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 살인, 작품 소개에서 두 글자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당연히 피타고라스였습니다. 그는 가엾은 히파소스를 살해했지요.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가졌던 수학에 대한 광기는 충분히 드러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이 작품에도 그와 비슷한 인물이 나옵니다. 다만 피타고라스의 특성이 한 인물에게 투영된 것 아닌듯 합니다.
그가 한 행동은 교수에게로, 그가 느꼈을 절망은 주인공(화자는 다른 이지만 스토리상 저는 이 인물이 주인공이라 생각했습니다)에게로 나눠지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먼저 사건을 일으킨 대학교수입니다.
그는 피타고라스와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기는 사뭇 다른데요, 교수는 수동적, 피타고라스는 능동적입니다.
교수는 원주율을 연구하다가 특정 숫자 조합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원하든 원치않든 그 입력된 숫자 값에 따라 명령을 실행하게 되지요. 마치 명령어를 습득한 기계처럼, 코딩된 프로그램처럼요.
두번째로, 주인공입니다. 그는 화자에 의해 수학 천재로 묘사됩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도 나오듯이, 대부분의 위대한 수학자들은 ‘수학’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죠. 주인공 역시 수학이 어떤 절대적 진리를 품고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그것을 연구합니다.
그러나 그가 온 생애를 바쳐 수학을 연구한 댓가로 얻은 것은 인간을 조정할 수 있는 광기였죠.
그러므로 피타고라스가 히포소스를 살해했듯이, 그는 스스로를 살해할 수 밖 없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사실 주인공이 정말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살한 것인지, 아니면 특정 숫자 코드를 읽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살해’한 것인지 글 만으로는 명확치 않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과 관련해서-인물 이야기만 많이 썼는데-리뷰 말미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진짜 같은’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뭐 환상문학이나 SF는 무조건 좋지 않다-그런 식은 아닙니다. 당연히 모든 이야기는 허구이고, 독자도 그걸 알며 소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제가 ‘진짜 같다’고 느끼는 것은, 그것이 가짜인 줄 알면서도 꼭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인데요. 예컨대 반지의 제왕을 읽은 후 그게 모두 허구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르는 세상 어딘가에 호빗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그런 것 말이죠.
그런 면에서, 저는 이 소설이 참 좋은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다양한 복잡성은 외면당한 채 마치 기계처럼 단순 명령어에 따라 정해진대로 행동한다는 설정이 조금 불쾌하기도 하고 (개인적 취향입니다… 작가님 마음 상하지 않으시기를요 ㅠㅠ) 너무 단순한 생각 아닌가 하는 생각했으면서도
주변에 흔하고 전혀 공포스럽지 않았던 것을 소재 삼아 ‘진짜 같은’ 이야기를 만드셨다는 점에서 감탄이 나오는 좋은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덕분에 전 당분간 자연상수나 원주율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보게 될 것 같고요, 역시 수학은 공부하는 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ㅎㅎ 재미있는 이야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