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城美人, 近代男
경성의 미인, 모던보이
목차
1. 경성의 유행
2. 1920년대~1930년대 영어
3. 경성의 미인, 모던보이
4. 작품 요약 및 해석
1. 경성의 유행
流行이란 참말 이상한 힘을 가젓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自發的으로 禁慾케하고 自律的으로 忍苦케 하는 점에 잇서 高僧이나 牧師의 說敎 이상의 힘을 가젓스며 社會生活을 規制하고 管理하는 點에 잇서 如何한 法律보다도 더 優勢의 힘을 가젓습니다. (중략) 凡人의 할 수 업는 特別한 일을 해서 時代의 尖端을 걸어가려는, 즉 소위 尖端狂은 이 種類에 屬하는 것입니다.
無名草, 「生命을 左右하는 流行의 魔力」, 『新女性』(1931. 11).
‘近代女’, ‘近代男’으로 불린 모던걸과 모던보이는 경성(지금의 서울)을 무대로 1920년대~1930년대의 유행을 소비하며 모던의 첨단을 걸었던 一群의 미인들입니다.1 “때의 흘음에 따라 무슨 생물과도 같이 일분일각도 정지하지 않고”, “도둑괭이 눈과 같이 잘 변하”며 “時代色을 날쌔게 表證하는 한 마리 怜悧한 카멜레온”과 같은 유행은, “多角的이며 流動的”인 것으로 “急進的이며 循環的”이고 “달팽이의 觸角과 같이 예민하다”고 했으며, 그것은 “언제든지 그 시대정신의 末梢尖端을 急角度的으로 돌고 있는 그림자”라 진단되었습니다.2
[그림 1] 미츠코시(三越)백화점 『每日申報』,1930.10.24.3
[그림 2] 화신연쇄점 총본부,『화신40년사』4
근대 도시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유행은 1920~1930년대 소비문화의 중심지인 경성, 그 속에서도 “대경성의 주름 잡힌 얼굴 위에 가장하고 나타난 ‘근대’의 ‘메이크업’”인 백화점을 거점으로 직조되며 심화되는 양상을 보입니다.5 “찬란한 ‘일루미네숀’과 ‘쇼윈도’, ‘에레뻬터’, ‘에스카레이터’와 마네킹, 그리고 옥상정원” 등 근대의 새로운 도시문화와 풍경을 제공한 백화점은 “근대의 특산물이요 상업 경쟁장의 總師”이자 “‘아메리카니즘’과 에로티시즘과 그로테스크가 교류하는 근대 문명의 삼각주”였습니다.6
백화점은 이러한 유행의 “시대색을 날쌔게 표징”해 진열함으로써 최신의 유행과 그 이미지를 대중에게 소비시켰으며, 잡지와 신문은 그 해의 다양한 유행 아이템들을 예측해 기사로 내보내며, “봄은 ‘데파트’ 진렬장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알렸습니다.7 신문과 다양한 잡지를 통해 “‘올여름의 파리녀의 류행옷은 이러타’느니 하는 소식”은 이제 “어느 소식보담도 속하게 또한 힘 안드리고 누어서 접할 수 잇는 소식”이 되었습니다.8 “서양 배우들의 최신 유행을 딸른” 화장법과 장신구, 양장을 갖춘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은 경성미인의 표준이 되기에 이릅니다.9
2. 1920년대~1930년대 영어
모던 모던의 세상이다. 미국이 그러하고 구라파각국이 그러하고 상해가 그러하고 가직한 일본이 그러하고 그 운덤에 조선도 그러하다. 모던! 모든 것이 모던이다. 모던껄 모던뽀이 모던大臣 모던王子 모던哲學 모던科學 모던宗敎 모던藝術 모던自殺 모던劇場 모던스타일 모던巡査 모던 도적놈 모던雜誌 모던戀愛 모던建築 모던商店 모던妓生(朝鮮에 限함) 無制限이다. (중략) 우리가 지금 불으는 모던은 1930年을 中心으로 새로히 생긴 社會的 條件의 反映인 一部 人間生活의 이데올로기를 表示하는 ‘모던이즘’의 ‘모던’은 지금에 우리가 한번 밧게는 더 쓰지 못할 고유명사의 ‘모던’이다.
