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최근에 유치원에 다니거나 그보다 어릴 듯한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었습니다. 한때 저도 냈을 그 소리는 정말 높고 커다래서 깜짝 놀라서 쳐다봤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즐거움으로 충만한 웃음소리였고, 실제로 놀이터에서 보호자와 놀고 있는 아이는 정말 즐거워 보였습니다. 귀는 좀 아프지만, 그 풍경만 본다면 세상에는 기쁘고 행복한 일만 이어질 것 같았죠.
미성년자일 때는 근처에 초등학교나 유치원이 있어서 오며 가며 작은 아이들을 볼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때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단 얘기가 그리 와닿지 않았어요. 그냥 유독 이전 세대에 아이가 많았을 뿐이라고 여겼죠. 그러다 웃음소리에 놀랐을 때, 놀랄 만큼 오랫동안 듣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야 드디어 실감한 것 같습니다.
그런 상태로 이 글의 세계관 설명을 보고 있자니 정말 남 일 같지 않고 별세계 이야기 같지도 않더라고요…. 지금도 좀 비슷하지 않나요? 아이를 얼려두진 않지만 어릴 때부터 휴대폰으로 동영상이나 게임을 쥐여 주고,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불쾌감부터 표현하는 게요.
현실의 연장선 같은 세계관의 SF는 보통 희망으로 끝나는 걸 아는데도 조마조마하면서 읽었습니다. 공권력에만 들키지 않으면 될 줄 알았는데 같은 건물에서 사는 사람이 염탐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가오려고 하잖아요! 그러다 채령과 ‘준하’였던 하준이의 얘기를 보면서 잊고 있다가,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 심지어 하준이랑 같이 있다는 묘사에는 채민만큼은 못하겠지만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공포가 민망함으로 바뀌었을 때, 채령에게는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했던 채민이 하준이를 지켜야 할 대상으로 보고 죽어도 하고 싶지 않다던 사과를 입에 담은 부분에서는 이런 게 어른이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나이를 먹으면 다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라는 실감은 안 들더라고요. 사람이 생각을 안 하고 살면 그대로도 아니고 세상은 더 발전하니 퇴보한다는 게 무섭기도 하고, 저는 몰라도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뭐, 내부의 적인 줄 알았던 사람이 같은 편이라고 땅땅 못 박고 갔고, 하준이도 처치를 받았으니 안심하고 있었는데요…. 유년 냉동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시행된 지 오래됐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개인적인 기록에 저도 글썽글썽했는데 글쎄, 그 질문은 너무 반칙 아닌가요…? 그런 질문을 한 용기에 하준이의 답변 듣기도 전에 눈물이 터졌는데 답변까지 들으니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너덜너덜한 상태로 회상과 겹쳐지는 현재가 너무… 눈이 부시다고 느낄 만큼 아름다웠어요. 실제로 제 눈앞에서 빛나는 건 화면이지만 채민과 같은 게 보이는 것 같더라고요.
육아는 정말 힘들고 아이는 마음처럼 되지 않고, 그런데도 제가 한 모든 말과 행동이 이 아이의 남은 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저는 그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어릴 적을 기억하고 현재를 사는 아이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열어갈 미래가 너무 찬란해 보였어요….
이 작품과 만나서 기뻤습니다. 어쩌면 저도 채민처럼 누가 빈약해진 줄도 모른 절 깨뜨려 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사실 찔찔 운 게 전부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조금은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