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는 팬텀 전투기처럼 빠르게 백만 명의 사람을 구하는 영웅이 될 거예요!’
(본문.P27)
목차
1.창작물속 『영웅(英雄)』에 대한 단상
2.작품에서 발견되는 세 가지 키워드
3.앞으로 우리가 다룰 『영웅(英雄)』에 대해…
1.창작물속 『영웅(英雄)』에 대한 단상
인간이 그들의 삶을 문자로 기록하던 역사 시대부터 ‘영웅(英雄)’이라는 소재는 언제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한국사를 살펴보면 수나라의 대군을 막아내고 고구려를 구했다는 을지문덕 장군은 틀림없는 영웅이었고, 중국사를 살펴보면 흉노를 외몽골 지방까지 몰아낸 곽거병 또한 틀림없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들은 ‘영웅’으로서 끈질길 정도로 구전되며, 그들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 자명합니다. 영웅이라는 소재를 망토를 두르고 건물 위를 뛰어다니는 초인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느끼는 것보다 역사가 짧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시대를 초월하며 만들어지는 여느 ‘영웅’들의 모습은 언제나 사람들의 동경을 자극했습니다. 우리가 고단하다고 느끼는 삶의 일부를, 가장 낭만적인 방식으로 채워주는 존재들이기 때문이겠죠.
이번에 읽은 <네 걸음 만에 백만 원을 써버리는 초능력자 영웅> 또한 이런 삶을 반영하며 조형한 어느 ‘영웅’을 그리고 있습니다. 돈을 쓰는 것으로 자신의 속도를 끌어올려 사람들을 구한다는 명확한 컨셉을 제시하면서, 그에 따른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발상이 무척 신선한 작품이었습니다. 소소하게 쓴웃음을 자극하는 작가 본인의 개인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 명의 독자로서 ‘짧고 굵다’는 관습적인 표현을 달아볼 수 있을 듯합니다.
전체적으로 분량이 적은 편이기에 소설적인 서사나 인물을 분석하기는 힘든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평을 쓰고 있는 이유는, 이 짧은 소설에서 보여준 ‘발상’으로 ‘영웅’이라는 소재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에 대한 선명한 표본에 대해서만큼은 다양한 토론거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2.작품에서 발견되는 세 가지 키워드
저는 이 작품에서 보여준 ‘발상’을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볼까 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분들이 계시다면, 후에 따라오는 ‘영웅’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한 번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무척 유익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첫째 ‘어른’입니다.
일반적으로 현대 창작물에 창조되는 영웅은 ‘어른’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십대소년소녀를 비롯해, 심지어 갓난아기까지 영웅으로서 활약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리기도 합니다만,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영웅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어른’이라는 표현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영웅 또한 ‘어른’의 모습입니다. 주인공은 영락없이 ‘사회적 어른’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혼한 아내와 아들을 두고 있고, 사회인으로서 경제활동을 해야 할 반강제적인 의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P4) 때대로 회의감이 들고는 한다. 모처럼 사람을 구하고 돈을 번들, 금세 다 쓰고 만다.
(P12) “죄송합니다. 올해 국선 영우에 선발되지 못하셨습니다.”
그런 그에게 초능력은 곧 ‘사회적인 능력’으로 묘사됩니다. ‘국선 영웅’이라는 직위에 면접을 봤다가 떨어지고 절망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그가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수단이 후천적으로 각성한 초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인물을 조형하는 가장 큰 특징은 사회에서 자리를 잡지 못 하고 있는 어른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둘째 ‘동경’입니다.
흔히 작품에서 누군가가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며, 이 인물이 왜 영웅이 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힘을 주어 묘사하곤 합니다. 그 이유는 자명합니다. 이 영웅 또한 우리와 같은 사람이며, 욕망과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죠.
(P27) “엄마, 저는 팬텀 전투기처럼 빠르게 백만 명의 사람을 구하는 영웅이 될 거예요!” 다섯 살 때 갓 초능력이 발현했을 때, 어머니 앞에서 맹세했었지. 그래서 영웅명(名)을 ‘밀리언 팬텀’으로 정했더랬다.
작중의 화자도 이런 동기가 명확합니다.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은 후천적으로 발현한 초능력일지도 모르나, 그가 지금 영웅으로 활동하게 만드는 씨앗을 만든 것은 어린 시절의 ‘동경’이었습니다. ‘백만 명의 사람을 구하는 영웅’이라는 선명한 이상을 그리며, 훗날 자신이 되고 싶은 영웅의 모습을 그려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 세계관이 후천적으로 초능력을 얻고, 국선 영웅이라는 제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화자도 자신들의 세상에서 활약하는 영웅들에게 제 모습을 겹쳐봤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떠올려보면, 영웅은 본래 ‘동경’을 받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선뜻 하지 못 하는 일에 손을 뻗어주며, 우리가 변명을 달며 무시하는 일들에 기꺼이 뛰어드는 힘이 있는 존재로 묘사되죠. 우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한 셈입니다.
