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말을 포함합니다.
세상에는 넘지 말아야 하는 선(線)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선은 통제구역과 같은 실제의 경계선을 비롯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의 선까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선만큼이나, 선을 대하는 사람들의 가치관 또한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여기,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있습니다.
지원과 재훈은 주말부부입니다. 둘은 선을 넘는 행위에 대해 상반된 가치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아내인 지원은 선을 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성격입니다. 그녀는 직장 동료인 박 차장을 흠모하고 있지만, 그 감정을 오로지 자신의 꿈의 영역에만 남겨두고자 합니다. 환상을 현실로 끌어들인 후에는 일상의 허름함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남편과의 연애와 결혼 생활을 통해 그러한 교훈을 체득했으며, 거리 두기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잠을 잘 때조차도 현실에 한 발을 붙인 채 자신의 꿈에 온전히 빠져들지 않도록 자각몽의 상태를 유지합니다.
반면에 남편 재훈은 선을 넘는 행위에 전혀 거리낌이 없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기까지 합니다. 입산 금지구역에 들어가며 ‘넘지 말아야 하니까 유혹적인 것이며, 금지된 것일수록 더 끌린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며, 도로 체증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또한 안착한 선 너머에서 환멸을 느끼며 괴로워하기보다는, 금단의 영역에 들어섰을 때의 짜릿함을 만끽하는 사람입니다. 꿈속으로 빠져드는 것에 거부감을 지닌 아내 지원과 달리, 재훈은 세상모르고 잘도 잡니다. 마치 몸뚱아리만 남겨두고 영혼은 어딘가 다른 데로 가버린 사람처럼요. 그러던 재훈은 운전 중에 지켜야 할 제한 속도의 선을 넘어서 버리고, 급기야는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아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불교에서의 가르침과 같이 ‘지은 대로 받은’ 것일까요. 어쨌거나 참말로 그에게 걸맞은 최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버스는 지원을 싣고 비에 젖은 도로를 달립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지원 자신은 선을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녀는 재훈에게 기회를 주었는데도 남편 스스로가 선을 넘어가 버렸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의 믿음과 달리, 수면제가 섞인 디카페인 커피를 그에게 내민 순간부터 이미 지원은 ‘어떤 선’을 넘어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전부터일지도요. 그렇게 선을 넘어버린 지원은 위태로운 버스 안에서 그녀가 그토록 경계하던 꿈의 세계로 저항 없이 빠져듭니다.
정말 선을 지키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어쩌면 꿈에서 나타난 박 차장처럼, 20년 동안의 잔소리와 ‘몰래 피우는 어떤 것’으로 채워진 남루한 일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삶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 그것만으로 선을 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지, 설령 선을 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지, 또한 선을 넘지 않는 것만이 반드시 옳은 삶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판단은 모두 각자의 몫이고 저마다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겠네요. 다만 이 세상에 업보라는 게 있다면, 모든 일은 작품에서처럼 응당 ‘지은 대로 받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잠깐, 이렇게만 얘기하면 작품을 읽지 않은 이에겐 이 작품이 그저 선을 넘는 인간에 대한 권선징악 사필귀정 인과응보의 이야기로만 비춰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단순한 것은 이 리뷰이지, 작품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글은 작품을 주관적으로 바라본 하나의 좁은 시각에 불과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는 당연히 여러 관점이 존재할 것입니다. 게다가 건조한 몇몇 단어로 이 작품을 요약한다는 것은 마치 시를 요약하는 것 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 사진이 음식의 맛을 담아내기 어려운 것처럼, 옷 사진이 옷의 촉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작품에서 드러난 섬세한 묘사, 감정 표현 등 정말로 중요한 것들은 이 리뷰에서 빠져있습니다. 혹시라도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직접 한번 읽어보시며 작품 그대로를 감상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아, 물론 여러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