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어제오늘의 문제만은 아닌 청년 실업률. 그 대책 마련을 위해 정부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논의하고
노력하는 듯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큰 성과가 없는 것이 현 시국의 문제라면 문제이다.
<개미와 우리>라는 작품은 이러한 심각한 청년 실업률과 취업난을 바탕으로 청년들의 일상을 개미의 일상과
연상 지어 그리고 있는 독특하면서도 재치 있는 작품이다.
두승과 ‘나’는 여러 번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봤지만, 그 어디서도 연락이 없는 상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몇 번이고 휴대폰을 쳐다보지만 역시나…
잠은 안 오고 뒤숭숭한 마음에 두승과 ‘나’는 근처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 세트를 시켜 먹으며 신세한탄을 한다.
김빠진 콜라, 어느샌가 말라버린 감자튀김… 왠지 모르게 이런 묘사적인 부분들이 두승과 ‘나’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 느껴져 그저 안타깝기만 한데… 다 먹고 나서 패스트푸드 점을 나서기 위해 문을 여는데,
순간 두 뺨으로 날아든 차가운 바람에 온몸이 움찔.
이 또한 두승과 ‘나’의 앞날을 예고하는 차가운 시련처럼 느껴진다.
시린 손을 감싸 쥐며 담배 한 대를 태우는 두승, 그런 두승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문득 자취할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나’.
처음엔 한두 마리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벽이며 바닥이며 수없이 나타나는 개미 떼들.
알고 보니 처음 한두 마리는 정찰 개미였던 것. 그 뒤로 정찰 개미들이 뿌렸던 페로몬을 따라 길을 나선 수많은
개미 떼들. 결국 어느 사회, 어느 무리에서건 선구자는 있는 법.
그리고 개미에 대한 또 다른 기억 하나.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 초등학교 때로 흘러간다. 학교 앞 화단에 죽은 지렁이 주위로 새카맣게
몰려든 개미 떼들. 이미 개미들의 식량으로 전락한 지렁이 사체는 개미 떼에 의해 옮겨지는 데, 그중 유독 한 마리의
행동이 이상하다. 연신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더듬이 하나가 없는 것. 호기심에
‘나’는 다른 개미의 더듬이 하나를 떼어 버렸는데, 마찬가지로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취방에서의 개미 떼들과 초등학교 시절 화단 앞에서의 개미 떼들.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개미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작중 화자인 ‘나’는 과연 우리는 어느 쪽인가를 자문해 본다. 나는, 우리는, 위험과 시련이 분명
존재함을 알지만 그 누구보다 먼저 그 길을 앞서 나가는 정찰 개미와 같은 존재인가?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방황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더듬이 하나를 잃어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하는 개미처럼, 길을 잃고 방황하는 존재인가?
작품의 마지막 물음이기도 하며, 작중 화자인 ‘나’의 자문과도 같은 물음에 나는 두승과 ‘나’,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청년들의 시련이<미래의 위대한 선구자에게 따르는 일종의 시련>이길 바라본다.
나는 궁금해졌다. 내가, 우리가 이리도 헤매는 것이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낼,
미래의 위대한 선구자에게 따르는 일종의 시련인 것인지,
아니면 이미 더듬이가 망가져 버려 제 길을 찾을 수 없게 된 개미의 오작동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