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레기’라는 말이 언제부터 유행하였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기레기’라는 단어가 주는 보편적인 이미지는 이미 사회에서 ‘나쁜 기자’의 표본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인 듯하다. 대중들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자극적인 기사를 내세우고, 그로 인해 생기는 피해와 비난을 모두 피해가는 모습을 보면, 이 ‘기레기’라는 족속들이 갖고 있는 ‘알 권리’가 얼마나 날카로운 무기이며, 또 얼마나 튼튼한 방패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 ‘당신의 알 권리’라는 소설 또한, 해당 사회문제로 제기되는 ‘기레기’를 주제로 다룬 작품이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기레기’의 보편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제시하며, 그로 인해 생긴 피해들은 단순하게나마 조형하고 있다.
사실 초반 내용을 봤을 때부터, 대략적으로나마 이 소설의 방향을 예상할 수 있었다. 태그로 달아놓은 ‘#사회비판’이라는 문구만 봐도, 작가의 ‘기레기’를 비판하겠다는 주제의식만큼은 확연하게 볼 수 있었다. 이 확연한 주제의식이 왜 문제가 되는지는 후술하겠다.
2)
우선 소설은 ‘박호록’이라는 기자가 ‘팬으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는 전형적인 ‘기레기’다. 자극적인 기사로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을 던져놓고, 자신에게 마땅한 보상을 주지 않았기에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며 조롱하는 인성질마저 보인다. 즉, 작중의 ‘박호록’은 기자라는 직위를 악용하여 사람들을 협박하는 무뢰한의 표본인 셈이다.
이 ‘박호록’이라는 인물의 독특한 점은 일반적인 ‘기레기’와 결을 달리한다는 데에 있다. 일반적으로 ‘기레기’는 어긋난 신념의 표본이다. 그들이 기자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그 화제를 몰고 관심을 유도하는 역할에 어긋난 자부심을 가진다면, 이 ‘박호록’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기자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철저히 스스로의 물욕을 채우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교제하고 싶은 여인의 사생활을 폭로하여 협박하고, 약점을 잡아 돈을 뜯어내는 모든 과정은, 사실상 그가 ‘못된 기자’가 아닌 그저 ‘못된 사람’으로 보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문제점은 그가 물욕을 위해 저지르는 모든 행동들이, 너무 철저하게 욕망 하나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돈과 쾌락을 위해 기자라는 직위를 이용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는다. 작중에서 고통 받는 피해자들을 묘사하는 것과 별개로, 제3자 입장에서 관찰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그의 행동은 그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화가 나면 물건을 걷어차는 원초적인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왜 트집이야? 원래 악당은 원초적인 쾌락을 위해 이득을 챙기지 않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러한 악당의 결에서 박호록이라는 인물이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이 인물이 ‘기레기’라는 속성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반론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는 굳이 기자가 아니어도, 똑같은 악당이며 똑같은 욕망을 위해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대부분의 분량을 할애하는 박호록이라는 인물이 이토록 단순하고 평면적이라면, 결국 소설의 전체 흐름 자체가 평면적일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평면적이라는 비난은 차치하고서라도, 냉정히 따지면 작중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단순 도구화되거나 평면적이며, 사실상 설정과 이름만 제시하는 수준의 영향력을 보인다는 것도 거슬리는 점 중 하나다.
직접적으로 박호록의 피해자가 되는 모녀도, 과거 포주였다고 고백하던 전남편도, 모두 박호록의 악행을 위해 준비된 ‘도구’에 불과하다. 이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소설에 영향력을 끼치는 경우가 전무하다. 그저 당하고 고통 받았다는 일차원적인 서술 아래, ‘박호록 때문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참 끔찍하죠?’라는 상황 유도를 위한 등장 정도가 전부이다. 조금 거친 말을 쓰자면, 이 모두가 사실상 소설의 ‘인물’로 보기에는 많은 것이 미흡한 셈이다.
3)
주인공이 기자를 무기로 삼듯이, 결국 이 소설은 ‘사회비판’을 무기로 삼고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기레기’의 행태를 제시하며, 그 행태로 인해 기레기가 처벌 받는 결말로 카타르시스를 유도하고 있다. 앞선 비판들을 넘겨두자면, 사실 소설로서의 형태 자체는 흠 잡을 곳이 없다. 주제가 있고, 인물이 있고, 사건도 있고, 배경도 있다. 다만 이토록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의 요소를 모조리 갖춰놨음에도, 사실상 이 소설을 망치고 있는 건 그 ‘주제의식’으로 가는 카타르시스라는 점이 안타까운 점이다.
나쁜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한다. 즉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의식은 오래도록 사랑받았던 소재 중 하나이다. 하지만 오로지 ‘징악’만을 강조하며, ‘박호록’이라는 인물을 끔찍이도 악마화시키는 방식은 세련미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박호록’은 그저 돈이 있으면 행복하고, 여자를 안으면 피가 쏠리고, 겁에 질리면 도망칠 궁리만 하는 소인배의 모습을 끊임없이 반복할 뿐이다. 그에게는 고민도 없고, 갈등도 없다. 그저 눈앞에 닥친 무언가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자동화기계일뿐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기레기’라는 친숙한 소재를 과감하게 담아냈다는 점에 있다. 기술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을 수도, 주제적으로 평면적인 점이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60매 가량의 소설이 분량적으로는 물론이며,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를 선명하게 완성시켰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악당은 벌을 받아야한다. 그 당연한 이치는 꾸준히 우리 사회에 주입되어 왔다. 당장 박호록이 ‘크크크’하고 웃는 장면만 봐도, 우리가 이 소설에서 무엇을 느껴야만 하는지 알게 된다. 팔모가지가 날아가서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해버린 박호록의 말로를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 남 모가지 부러뜨렸으면 제 목이 무사히 붙어있기를 바라지 말라는 심심한 깨달음을 얻지 않았는가? 그것을 우리는 ‘교훈’이라는 단어로 정의하고 있다. 고민의 여지가 없는 한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