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이지만 나의 눈과 감정, 마음까지 흐릿해지는 마법 ‘흐릿한 길’ 공모(감상)

대상작품: 흐릿한 길 (작가: 장다겸, 작품정보)
리뷰어: youngeun, 2일전, 조회 9

우연히 이 작품을 본 후 한동안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분명 짧은 글이었을 뿐인데 왜 자꾸 이 작품을 무심코 열어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먹먹하다고 해야 할지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 건지 한 글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잔잔한 글의 흐름과 반대되는 강렬한 느낌에 리뷰를 써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가장 걸리기 싫은 질병 1위는 치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무려 영혼을 갉아 먹는 병이라니, 무시무시한 표현이다.

치매라는 병이 무서운 건 기억력이 감퇴되고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증상들보다

나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계속해서 고통 받기 때문에 아닐까.

남은 인생을 내가 아닌 것 같은 나로 살아가다 결국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과정이라니.

다른 병도 마찬가지겠지만 치매는 한 사람의 삶을, 나아가 가족의 삶까지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악마다.

 

이 작품에선 가족이 아닌 내가 그 무시무시한 악마 같은 병에 걸린 상태이다.

분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돌아오지 않는 존재.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면서도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흐릿한 길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다정한, 그리고 친근한 얼굴이 다가오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름 모를 사람에게 업힌 채 흐릿한 길을 함께 걷는다.

 

엄마. 나 집 가는 길을 잊어버렸어요. 라는 문장을 보자마자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고 있는 한 아이를 보는 것 같아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엄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마음일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사용했을 뿐인데 두려운 감정이 시작되고 점차 감정이 심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흐릿한 길이라는 건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나의 머릿속을 의미하는 걸까.

아님 분홍빛 낙화들과 연인들의 풍경보다 더 그리운 존재를 기억하는 시선의 흐름일까.

소중한 존재가 돌아왔을 때 느낀 안도감이 눈물로 표현된 걸까.

여전히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어 한동안 이 작품을 자주 열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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