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길은 착한 자의 선의로 포장되어있다. 악마를 곁들인. 공모(감상)

대상작품: 저녁과 악몽 (작가: 용복, 작품정보)
리뷰어: 글풍풍이, 10시간전, 조회 6

오래 전부터 괴이한 꿈을 꾸는 승희. 그녀는 과자 집이 나오는 꿈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하지만 전혀 단서를 찾을 수 없다. 가족을 챙기는 일상의 업과 인간/가족관계에서 스트레스와 무기력함에 노출되어 있던 승희는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남편의 휴가 강요에 얼떨결에 홀로 제주도로 떠나게 된다. 제주도에서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던 승희는 훌쩍 체크아웃을 하고 정처없이 방황하다 섭지코지의 유령 하우스에 다다르고, 그곳이 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장소임을 단박에 알아챈다. 홀린듯 유령 하우스로 들어간 승희, 과연 그녀를 이곳에 부른 것은 무엇일까?

 

1. 현실

한국에서의 여성의 삶, 특히 주부의 권태로움과 수동적인 삶으로 인 소실된 주체성에 관한 고민을 담은 작품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녁과 악몽’은 흥미롭게도 공포와 절망을 코스믹 호러라는 장르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마치 제주도 어디선가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의 그림사이로 크툴루 같은 악의 존재가 불쑥 튀어나올 듯한 음하고 축축한 기운이 작품 전반에 흘러넘칩니다. 꿈과 현실이 대립하고, 사소하고 반복적인 일상과 변칙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벤트가 거칠게 맞물려 있습니다. 깻잎과 회무침, 식탁 위 얼룩, 늦은 밤 가족이 먹는 소주와 젤리만큼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소재들은 승희가 받는 스트레스와 무력함, 삶의 비주체성을 마치 불판위에 낙인처럼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승희는 하루만에 제주도로 떠나고 홀린 듯 굼의 장소를 찾아 나섭니다. 그곳은 앞에서 구체적인 일상을 다룬 것과 다르게 이 세상에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기괴함과 모호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그녀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인과관계가 모호합니다. 이는 작가가 생각하는 악몽이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제주도를 떠나기 전, 아이들을 양육하고 가사일을 하는 승희에게는 주체성이 없습니다. 일어나야 하는 시간, 밥을 차려야 하는 시간,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시간, 다른 학부모를 만나는 시간, 돌아가서 정리를 하고 저녁을 차려야 하는 시간은 모두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그녀의 주요 근심거리는 또한, 그녀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한 것입니다. 심지어 휴식을 위해 제주도로 떠나라는 선의의 제안조차, 장소와 시간 모두 그녀의 의지와 전혀 상관 없는 것입니다. 승희는 제주도를 가고 싶지도 않았고 내일 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 여행은 애초에 그녀를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또 다시 ‘타의’에 의해 쫓겨나듯, 낯선 곳으로 흘러갑니다.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승희의 의지로 찾는 곳이 있습니다.

 

2. 지옥

승희의 꿈에 등장하는 음침한 장소에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승희의 미래라는 것입니다. 섭지코지 어딘가에 있는, 이야기 속에서 위치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그곳을 승희는 스스로 찾아갑니다. 그녀는 어딘가에 있을 ‘진짜 나’를 찾아 해매입니다. 꿈 속의 그림과 장소를 정확히 찾은 승희, 그곳에는 진짜 나 따위는 없고 그저 불행한 사건만 있을 뿐입니다. 즉 ‘너의 미래’는 승희의 죽음을 뜻합니다. 타인에 의해 매일 조금씩 바뀌고 닳아버리는 승희의 최후는 소멸입니다. 다만 여기서 그녀가 왜 그런 꿈, 예지몽을 꾸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가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모래알 같은 고통과 산후우울증 등으로 쪼그라들다 못해 소멸해버린 승희의 자아가 바로 이 악몽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자신의 쓰임이 다 했을 수 있다는 고민은 결국 점지된 사형식처럼 그녀를 잠식해 갑니다. 즉 그녀를 이곳으로 끌어내 지옥으로 데려가는 이는 다름아닌 핸드폰 너머의 그들입니다. 승희가 꿈의 장소로 직접 찾아간 것 역시 자의로 보이는 타의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정체성의 상실로 말미암아 발생한 무의식의 공포는 어느순간 임계점을 넘어 그녀의 겉으로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3. 현실 = 지옥

 

이 짧은 이야기가 이렇게 먹먹한 것은, 십수년에 달하는 승희의 고민, 고통의 결과가 잘 계획된 그녀의 죽음이라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주요 화자는 승희이지만, 이 이야기의 구조는 사실 덫을 놓아둔 설계자가 저기 위에서 바라보는 듯한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승희와 남편, 주변인물들은 그저 꼭두각시처럼 자신의 일을 행합니다. 거기에 악의는 없습니다. 잘 짜여진 연극처럼 각자의 임무를 하면 승희는 마치 연가시에 꾀인 사마귀처럼, 죽음의 겉으로 서서히 걸어갑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만류도 자각도 없습니다. 이야기는 승희의 죽음 이후에 다른 후보자 B로 바로 컷이 넘어갈 것처럼 날카롭게 마무리되어 있습니다.

코스믹 호러에는 탈출구가 없습니다. 우주적인 악, 거대한 스케일의 어둠이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주인공의 운명을 엉망진창으로 만듭니다. 대부분의 코스믹 호러는 불의의 사고에 가깝습니다. 길 모퉁이를 잘못 들었더니 이세계였다는 식이죠. 하지만 승희의 이야기는 잘짜여진 디오라마 같습니다. 승희는 그저 태어났고 살았기 때문에 뜻하지 않게 제주도로 가고, 어쩌다보니 유령하우스로 가게됩니다. 지독한 이야기이고 운명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그 어떤 희망도 없는 이 소설은 다른 어떤 서사보다 승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암울함과 부당함을 강조합니다. 그 어떤 가정이나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음 희생자가 생기지 않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처음엔 참신한 코스믹 호러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 구조를 생각해보니 함의하고 있는 부분이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흥미로운 작품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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