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향이 복잡한 사랑(?) 이야기 <고양이, 마네킹, 그리고 위스키> 공모(비평)

대상작품: 고양이, 마네킹, 그리고 위스키 (작가: 세인트워커, 작품정보)
리뷰어: 하얀소나기, 3일전, 조회 16

<이 글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오답노트가 아닙니다. 일개 독자의 주관적인 감상에 불과하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소설 한 편을 그럴 듯한 요리 한 상에 비유하자면, 제 개인은 ‘SF’라는 장르를 취향을 타는 조미료에 비유하곤 합니다. 아무리 익숙한 재료에 익숙한 조리방식으로 음식을 차려놔도, 끝에 들어가는 조미료 한 줌에 그 향이 변하는 것이 확연하기 때문입니다. 더 직관적으로 비유하자면, 누구나 쉽게 먹는 사골국물에 말은 쌀국수에 취향을 타는 고수를 넣어서 맛이 변한다고 하면 상상하기 쉬울까요?

 

이 ‘SF’라는 환상에 기반 한 장르는 그런 거리감을 만드는 조미료입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야기도 ‘SF’라는 틀에 담기는 순간 복잡한 향을 띠게 됩니다. 로봇, 과학, 아직 다가오지 미래를 비롯한 우리가 경험하지 못 한 세상 속에서, 그 이야기는 훨씬 고도화되고 세밀해지기 마련이죠. 연인과의 사랑 이야기도 이들의 세상에서는 로봇과 나누는 금단의 욕구로 변질되며,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 하는 차별에 관한 이야기는 ‘개조인간’과 같은 배경설정에 의해 구체화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 한 무언가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무언가이죠. 때문에 몇몇 SF소설은 이런 배경설정을 이해시키기 위해 분량을 할애하며 발걸음을 늦추는 작업을 거칩니다. 그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향을 음미시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양이, 마네킹, 그리고 위스키>라는 작품은 인상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던 로봇이 상용화되고 인간과 어울리는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로봇이 가게를 보고 인간에게 복종하는 사회가 일상이 되었으며, 인간의 신체를 기계부품으로 대체되며 수명을 늘리는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때로는 그런 현상에 반감을 가지는 세력이 목소리를 내기도 하며, 때로는 그 반감의 대상에게 애정을 느끼는 특별한 사람들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이런 거대한 사회와 인간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구성은, 이 작품의 돋보이는 강점이었습니다. ‘사랑’‘혐오’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주제를 미래사회의 문제로 연결시키며 흥미를 자극했고,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명하며 주제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솜씨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작가님의 필력에 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거 같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던 점은, 이 작품이 인물을 조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보통 미래사회라는 거대한 배경설정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건들이 이 배경설정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미래사회 그 자체가 아닌 그 배경 아래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그들이 어떤 사건을 겪고,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상처가 있는지를 세밀하게 조명하는 데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명확했습니다. 다소 접근성이 낮은 이야기를 두면서도, 그 안에 담긴 씨앗은 선명했던 셈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작가가 집중하는 ‘인물’ ‘주제’에 너무 많은 것이 함몰되어 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흔히 작품이 ‘난해하다’라고 느끼게 되는 감상은, 핵심사건보다 주제적인 면이 앞설 때 나오는 불협화음에 가깝습니다. 이 소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물의 행동과 사고 대사 하나하나에 작가가 설정해놓은 주제의식이 여실히 드러나며, 때로는 인물과 사건 자체가 이 주제의식을 위해 준비된 도구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소설이 주제를 전하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마치 소설적 재미보다는 의도 그 자체에 집중해달라는 부르짖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조명되는 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핵심 인물인 ‘하란’ ‘J’를 비교할 때, 집중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이 소설의 핵심사건으로 꼽을 수 있는 살인사건은 장면 두어 개를 넘긴 후에야 간신히 언급되며, 대부분의 이야기는 ‘하란’의 사정과 언니에 대한 멍 자국 같은 감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건을 쫓고 해결을 제시해야 되는 ‘J’의 이야기는 희미하며, 그 역할에 대해 의문부호를 띄우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인물의 모호함은 소설의 핵심사건 자체에 대한 모호함으로 이어졌고, 때문에 기승전결이 명확하게 기억되는 여느 작품들에 비하면, 이 소설은 전체의 줄거리보다는 인물 하나하나가 독백처럼 읊었던 각각의 ‘장면’들이 파편처럼 떠오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을 꼽을 수는 있겠지만, 인상적인 사건을 꼽기에는 조금 망설여지는 감이 있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서두에서 작품을 요리와 음식에 비유했습니다. 그 자체의 맛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재료가 첨가된 이유 및 향신료의 특성을 구분하며 조리사의 의도를 짐작하는 것 또한, 하나의 작품을 음미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짠맛 단맛으로 단순히 구분될 수 있는 그 맛이 선명할 때, 나머지 의도를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순수한 맛을 느끼며 쫓아가고픈 누군가에게는, 수저를 들고 그릇을 뒤적거려야 하는 이 동행이 불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상 깊은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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