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서로 쫓는 죽이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깨어납니다. 무차별적인 살인을 피해 서로 뭉친 사람들은 이 어처구니 없는 환경의 부조리함과 공포에 불만을 토로하고 서로 힘을 모으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믿었던 동료가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이합니다. 결국 존재의 의의를 알게 된 주인공, 과연 이 영원한 죽음의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참신한 관점으로 뛰어난 몰입감을 제공하는 이야기입니다. 게임을 오랫동안 즐긴 게이머로서 게임만큼 폭발적인 즐거움을 오랜시간 즐길 수 있는 컨텐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매체가 주기 어려운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많은 게임들이 그 즐거움을 폭력을 행하는 것이나 폭력을 동반한 연출을 통해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게임들은 물리적인 방법(여기엔 마법도 포함됩니다.)으로 무언가를 파괴하거나 어떠한 세력을 정복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룰을 설정합니다. ‘0과 나’에서 묘사되는 일은 게이머들의 PC, 콘솔, 핸드폰에서 무한에 가깝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혹은 본능적으로 그 무의미한 폭력의 개념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입니다.
‘0과 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간 플레이어’의 입장이 아닌, 게임속 NPC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쾌락과 과장된 폭력을 위해 구성된 환경에서 NPC들은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 파괴되고 재생성되고, 또 파괴 됩니다. 그 인스턴스에서 하나의 데이터셋, NPC가 받는 충격과 분노, 좌절과 안도 그리고 공포를 짧지만 강렬한 묘사를 통해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저 구성 요소 중 하나일 뿐, 고려나 배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가상아 공간에서 매번 마주치고 무시하던 NPC 들이 나와 마주칠 때마다 저런 희노애락을 겪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참 무거워지고 그 동안의 악행이 떠올라 고개가 숙여집니다.
저도 읽으면서 ‘라스트 맨 스탠딩’이나, 각종 오픈월드 게임의 NPC들 그리고 버튜버들의 진짜 플레이어 찾기 게임 등을 떠올렸습니다. 그 맥락과 아이디어를 파악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매일 같이 마주치는 이러한 일을 상상력을 투과하여 생생하게 표현된 것이 놀랍고 재미있었습니다. 저 혼자만의 상상일지는 모르지만 먼훗날 우리가 AI가 탑재된 로봇 혹은 실존 인물을 AI화한 인격체와 같이 가상세계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대우해줄 수 있을까요? 0과 1로 만들어진 공포는 가짜 공포일까요? 소설을 닫으며 하나의 의문이 마음에 남습니다.
참신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