하게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결말이 좋다 나쁘다라는 이분법적인 언어로 판단하기 꺼려지는 게 사실입니다. 다만 왜 작가는 이 결말을 만들어야만 했는가를 분석하는 건 의미 있는 탐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결말에 대한 단서는 ‘미지’ 그 자체로부터 찾을 수 있었습니다.

 

(P.21) “아인아, 근데 가스 테러하고 사람 납치하고, 이거 범죄야. 너 쓰레기는 아니잖아.”

(P.134) 미지는 입술을 내밀었다. “치이, 재미없네. 내가 보니까 오빠는 세상 경험이 별로 없어. 그러니까 고리타분한 일밖에 생각을 못 하지. 나 따라다니면서 좀 보고 맡고 만지고 배워. 영역을 넓히란 말이지.”

(P.135) 나는 그녀가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했다. 말없이 웃으며 미지의 손을 잡았다.

 

개인적인 인상으로도 ‘미지’는 범상치 않은 인물입니다. 그것은 ‘아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상식적으로 ‘아인’은 이성으로서 매력을 느낄 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눈치도 없고, 지능도 낮고, 감수성마저 아저씨처럼 고전적이며, 핑계와 변명을 입에 달라붙은 소시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미지’가 그런 아인을 다루는 태도는 사뭇 차분합니다. 그에게 경험을 쌓아주겠다며 육체적 거리감을 좁힌다거나, 다소 쓴웃음이 번지는 애정행각에도 웃으며 맞춰주는 배려를 보여줍니다. 평생 주변인에게 배척당하던 그에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한 따스함입니다. 어쩌면 아인의 극단적인 행동 또한, 이런 미지의 온기와 시온에 대한 질투가 어린아이 같은 심리상태를 건드린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P.71) 그가 선물한 목걸이를 끌러 자리에 두고 카페를 나왔다. 그는 나의 세계에 입장 불가.

 

이런 ‘미지’의 행동원리는 작은 동물을 우리에 가두는 듯한 만족감에서 비롯됩니다. 남자들과 맺는 인간관계를 자신의 ‘세계’에 포함시킨다고 표현하는 것만 봐도, 아인과 시온의 관계는 그녀의 포만감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먹잇감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단순히 이성적인 매력으로 끌어낸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느낌입니다.

 

(P.204) 나는 직감했다. 그녀는 퍼즐의 마지막 귀퉁이를 메울 유일한 곡선. 미지가 웃을 때 나는 금이 간 듯 불안정한 그녀의 내면을 볼 수 있었다.

(P.210) 그녀는 내가 보정해야 하는 사람이다. 단순한 소유욕이 아닌 더 높은 차원의 책임.

 

말 그대로, 시온과 아인은 그녀에게 ‘홀려 있다’는 감각으로 그려집니다. 시온은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기세로 입맛을 다시는가 하면, 아인은 그녀를 구하겠다는 변명을 달아두며 범죄행각에 뛰어듭니다. 이런 극단적인 행동들은 그들의 망가진 천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분명하나, 이런 천성에 불씨를 떨어뜨리고 있는 존재가 바로 ‘미지’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부추길 수 있었던 ‘힘’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P.254) 내가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시작부터 그녀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 ‘힘’은 말 그대로 인간을 벗어난 무언가로 해석됩니다. ‘미지’는 초자연적이 존재이며, 그 힘이 그저 흡혈에 국한된 능력은 아니리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컨셉을 고려하면, ‘미지’가 숨기고 있는 이 초자연적인 힘이야말로, 주변의 남자들이 자신에게 집착하게 만드는 원흉이라는 추측으로 해석됩니다. 즉, 작중에서 아인과 시온이 미지에게 달려드는 이유 또한, 미지가 알 수 없는 힘을 이용해 자신의 ‘세계’로 그들을 끌어들인 결과물이라는 뜻도 되겠죠.

 

이 ‘초자연적인 힘’은 앞서 지적했던 ‘극단적이고 설득력이 부족한 인물’들에 대한 답으로 귀결됩니다. 왜 이들은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왜 그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버린 채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충실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을까요? 만일 이 의문에 ‘더 상위에 있는 존재가 그들을 조종했다’는 답을 달게 된다면? 말 그대로, 독자들은 반론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인간을 뛰어넘은 존재가 인간을 쥐고 흔들었다는데, 그런 존재에 대해 현실적인 반론을 제시할 수 있을 리가 없죠.

 

요약하자면, 이 결말은 작품 전체에 퍼져 있는 비상식들을 납득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소설적으로 이상적인 방법인지에 갖은 토론거리가 있겠으나, 더 이상 인간으로 보기 힘든 인물들 사이에 진짜 인간이 아닌 것이 끼어 있었다는 이 컨셉만큼은 무척 흥미롭다는 것도 사실이겠습니다.

 

*

*

*

 

감평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들어가니, <미지의 세계>라는 제목에서 느껴졌던 거대함이 사뭇 작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작중의 인물들은 각각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었습니다. ‘아인’은 본인의 불우했던 시절을 벗어나지 못 했고, ‘시온’은 제 고장 난 살육본능을 끝내 반성하지 못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지’마저도 남자들을 먹잇감으로 보는 그 짐승적인 세계관을 작중 내내 유지했죠. 그것이 그들의 ‘세계’이고, 작품 태그에서 언급되는 ‘인간의 심연’일지도 모릅니다.

 

고백하자면, 이런 요소에서 작가님이 갖고 있는 소설적 내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중 인물들이 극단적일지언정 그 행동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구성과 더불어, 스토킹 납치라는 흥미진진한 사건에 대한 묘사, 그리고 그곳에 담아내려고 시도했던 깊은 주제들은, 이 작품이 ‘소설적’이라고 느낄 수 있었던 요소였습니다.

 

다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만일 작가님이 ‘이것이야말로 소설이야!’라고 느끼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한편에 내려놓았을 때 이 작품이 어떻게 변화할지 말이죠. 어쩌면 작중의 인물들은 훨씬 단순해지고, 감정적으로 가라앉으며, 주제적으로도 깊이가 없는 밋밋한 소설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테두리가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작가님의 손에서 채워질 수 있는 재료들을 떠올리면, 어쩌면 더 인상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게 됩니다.

 

작가님의 ‘세계’가 작품으로 완성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감평을 마치겠습니다.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공백포함 10703자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