임인생(壬寅生), 「모던이즘」, 『別乾坤』(1930. 1).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신문이나 잡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는 ‘모던(Modern)‘이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조선에 유입된 영어단어 ‘모던(Modern)’은 새로운 문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경제적 기반이 빈약했던 조선의 모던보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며 모더니즘은 모던보이들이 추구하는 생활형식으로 서구식 소비문화이며, 영어라는 서양언어의 사용은 지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으로 평가될 수 있었고, 영어를 쓰는 것은 최신식 교육을 받은 지적 수준을 갖춘 근대 지식인 계급임을 반영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10
「모던뽀이」는 「시크」해야 되고 「모던껄」은 「잇트」가 잇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1931년 식 첨단인의 마땅히 가저야 할 현대성이다. 「스마트」한 것을 자랑하는 「모던」은 비록 나팔바지는 못 입엇을 망정 또는 단발양장은 못 햇을망정 신감각파적 「에로」, 「그로」를 이해치 못해서야 될 뻔 한 일이냐.
『동광』 22호 1931년 6월 1일자.
위의 세 문장에서 영어 단어는 7개 ‘모던 뽀이’, ‘시크’, ‘모던껄’, ‘잇트’, ‘스마트’, ‘에로’, ‘그로’ 를 차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시크, 스마트’ 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에로, 그로’는 에로틱(erotic)과 그로테스크(grotesque)를 지칭한다. 잇트’는 무엇을 뜻하는지 모호하나 『동아일보』 1931년 4월 6일자 「신어해설」에서 ‘잇트(it)’는 ‘여성의 성적 매력의 모든 요소를 틀어의미하는 ‘모던-어(modern-語)’ 임을 발견할 수 있고, 신문기사나 잡지에서 뿐만 아니라 당시 작가들의 소설이나 산문에도 영어를 불필요하게 과잉사용하고 있습니다.11
카- 마인 빛 꼭구마가 뒤로 휘면서 너울거립니다.. 그러면 옥수수 밭에서 백, 황, 흑, 회 또는 백, 가지각색의 개가 퍽 여러 마리 열을 지어서 걸어 나옵니다. 센슈알한 계절의 흥분이 이 코삭크 관병식을 한층 더 화려하게 합니다…풋김치 청신한 미각이 면약 스마일을 연상시킵니다…하도롱 빛 피부에서 푸성귀 내음새가 납니다. 코코아빛 입술은 미루와 다래로 젖었습니다. 나를 아니 보는 동공에는 정제된 창공이 간쓰메가 되어 있습니… 포푸라 나무 밑에 염소를 한 마리 매어 놓았습니다… 세루로이드로 만든 정교한 구슬을 오브라-드로 싼 것 같이 맑고 청명하고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이상(李箱), 「산촌여정」, 『매일신보』 (1935. 9. 27.)
위 산문에서 평범하지 않은 어휘 선택은 영어를 아는 사람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데, “카-마인(carmine), 센슈알(sensual), 코삭크(cossack), 스마일(smile), 하도롱(hard-rolled), 코코아(cocoa), 세루로이드(celluloid), 오브라-드(oblato)” 는 굳이 영어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서술된 다른 단어들과 어울리지 않고 어색하지만 굳이 영어로 표기하는 걸 선택했으며, 일본어로 통조림을 뜻하는 간쓰메(かんづめ)라는 단어도 섞여 있습니다. 이 외에도 불필요한 일본식 발음의 영어 단어를 과잉사용하는 사례는 흔하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12
1930년 4월 16일 『매일신보』와 『중외일보』는 ‘편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레터 페이퍼(Letter Paper)’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1931년 4월 1일자 「신여성간 유행어」라는 제목으로 영어 철자 H와 M을 설명하고 있는데, H는 남편이라는 뜻으로 즉, 영어단어 Husband에서 남편의 머리글자로 Hus까지 불러 「해스」라고도 하였고 M은 월경을 의미하는 Monthly-water의 머리글자를 떼었습니다. 1937년 6월 11일자 『동아일보』에는 노숙자나 부랑아 대신 ‘룸펜(Lumpe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13
근일 조선에서도 외래어의 수입이 매우 성행한다. 『신문 잡지에서는 외국어만 쓰니 무식한 사람이야 어디 볼 수가 있소』하고 투서가 들어오도록 외국문화의 침입은 치열하다 이 새로운 침입어가 이중번역의 죄로 명상(名狀)하지 못할 혼란을 과하고 잇는 것은 주의할 만한 일이다. (중략) 한자시대는 이미 지나갓다. 「나소(羅素)」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는 대신에 「랏세투」로 통용이 된다. 영철학가「버트런트 럿셀」의 칭호다. 조금 용의(用意)가 깊게 「랏셀」이라고 역하면 원음에 가깝지만 그 대용 인도 혁명가 「네루-」씨가 그만 「넬」이 되어 버리고 「삐-루」가 「삘」이 되어 버린다. 「가후에」 「구리-무」 「모당가-루」 「마네낑가-투」 「리리안깃슈」 「후에아방꾸쓰」 「다이야」 「다꾸씨」 「나듸오」 「곱보」 「낙겟」 전문적 술어가 들어오면 「휴-쓰」 「기로」(킬로) 「암뻬투」(암페어) 「밧데리」 「화스」 「사-도」(떠-드) 「보인또」 「시구라루」 「빠루삥」 「암모호스」 「마구네슈무」…누가 일정한 원칙을 연구할 필요가 잇슬 뜻하다.
