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지은 광기와 신념의 세계 감상

대상작품: AfterMath (작가: 이일경, 작품정보)
리뷰어: 소금달, 10월 4일, 조회 23

수학과 살인, 작품 소개에서 두 글자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당연히 피타고라스였습니다. 그는 가엾은 히파소스를 살해했지요.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가졌던 수학에 대한 광기는 충분히 드러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이 작품에도 그와 비슷한 인물이 나옵니다. 다만 피타고라스의 특성이 한 인물에게 투영된 것 아닌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리뷰를 쓰려고 합니다.

먼저 사건을 일으킨 대학교수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지점에서 호러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기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내 행동의 주체가 내가 아닐 때,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닐 때, 내가 책임질 생각이 없고 책임질 수도 없는 어떤 일을 내 몸이 멋대로 하는 상황 자체가 공포가 되지요.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신체강탈자 종류와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로, 주인공입니다. 그는 화자에 의해 수학 천재로 묘사됩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도 나오듯이, 대부분의 위대한 수학자들은 ‘수학’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죠. 주인공 역시 수학이 어떤 절대적 진리를 품고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그것을 연구합니다. 

이 때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저는 무리수의 존재를 깨달은 피타고라스와 비슷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가 믿어왔던 절대적인 세계, 절대적인 진리, 그의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뿌리부터 흔드는 충격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다만, 한쪽은 광기어린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고, 다른 한쪽은 신념이 무너진 자기 세상에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품의 전반적인 흐름으로는 후자가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광기와 신념 어느쪽이든, 그의 최후는 (인물 내적으로 보자면 안타깝지만) 매우 적절하지 않은가 생각도 합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과 관련해서-인물 이야기만 많이 썼는데-리뷰 말미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진짜 같은’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뭐 환상문학이나 SF는 무조건 좋지 않다-그런 식은 아닙니다. 당연히 모든 이야기는 허구이고, 독자도 그걸 알며 소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제가 ‘진짜 같다’고 느끼는 것은, 그것이 가짜인 줄 알면서도 꼭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인데요. 예컨대 반지의 제왕을 읽은 후 그게 모두 허구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르는 세상 어딘가에 호빗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그런 것 말이죠.

그런 면에서, 저는 이 소설이 참 좋은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진짜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이 깔렸기 때문이지요. 아마 그래서 (저 포함) 많은 독자분들이 말미를 휙휙 넘기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그리고는 작가님 마지막 코멘트에 안심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며 피식 웃게 되는 것이죠.

주변에 흔하고 전혀 공포스럽지 않았던 것을 소재 삼아 ‘진짜 같은’ 이야기를 만드셨다는 점에서 감탄이 나오는 좋은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덕분에 전 당분간 자연상수나 원주율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보게 될 것 같고요, 역시 수학은 공부하는 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ㅎㅎ 재미있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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