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귀야화>, 나기 감상

대상작품: 액귀야화(縊鬼夜話) (작가: 나기, 작품정보)
리뷰어: 무강이, 11월 10일, 조회 34

‘작품’을 읽을 때 내포된 이치나 함의에만 집중하면 많은 걸 놓치게 된다. 애초에 ‘의미’를 담는 게 목적이라면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면 될 것이지, 뭐하러 ‘작품’ 같은 걸 쓰겠는가. 때로는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작품이 큰 역할을 한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작품에 있어 의미는 부차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의미’가 부차적이라면, 중요한 건 뭔가. 작품 본연의 재미일 것이다. 애초에 작품에서의 의미의 전달이라는 것도 재미가 있을 때나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지, 작품이 재미 없을 바에야 차라리 논문이나 비평, 에세이 같은 형식으로 정리하는 법을 배우느니만 못하다.

 

재밌으면 장땡은 아니지만, 재미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결과 재미를 전달하는 수많은 기법이 연구되어 왔다.

그 중 요즘 호러 씬에서 유행하는 것은 역시 ‘페이크 다큐멘터리’일 것이다. 최근에는 <랑종>이나 <악마와의 토크쇼> 같은 게 이런 형식을 어느 정도 차용했고,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 같은 ‘파운드 푸티지’ 장르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궤에 있다.

요컨대, ‘이건 진짜로 있었던 일인데 ⋯ ⋯ .” 하는 화법이 어느 갈래 할 것 없이 호러 씬에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에는 ‘진정성’ 이론이라는 게 있다. 힙합 노래 가사는 1인칭으로 전개된다. 1인칭 자수성가 스토리를 통해 상승지향적인 서사를 전달함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흥이 나 라임을 읊조리는 래퍼를 보면 그걸 듣는 사람은 힘을 얻는다. 양기를 얻고 가는 것이다.

그 외에도 오타쿠함이 뚝뚝 묻어나오는 작품 같은 것들도 보면 (그것의 방향성이 독자와 맞아떨어진다면) 기분이 좋아진다. ‘좋아해서 썼다’는 게 딱 티가 나는 작품들 말이다.

호러는 그런데 액션을 넣을 게 아니라면 대체로 주인공이든 누군가든 끔찍하게 파멸하기 마련이다. 그런 모습에서 공포를 자아낸다. 그런 장르는 어떻게 진정성을 얻어야 할까. 이야기가 현실적이고 진짜인 것처럼 전달하는 것도 여러 방법 중 하나다.

그 결과 ‘페이크 다큐멘터리’ ‘파운드 푸티지’ 혹은 더 나아가 ‘생활밀착형 호러’ 같은 게 생겼다. 따져보면 전혀 말은 안 되는데도, 전달방식이 묘하게 말이 되는 것들. ‘이건 옛날에 발견된 어떤 비디오 테이프에서 ⋯ ⋯ .’ 이렇게 후까시를 잡아보이면 있어보이지 않는가.

 

문제는 ‘그럼 소설은 호러를 어떻게 서술해야 하나요’ 하는 전략이다. 사실 이미 옛날에 어느 정도 나오긴 했다. 에드거 앨런 포 같은 경우엔 <병 속에서 발견된 수기> 같은 작품에서 이런 ‘파운드 푸티지’ 형식의 서술전략을 실험해 보았다. 아니, 애초에 에드거 앨런 포 수준이 아니라 한 세대 전에 워싱턴 어빙이 써먹었다. <슬리피 할로우>, <립 밴 윙클> 같은 건 설화 형식을 띄고 있지만, 사실 극초기 미국 단편 소설이다.

그러다가 러브크래프트 대에 오면 위의 형식적인 측면에 앞서, 특정한 ‘코즈믹 호러’적인 서술 전략을 구축하지만 이 작품이 코즈믹 호러는 아니므로 그건 논외로 둔다.

 

늘 그렇듯 잡소리가 길다. 그러나 이런 잡소리를 하는 이유는 <액귀야화>가 그런 서술 전략을 사용하고 있고, 그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액귀야화>는 평이한 포크 호러 스토리임에도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그 서술 전략이란 바로 ‘말따옴표’다.

언어는 기호다. 말따옴표 안에 들어간 말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이라고 암묵적인 합의가 되어 있다. 이 작품은 화자가 지나가던 사내와 술을 마시며 나눈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말따옴표’라는 기호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 결과 안 그래도 생생한 ‘사내’의 묘사는 더 생생한 ‘호소력’을 가지고, 공포스러우면서도 진실하게 느껴진다. 가끔 나오는 볼드체는 덤이다.

우리는 책에서 읽은 것보다도 주워들은 걸 철썩같이 믿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액귀야화>는 그런 ‘주워 들은 이야기’라는 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호러를 연출한다. 그렇기 때문에 <액귀야화>가 고작해야 ‘소설’에 불과한, 실제로 있기는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읽을 때 만큼은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추리 파트도 꽤 괜찮았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추상오단장> 같은 게 생각난다고 해야 하나. 간만에 재밌는 글을 보여준 작가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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