『별건곤』 28호 1930년 5월 1일자.
위와 같이 영어가 과잉 사용되자 이에 대한 비난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위의 영어들은 초창기 영어 원어민 선교사들의 영어 발음과는 상당히 이질적으로 카타로구, 밧데리, 화스(first), 사-도(third), 보인또(point), 시구라루(signal), 빠루삥, 마구네슈무 등에서처럼 일본인의 영어 발음이 철자 없이 한글 표기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영어어휘들은 당시 모던보이들 사이에 만연해 있었으며 대화에서 이 같은 영어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표현력이 미숙하여 그룹 구성원으로 부적합하다고 간주되기까지 하였습니다.14
3. 경성의 미인, 모던보이
[그림 3] 安碩柱, 「街上所見: 모던뽀이의 散步」, 『朝鮮日報』, 1928.2.7.15
“배는 고파도 양복은 깨끗이. 끗만 아니라 빛깔, 스타일, 그것만 입고 나서면 그의 꿈은 다시 이러난다 아름다운 여자–탕고–월스 그럿치만 입은 양복에 배고밴 ‘나프타린’ 내음새가 코를 찌를 때”16라는 글귀처럼, 근대 도시 경성의 패션 리더를 자처하는 모던보이들은 세련된 겉모습과는 달리 현실의 곤궁함에 불안해했으며, 자본화된 도시에서 정신적 가치들이 몰락하는 것에 환멸을 느꼈으며, 그럼에도 도시의 하층민들이나 천박한 자본가들과 비교해봤을 때, 자신들 모던보이는 지식인 계층임을 자부하며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17
코르덴 양복 한 벌이 내 자리옷이었고 통상복과 나들이옷을 겸한 것이었다. 하이넥의 스웨터가 한 조각 사철을 통한 내 내의다.
나는 그 단벌 다 떨어진 코르덴 양복을 걸치고 배고픈 것도 주제 사나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활갯짓을 하면서 거리로 또 나섰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이상(李箱), 『날개』, 문학과 지성사, 2005.
경성은 산업화가 빚어낸 온갖 탐욕과 갈등으로 인해 물질주의의 진창이나 다름없었고, 모던보이는 근대의 충실한 시민이길 자처하면서도 스스로를 군중들과 차별되는 높은 곳에 세워 저 아래 진창을 내려다보며 맹목적인 탐욕의 시대를 조소했습니다. 모던보이의 자의식은 일제강점기의 시인 이상(李箱, 1910년~1937년)을 통해 엿볼 수 있는데, 그는 당대의 모던보이로서 궁핍한 현실에서도 최신 유행의 옷차림을 잃지 않는 세련된 취향의 소유자이자 자신의 비참한 현실과 사회의 천박한 세태 가운데서도 도취적인 쾌감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정신주의자였습니다.18
따라서, 모던보이는 소비문화의 확산 속에서 등장한 소비 주체로서, 그 과정에서 사치와 허영의 표상으로 지탄받기도 했으나 근대(modern)의 최첨단을 선도하며, 누구보다도 일찍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이면서, 근대, 근대성, 근대문화, 근대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체현하고자 했던 경성의 미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던보이는 화려한 도시문화를 영위하며 술, 커피, 거리산보, 자유연애 등 근대적 환락으로 도피하는 역설적인 양태를 보여줍니다. 모던보이는 1920년대~1930년대의 신문 광고, 삽화, 사진 등 다양한 시각자료를 통해 제시되며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습니다.
4. 작품 요약 및 해석
(p. 3). 허스번드라는 인간의 언행을 아포리즘인 양 숭배하는 부인의 무지가 불편하오. 언문도 미습득한 문맹자와 불통하오. 이혼요구장도 러브레터로 인지하고 포옹하고 키쓰할 무식자의 배우자임이 창피하오. 경성에서 단발에 하이힐 여학생이 페이브먼트를 활보함을 관찰할 때 부인의 노동하느라 선탠된 피부에 트래디쇼날한 백의가 쉐도우처럼 자신의 영혼을 도회에서 촌락으로 추락시키오. 그렇게 과로한 부인이 수시로 동전이라도 송부하면 탕진하는 모던인생이 처량하오.
