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익숙한 누군가가 그 어느 때보다 낯선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는 흐름은, 이제 하나의 장르로 굳어질 정도로 많은 창작자들의 손에 응용되어 왔습니다. 이 흐름의 매력은 ‘인간관계’라는 무수한 실타래를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꼬아줄 수 있다는 데에 방점을 찍습니다. 너무 당연하다고 믿었던 나의 친구, 가족, 연인 등에 작은 변화를 주는 것으로 그것을 ‘있을 리가 없는 사건’으로 규정합니다. 그것은 곧 내 인간관계에 파괴이며, 가장 가까운 존재에 대한 거리를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읽은 <자애의 빛> 또한 이런 흐름을 익숙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10년 만에 눈을 뜬 나의 가족이 사실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세우며, 그 원인을 쫓고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목격하는 것이 주요 사건입니다. 전체적으로 밋밋할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을 탄탄한 필력으로 주인공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며,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는 마지막 장면은 그 나름의 여운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첫인상까지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10년 만에 냉동인간 상태에서 깨어났다는 누나와의 만남을 지나치게 평범하게 표현하며, 그에 얽혀 있을 수많은 사정들을 뒤로 물리는 시작은 다소 의문마저 있었습니다. 물론 필요한 사건들을 위한 속도감 있는 전개라는 평도 가능하겠으나, 그 대상이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서 너무 많은 감정과 사정을 생략했다는 것이 자명했습니다.
그런 존재에 대한 ‘변화’를 표현하는 방식 또한 다소 게으른 편이었습니다. ‘선행’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에 큰 이견은 없으나, 그 존재가 하는 선행들이 정말 ‘봉사’라는 이름으로 규정할 수 있는 단순한 일들이라는 것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런 일상적인 봉사가 꺼림칙한 음모로 엿보이는 순간을 만들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그 순간들이 행적에 비해 너무 장황한 시선으로 표현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만약 이 존재가 음험함을 감춘 ‘선’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단 하나의 에피소드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물건을 기부하거나, 보호소를 찾아가는 일보다 더 비밀스러운 일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이런 상황에 아무리 ‘자애로워 보인다’며 필사적으로 말을 덧붙인들, 그 모든 설득력이 화자의 시선 하나뿐이라는 것도 자명합니다.
하지만 출구가 없는 터널로 달려가는 듯한 주인공 심리 묘사와, 현실과 맞닿아 있는 실감나는 대사들은 작가의 경험치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추락과 결심을 반복하는 주인공의 심리에 비해, 그를 무너뜨리는 장치들은 너무 평범하고 게을렀습니다.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난폭한 말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취향을 간지럽히는 이 소재만큼은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덧붙였지만,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소설을 만나 기쁜 마음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상 깊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품 보여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