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가 될 것인가, 독자를 잡아둘 앵커가 될 것인가 – 동굴 속의 닻 의뢰(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동굴 속의 닻 (작가: BornWriter, 작품정보)
리뷰어: dorothy, 17년 8월, 조회 70

.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늦어 죄송합니다.

 

바쁜 월말 마감철이 지나고 곧바로 찾아온 여름휴가까지 보내고 나니 어느새 시일이 꽤 지나버렸네요. 덕분에 이 작품을 바쁜 시기에도, 휴가철에도, 그리고 조금은 한가해진 지금까지 한 번씩 읽게 되어 총 세 번을 정주행하게 되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그렇게 읽다 보니 ‘글’의 흥미로운 속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는 겁니다. 바로 독자의 상태에 따라 글이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지요.

바로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월말에 읽었을 때는

그야말로 휘리릭, 읽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전작과 이어지는 세계관과 낯익은 이름들이 익숙하기도 했지만 딱히 반갑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글쎄요, 저는 그 이유를 ‘매력이 부족한 캐릭터’의 탓으로 돌리겠습니다. 전작에서 큰 활약을 했던 헉슬리부터 그랬듯, 딱히 좋아지는 등장인물이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인 듯합니다. 주인공마저 어쩐지 지나치게 도덕적인데다 어떤 부분에선 해탈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어 이입하기 어려웠습니다. 다시 등장한 -전편에서도 등장이 반갑지 않았던-헉슬리와 -보살같은-주인공이 어떤 일을 겪을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아, 그녀를 반가워하는 사람을 딱 한 명 압니다만, 그건 바로 아르덴 베이커씨 인 것 같군요.

하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장점은, 소재도 세계관도 잘 짜여졌다는 것입니다. 이게 독자를 잡아둘 닻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시공간의 뒤틀림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의 구조가 잘 잡혀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그 구조를 빛나게 해줄 무언가가 빠졌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게 합니다.

너무 급하게 읽어서일까요, 다른 내용들에 포커스가 맞춰지기보다는 왜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끝난 느낌이 들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흐지부지하다기보다는 갑자기 끝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죽 읽어나가다가 작가 코멘트에서 후일담에 대한 이야기와 다음 작품에서 뵙겠다는 이야길 보았을 때, 응? 하고 다시 제목을 올려다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뚝 잘린 기찻길을 본 기분, 뭐 그런 비슷한 것이었던 듯합니다.

 

휴양을 보내며 읽었을 때는

여름 휴가라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면 좋았겠지만, 휴가 동안 여행지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떠난 터라 온종일 걷고 걷고 걷다가 숙소에 가서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상하시겠지만,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지요. 그런 상태에선 웬만큼 잘 읽히는 글이 아니면 눈에 턱턱 걸리기 마련입니다.

현실에서라면 절대 저 상황에 저렇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고, 주인공의 말이 쓸데없이 길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으며, 1화에서의 니체의 인용구 해석의 이질감-근묵자흑이라니-도 있었지만서도, 가장 어색하다고 생각했던 곳은 등장인물들이 욕설을 지껄이는 부분이었어요.

“그렇다면 그쪽은 도대체 뭐죠. 뭐 하는 사람이길래 여기 있는 거죠.” 신발 밑창으로 담배를 비벼끄며 나는 물었다. 질문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곧장 튀어나왔다. 사실 가장 먼저 물어봤어야 할 질문이었다.

“몰라 씨바. 좆같은 일에 엮여서 온 거니까 나한테 묻지 마. 나도 모른다고.”

– 동굴 속의 닻 ④ 中

대부분의 욕설 장면이 ‘욕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욕’으로 보입니다. 아래 장면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전략)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쏟아졌지만, 헉슬리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누가 보건 말건 상관없었다.

“씨발 진짜 사람 빡돌게 만드네! 그따위 개소리나 지껄이려고 불러냈냐? 본론으로 들어가던가, 아니면 씨바 때려치던가!”

– 시부야 어셈블 中

이상한 기분입니다. 분명 비속어이니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게 맞나 싶다가도 어쩐지 엄습하는 어색함에 빠르게 스크롤을 내리고 말게 됩니다. 욕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색하게 뱉어내는 것 같달까요. (취향 차이일 수 있습니다.)

욕설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작가님이 마지막 편<시부야 어셈블>의 코멘트에서 밝혔듯, 이 작품은 설명조의 분위기가 적잖이 깔려있습니다. 해당 분위기가 작품 전체를 흐르고 있어 계속 가이드받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만, 마지막 편은 설명을 하기 위해 넣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급작스럽게 많은 정보를 집어넣은 게 눈에 띕니다.

개인적으로는 사건이 벌어진후, 해결 과정에서 등장 인물들의 대화나 선지자의 말로써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녹아들듯 이해시키는 식의 연출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공략집처럼 한꺼번에 설명하는 장면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투닥거리는 가족이 등장해 ‘그래도 가족이니까!’ 하는 식의 스토리라인도 제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마지막 회차에 대한 이야기는 아끼겠습니다.

 

돌아와서 다시 읽는 동굴 속의 닻

작품도 리뷰도 다시 읽어보니 거의 제정신이 아닌 채로 읽은 앞 두 번의 감상은 정말 물어뜯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써놨군요. 저정도로 물어뜯을만한 건 아니었는데.. 뭐,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기도 합니다. 늦은주제에ㅜㅜ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비단 제 휴가가 끝나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세 번 읽으면서도 매번 했던 생각은, 이 연작엔 훅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도 기술했듯 세계관은 흥미롭고, 구조 또한 탄탄한데 2퍼센트가 부족한 느낌. 저는 가장 큰 이유로 캐릭터성을 꼽겠습니다. 매력을 좀더 부여하셔야 할 듯합니다. 앞으로의 작품에선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저는 여전히 헉슬리가 싫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적수가 나타나지 않은 것에 착안하자면, 어쩌면 아주 강하고 사악하며 거침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빌런의 등장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시킬 수 있을 것도 같군요.

 

아무말 리뷰의 아무말 마무리

1.

눈치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으로 말장난을 시도하다 실패했습니다. dot이 될 것인가 닻이 될 것인가

2.

제가 말이죠, 물어뜯은 것에 비해 생각보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꿈이든 다른 세계든 교차편집된 것처럼 보여주는 연출을 좋아하거든요. 일례로 베르나르베르베르의 <개미> 좋아합니다.

3.

세계관이 마음에 듭니다. 독자 유입이 좀 늘어나서 작가님이 보다 신나게 글을 쓰셨으면 좋겠군요. 많이 파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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