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으려고 해도 가끔 떠오르는, 가슴이 저릿한 이야기 감상

대상작품: 빛과 벌레 (작가: 틴캔, 작품정보)
리뷰어: 태윤, 3일전, 조회 11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자려고 누웠다가 불현듯 이불 킥을 부르는 어렸을 적의 씁쓸한 추억이 하나 정도는 있을 겁니다. 좋은 기억도 몇 년 지나면 잊혀지고 설레였던 첫 사랑의 추억도 어느샌가 희미해지는데, 왜 잊고 싶은 인생의 흑역사는 샤워할 때마다 보이는 등허리의 구불구불한 용 문신처럼 평생의 친구로 남아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한 번 뿐이라는 점에서 어떤 길을 지나왔던 우리가 살아온 역사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좋아서, 혹은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 뿐인 내가 세상에 남긴 발자취는 적어도 저에겐 그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 구멍이 나도록 이불을 차면서도 자꾸 떠오르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행동과 그것을 함께 했던 한 친구를 떠올리는 이야기입니다. 작품의 배경이 그리 익숙치 않은데도 왠지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건 작가 님이 보여주려는 그 시절의 감성이 제 어린 시절과 잘 섞이기 때문일 겁니다.

학창 시절, 내적 자아는 창대했지만 실상은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던 저 같은 아이들에게는 흔히 말하는 ‘빅 브라더’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목소리가 크며 싸움도 곧잘 하는 형님 같은 그 녀석은 보통 공부 잘 하고 집도 잘 사는 무리와는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그럴 때 와 하고 따라다니는 저 같은 아이가 있으면 왠지 모를 공생 관계가 형성이 되는 겁니다. 저를 통해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고 목소리가 더 커지는 그 아이와 나를 지켜주는 우산 같은 존재에게 기대고 싶은 제 수동적인 성향이 잘 맞아 떨어진 결과라 할 수 있지요.

이런 관계의 끝은 사실 별로 좋지가 않았습니다. 저 뿐 아니라 제가 보았던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상급 학교에 진학하거나 반이 갈리면서 관계가 바로 끊어지거나 오히려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성장의 단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의 나로서 첫 발을 내딛는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친구나 선배에게 의존하기도 하고 취미나 운동에 빠져들기도 하면서 나를 찾아가는 시기 말이죠. 시행 착오라는 게 없다면 참 좋겠지만 우리는 보통 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그로 인한 상실과 외로움, 고통 속에서 진짜 나를 찾아갑니다.

작품에서의 케빈은 리키에게 의지하면서도 그의 외로움을 느끼고 보듬어주려 하는 심성을 가진 인물로 보입니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기대려 했지만 친구의 몸에 있는 더 많은 상처를 본 소년은 친구를 거울 삼아 자신의 약한 부분을 돌아보게 되고 그것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합니다.

소설은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창작품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새로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통해 저는 제 삶의 역사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되었고, 그 때 난 내 약점을 어떻게 딛고 일어섰는지를 다시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케빈처럼 당당하게 내 발로 우뚝 서진 못했지만, 그래도 어디든 짚고 일어섰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런 저에게 ‘그래, 너도 아주 나쁘진 않았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옛 친구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저에게 우산이 되어 주었던 그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그리고 오랜만에 삶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 이 작품과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브릿G의 독자 여러분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쇠락한 미국 공업 도시에 살던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어린 시절을 다시 한 번 그려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530393&novel_post_id=20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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