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에서 인간이 만든 지성체에게 감정이 있다면 전개는 보통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존재 자체로 행해지는 폭력적인 대우에 분노해서 반란을, 나아가 혁명을 일으키거나, 혹은 인간을 사랑해서 대상과 같은 인간이 되고 싶다고 바라고 맙니다. 그러니 감정에 따라 능률이 오르내리지도 않을 기계에 감정 모듈 같은 걸 붙여 봤자 후환만 생길 뿐이라고, 떠날 때도 침을 뱉던 관계자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러면 이 이야기는 시작하지 못 하겠지요. 어쩌면 이런 곳으로 자신을 파견 보낸 이들에게, 그리고 이 로봇에 남기는 복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가도 기다리는 이가 아무도 남지 않은 자신처럼, 그렇지만 죽을 수 없는 몸으로 죽도록 외로우라고요.
만약 이 가정이 맞다면 파멸은 시작부터 예정된 셈입니다.
쓸쓸할 때 접하는 다정함은 참 목마를 때 물 같고, 추울 때 온기 같습니다. 사회적 동물이라 그런지, 감정은 결핍의 부산물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홀로 평생을 떠도는 생물에게도 희노애락은 있을 텐데 말이죠.
에테르나는 아주 외로웠고, 그래서 유기질 지성체인 방문객이 몹시 반가웠고, 그러니 당연하게도 자신의 존재 목적보다 그 한 사람이 더 소중해지는 것, 줄여서 사랑에 빠집니다.
그렇게 영영 기다림조차 달콤하면 좋겠지만 이야기로서는 재미가 덜하겠죠. 죽음이 둘을 갈라놓기 전, 수명을 한껏 늘렸어도 여전히 원시적인 교류법에 의해 사랑하는 상대는 해석할 수 없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블랙홀에 빠지고 맙니다. 에테르나가 분노하고 징벌하는 모습이 어찌나 감정적이던지요. 그래도 자기파괴는 하지 않고, 다만 식물 표본 보관고를 차곡차곡 채워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럼 이제 어쩌죠? 에테르나의 당신은 이미 떠났는데, 에테르나는 계속 당신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일으킬 눈물 한 방울도 흘릴 수 없는데, 설령 흘리더라도 닿을 당신이 너무 멀리 있잖아요.
그때, 닿을 수 있음을 깨달은 순간, 아무도 달가워하지 않던 시간의 상대적 흐름이 처음으로 같은 편이 되어 준 것만 같았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아니면 이 기회마저 놓칠까 불안하고 초조했을까요? 보관고에서 넘쳐난 초록빛을 생각하면 아마 그런 걸 생각할 틈은 없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장이 당신에게 전하는 말이었다니요! 독자인 저는 여기서 끝나지만, 둘이 나눌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결말이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몇 분 뒤면 무한히 늘어나 기억 속 당신과 똑같이 생긴 유기질 육체와 당신은 죽어도, 시간의 물결 아래서 당신과 함께니까요.
어딘가에 풍덩 빠져들고픈 멋진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