(p. 12). 신시대에는 단지 호적에 자의로 명단을 삭제하거나 가출을 강요함으로 소박함이 불가하오. 이혼요구서를 소지하고 경성으로 상경하시오. 가정법원에 출석하면 재판으로 이혼이 가능하오. 재혼할 청년과 동행하여도 무방하오. 미쓰꼬시 백화점은 일제이니 화신백화점에서 돈까쓰라도 동반식사하고 이혼함도 로맨틱하겠소. 금번 학기 학비로 경성행 티켓을 구입하여 동봉하니 속히 상경하시오. 경성역에서 재회를 희망하오. 굿뜨 럭끄.
한켠 작가님의 15매 분량의 엽편인 <일개 모던보이의 편지>를 반복해서 읽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문장들을 옮겨 적어보았습니다. 한켠 작가님께선 ‘안티-순우리말 소일장’에 출마한 작품답게 1920년대~1930년대 경성의 모던보이가 썼을 법한 단어들로 작품을 조형하셨습니다. ‘허스번드(husband)’, ‘아포리즘(aphorism)’, ‘러브레터(Love Letter)’, ‘키쓰(Kiss)’, ‘페이브먼트(Pavement)’, ‘선탠(Sun-tan)’, ‘트래디쇼날(Traditional)’, ‘모던(Modern)’, ‘로맨틱(Romantic)’, ‘티켓(Ticket)’, ‘굿뜨 럭끄(Good Luck)’는 한국어에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남편’, ‘명언’, ‘연애편지’, ‘입맞춤’, ‘포장도로’, ‘일광욕’, ‘전통적인’, ‘근대적인’, ‘낭만적인’, ‘승차권’, ‘행운을 빈다’라는 뜻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던보이인 남편은 굳이 필요 이상으로 영어단어를 과도하게 사용합니다. 이는 편지를 보내는 남편이 모던보이라는 자의식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해석됩니다. 작중에서 남편은 영어라는 서구의 언어를 사용하는 지식인이라는 것을 강조함과 동시에,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에 맞지 않는 영어발음을 과잉 남발하여 읽는 독자들에게 웃음을 줍니다.
한국어로 번역이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영어를 넣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21세기인 지금도,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영어단어를 집어넣으면 교양이 있고 똑똑해보인다는 인식이 존재합니다. 2021년 11월 11일 한글문화연대에 따르면, 2021년 9월부터 한 달 동안 중앙정부기관에서 나온 자료 1727건 중 902건에서 외국어 표현·표기 남용이 확인된었고, 전체 자료의 52.2%다. 낱말 1000개마다 외국 문자를 5.7개, 외국 낱말을 6.4개 사용했고, 광역자치단체의 보도자료 중 외국어 표현·표기 남용은 57.4%(1476건)였다고 합니다.19
주로 사용된 외국어 표현은 인프라(기반시설), 바우처(이용권), 글로벌(세계적), 소셜벤처(사회적 벤처), 가이드라인(지침), 라이브커머스(실시간 방송 판매), 포럼(토론회), 거버넌스(민관협력), 라운드테이블(원탁회의), 아카이브(자료보관소) 등이며,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에서도 ‘핸드워시(handwash·비누)’, ‘에어(air·공기)’,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apartment community center·아파트 거주민 공간)’, ‘레스트룸(rest room·화장실) 등을 썼으며, 약국 대신 ‘pharmacy’, 카페 대신 ‘cafe’ 또는 ‘coffee’ 등만 표기하는 등, 안내문에 음식 이름을 영어로만 표기해놓기도 했습니다.20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까지도 굳이 영어로 표기하는 현상은,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 및 취약계층은 그들 자신에게 필요한 시설을 원할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겪기도 합니다. 한켠 작가님의 <일개 모던보이의 편지>에서 드러난 영어 단어들을 근대식 교육을 받은 남편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겠지만, 교육 수준이 낮은 아내(1920년대~1930년대에 지방에 살던 기혼 여성이 영어를 배울 기회는 흔하지 않았을 겁니다)는 남편이 보낸 편지가 무슨 뜻인지도 이해를 못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모순과 불합리 등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사회적 문학을 풍자문학(諷刺文學)이라고 하는데, 풍자는 어리석음의 폭로, 사악함에 대한 징벌을 주축으로 하는 기지(機智, wit) · 조롱(嘲弄, ridicule) · 반어(反語, irony) · 비꼼(sarcasm) · 냉소(冷笑, cynicism) · 조소(嘲笑, sardonic) · 욕설(辱說, invective) 등의 어조를 포괄합니다.21 리뷰어 난네코는 한켠 작가님께선 영어단어를 과잉 사용하는 20세기의 모던보이를 통해, 21세기에 벌어지는 영어 과잉 사용 현상에 대해서 풍자하는 문학 작품을 조형해냈다고 해석합니다.
문학이란 동시대 사회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15매 분량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춰주시는 위대한 대문호 한켠 작가님께 배례합니다. 난네코 배상(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