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종류의 재능을 지녔군.”
작품을 손에 쥔 초반부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한 말이지만 말이란 것은 균형을 갖추기가 힘들어서, 처음부터 저렇게만 말하면 작품에 대한 극단적인 찬양처럼 느껴지는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 못 박아두자면, 저는 이 작품을 결론적으로는 평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면 또 너무 격하시키는 것처럼 느껴지려나요? 아무튼 서두에서 말한 ‘재능’이란 것을 뭐라고 따로 칭하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는데(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시길), 제 직관에 기대어서 이름 짓자면 “원 소스 멀티 유즈 시대의 글쓰기”라고 명명할 수 있는 종류의 재능입니다. 정통적인 빌드업 과정을 건너뛰고 대사와 상황을 위주로 빠른 템포를 가져오는 소설이라고 할까요?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적 재미가 아니라 문학성으로서는 어떤가.. 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만(로버트 맥기의 책에 이에 관한 얘기가 있었는데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군요), 어쨌든 흡인력 있고 매력적인 글쓰기인 점은 분명합니다. 이런 건 박치가 춤을 추기 어려워 하듯이 정통적인 소설을 쓰던 사람이 후천적으로 터득하기는 어려운 종류의 스킬로 보여 저는 그냥 재능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소설은 254개의 문단으로 이뤄져 있는데 대사는 139개나 됩니다. 한 문단에 두 개의 대사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쳐도 엄청나게 많이 쓰는 편이죠. 물론 대사의 비율만으로 이런 느낌이 나는 건 아닙니다만.
그럼 왜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평작이냐하면, 까놓고 말해 결말에서 다 말아먹었기 때문입니다. 복선은 빈약한데 전개는 비약하는 바람에 감정적 납득도 서사적 설득력도 잃고 말았습니다. 물고 물리는 관계, 라는 것을 표현한다는 방향성 자체는 맞다고 보는데 초현실적인 존재에 기대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내놓는 것이 이전의 전개와 더 어울리는 방향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