이상은 곧 바라는 것과 의미를 같이 합니다. 그들의 모습이 ‘인간’으로 그려지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우리들도 막연하게나마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바라는 ‘동경’을 품고 있기 때문이겠죠. 이 작품의 화자에게서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은, 그 또한 그런 ‘동경’을 씨앗으로 품고 있는 여느 인간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봉사’입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수많은 영웅들의 모습이 창조됐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의 속성은 ‘봉사’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공익에 힘을 쓰는 데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사람을 구하고, 악당을 무찌르는 일련의 행위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죠. 물론 현대에 이르면서 다소 속물에 가까운 영웅을 그리곤 합니다만, 결국 그들로 표현되는 주제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영웅…… 즉, 인간들에게 ‘봉사’하며 지킬 수 있는 가치에 대해 역설하는 것으로 귀결되곤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누군가 영웅을 꿈꾸는데 ‘나도 영웅이 될 거야! 영웅들은 큰 집에서 살 수 있잖아!’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제3자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는 자명하지 않나요? 그것이 이상과 동경으로 점칠 된 영웅의 본질적인 가치라는 뜻이죠.
이 작품은 그 ‘봉사’의 의미를 아주 매력적으로 비틀고 있습니다. 초능력을 쓸 때마다 돈이 빠져나간다는 설정은, 그 초능력을 피부로 와닿는 현실적인 무언가로 묘사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낯선 이미지는 아닙니다. 2001년도 애니메이션 ‘지구방위가족’에서도 관련 설정이 등장하며, 한 가족이 악당들을 무찌를 때마다 커다란 자금이 투자되며 고생하는 묘사를 넣은 적이 있습니다. 이토록 물질적인 가치가 곧 초인적인 힘의 대가로 지불된다는 설정은, 이들이 지불하는 대가 또한 여느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힘이 있습니다.
(P22) ‘저대로 가다간 구조대가 오기 전에 어르신들이 타 죽겠어!’
(P25) “근처에 영웅은 아무도 안 계시나요?”
(P30) 나는 주저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은행 어플리케이션에 접속해서 마이너스 통장을 뚫었다. 다행히 아직 신용점수가 간당간당해서 간신히 성공했다.
사실 의아하지 않나요? 화자에게 초능력이란 아픈 손가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능력은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이나 마찬가지로 그에게 주어졌고, 그 능력은 그를 사회에서 규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됩니다. 하지만 그 능력은 사회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하기에는 힘이 모자란 것이 역력합니다. 번듯한 취업자리 하나 얻지 못 하며, 초능력을 발현할 때마다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페널티(penalty)마저 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양육권을 아내에게 넘긴 채 배를 굶기는 삶을 지속합니다. 묘사로 미루어보면, 오히려 초능력을 쓸수록 사회적인 위치가 떨어지는 저주를 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그는 능력이 필요한 순간에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면서도, 사람들이 바라는 ‘영웅’의 모습으로 움직이는 데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만용으로 비롯된 충동이라고 비웃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충동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만 봐도 본질적인 ‘영웅’의 속성이 선명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돈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돈을 지불하면서 사람을 구한다고? 사회적인 봉사나 마찬가지겠죠.
이 작품에서 매력과 공감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바로 이 ‘봉사’라는 키워드를 주목할 만합니다.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그 봉사정신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영웅의 모습이라는 반증일 뿐입니다.
3.앞으로 우리가 다룰 『영웅(英雄)』에 대해…
앞으로 우리 창작자들이 만들 ‘영웅’의 모습은 무척 다양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 형태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앞서 얘기했던 ‘영웅의 본질’이라는 속성만큼은 결이 비슷할 거라고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웅을 한 명의 인간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미묘한 모순이 존재합니다. 인간은 감정과 욕구에 휘둘리는 나약함을 가정하지만, 영웅은 그 나약함을 뛰어넘는 초인을 가정하고 있죠. 이 둘을 양립시키기 위한 수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다음 장면이 그러합니다.
(P66) 빚은 빚대로 졌지만, 어찌저찌 아내와 화해할 기미가 보이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네 걸음 만에 백만 원을 써버리는 초능력자 영웅치고는 나쁘지 않은 시작이야.
화해할 기미가 보인다고 했지만, 화자의 형편이 만족스러워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그는 배고프고, 궁핍하며, 고개를 들기 힘들 정도로 사회는 냉소적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 마지막 결말이 의미하는 바는 제법 울림을 가집니다. 작가가 어떤 영웅에게 주고 싶은, 작은 보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겠죠.
저는 이 ‘보상’이라는 것이 거대한 무언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 결점을 살피고, 입술 한 번을 축일 수 있는 물 한 컵을 나눠주는 정도야말로, 앞서 말한 나약함을 채워주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창작될 영웅들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예상컨대, 그들의 모습에서 갈증은 더욱 선명해질 것이며, 작가는 그 갈증을 채워줄 이슬 한 방울을 고민할 것입니다. 단,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에서 누가 되지 않는 선을 고민할 뿐이겠죠.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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