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간지러운 작품 공모(비평)

대상작품: 오렌지 (작가: 선연, 작품정보)
리뷰어: 종이, 3일전, 조회 11

이 리뷰는 작품 전체 내용을 다루므로, 읽지 않으셨다면 주의 부탁드립니다. 의도적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할 생각은 없지만, 리뷰 내용 상 어느 정도는 결말을 암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길지 않고 꽤 좋은 소설이라서, 먼저 읽어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 소설은 이야기 전개의 도구로 시간여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 소재로는 어머니와 자식 간의 사랑을 사용하고 있고요. 그 두 가지 모두 꽤 흥미로운 주제이기에, 작품도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두 가지가 조화롭게 얽힌다거나, 충분히 전개되었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오렌지’는 마치 누가 저를 아주 조금씩 간지럽히는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세게 간지럽혔다면 시원하게 재채기가 나왔겠지만, 그 정도는 아닌 간지러움인 거죠.

시간여행에 초점을 맞춰 보면, 이 소설은 참신한 설정을 제시합니다. 과일을 터트리면, 과거로 이동합니다. 그 과거에서 다시 또 과일을 터트리면, 현재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소설의 전체적 내용을 고려하면, 주인공 집안의 여자들이 이 능력을 가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주인공의 외할머니, 그리고 어머니까지도 과일을 터트려서 과거로 이동하니까요. 그러나 그 이상의 무언가가 설명되거나 제시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썩기 쉬우니까’ 하필 과일인 것 같다는 외할머니의 말 뿐입니다.

이것이 크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시간여행이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시간여행을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나가기만 해도 이야기가 엄청나게 길어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이 소설은 그런 면에서 의도적으로 시간여행에 대한 설명을 줄여서 주제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시간여행에 대한 부분도 전개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이야기의 주제에 초점을 맞춰 보면, 이 소설은 어머니와 딸 간의 사랑을 제시합니다. 이는 딱히 참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주 강력한 주제이고 이입하기 쉬운 주제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있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이 이야기는 시간여행과 섞여 있습니다.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을 임신하고 있는 상태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주인공은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과거에서 당신 스스로를 위해서 자신을 낳지 말라고 어머니에게 말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할아버지 역설’의 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장면으로, 아주 감동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일부러 적지 않았지만, 그 외에도 주인공의 감정이나 생각을 통해 전개되는 내용들이 좋았습니다.

다만 다루고 있는 주제나 소설 속에서 발생하는 전개 등이,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설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크게 보자면 애초에 주인공을 사랑했던 어머니가 변했던 것이라거나, 주인공의 아버지가 가족을 버린 것 등,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이니까 이렇게 설정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시간여행과 섞인 이야기인 만큼, 시간여행이 주제 그 자체에도 연관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정리하면, 이 소설에서 시간여행이라는 도구의 사용은 나름 흥미로웠고 다루는 주제는 감동적이었습니다. 소설의 장면들은 아름다웠고 결말도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도구나 소재를 조금 더 전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둘을 더 잘 조화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정말 간지러운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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