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녹음기를 켜봐요! 의뢰(비평)

대상작품: 미신 (작가: 방구석 무법자,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7년 7월, 조회 41

신승훈 씨의 노래 중에 ‘라디오를 켜봐요’라는 제목의 곡이 있다. 나는 한국 남자 노래를 자주 듣지 않지만, 이 노래는 예외다. 흥얼거리면서 기억을 되짚어보면 가사가 대충 이러하다.

 

지금 라디오를 켜봐요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노래가

그대를 향해 울리는 내 사랑 대신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아나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이 노래가 생각이 난 까닭은, 리뷰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라디오 대신 녹음기를 켜본다면 어떨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사람은 카톡할 때와 수다떨 때의 말투가 다르다. 소설의 문장과 떠들어댈 때 구사하는 문장 역시 보통은 같지 않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서로 사용하는 감각기관이 다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감각기관에 따라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 사용은 기본적으로 청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있다. 말하는 것이 먼저이고, 쓰고 읽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언어의 발생 과정이 그러하기) 때문에 커피 마시면서 수다를 떨 때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야기한다고해도, 혹은 동어반복적인 문장을 여러번 늘어놓는다고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청각을 통한 언어정보의 처리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모든 내용을 문자로 늘어놓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눈으로 읽어들인 언어는 청각을 통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느리게 처리된다. 이렇듯 속도는 느려지지만 문장과 문맥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시 녹음기 이야기로 돌아와서, 지금부터 녹음기를 켜놓고 평상시처럼 대화를 해보자.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글쟁이인가, 얼마나 대단한 문장을 써내려가는가와는 별개로 자신의 일상 언어는 자신의 소설 속 문장들과 분명히 다르다. 어느정도 너저분한 감도 있고, 어느정도 늘어지는 감도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녹음기를 틀어놓고 “손금을 믿기에 절대로 죽지 않는 한 남자”에 대해 떠들어보는 것이다. 마치 내가 그의 곁에서 헬리콥터를 몰았던 것처럼. 그렇게 한창을 떠들고나서 녹음된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것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활자로 옮겨적으면 이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문체를 극단적으로 분류해보자면 세상에는 문어체와 구어체만 남지 않을까. 구어체를 극단적으로 몰고가면 이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작품의 화자는 중언부언한다. 구구절절 말이 많다. 마치 술자리에서 만난 아재 같은 느낌이 난다. 내 군생활 때는 말이야, 하면서 했던 말 또 하는 그런 양반. 이런 양반의 언어에서 논리성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과장된 재미는 분명 기대할 수 있다. 손톱(hand saw)으로 부대 근처 나무를 전부 베어버렸다느니, 밖에서 텐트 치고 두 달 동안 살면서 곱등이랑 구르고 모기랑 싸우고, 축구를 하면 메시 저리가라. 뭐 그런 류의 재미 말이다.

이 작품을 내가 어느정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류의 재미에 내가 공감했던 까닭이 아닐까. 친한 형이랑 오래간만에 만나서 술 궤짝채로 퍼마시면서 떠드는 기분이었다.

 

자, 그런데 이게 좋은 거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실제로 떠드는 건 머리가 빠르게 처리하지만, 그것은 문맥을 따라간다는 의미이지 내용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숙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글로 읽을 때 내용의 숙지는 더 깊어진다. 이 글의 경우에는 분명 활자로 이루어져있는데도 어쩐지 이야기를 듣는 거 같아서, 머리에 뭐가 남는 거 같질 않다. 술술 읽히는 것의 위험함이라고나 할까, 단지 술술 읽히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술술 읽히되 내용은 머릿속에 남아야 한다. 이 글을 읽고난 내 머릿속에 남은 건 그냥 운이 좋은 사내가 있었다는 사실 하나 뿐이다. 심지어 다 읽고나면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물론 소설 자체야 허구겠지만, 내가 느끼는 ‘사실성’은 그런 게 아니다.

뭐랄까, 군대에서 있었던 일을 허풍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어낸 이야기로군”하는 것처럼, 이 주인공이 떠드는 것도 그런 식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실제를 과장하여 매우 부풀려서 신참을 놀려먹는달까. 그냥 그런 기분이다.

 

운이 좋은 사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가위바위보라고 생각한다.

가령 1024명을 놓고 가위바위보를 시킨다면, 누구 하나는 10연승을 하게 된다. 이것은 그 사람이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10연승을 하게 되어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라서 누군가는 첫 판에서 지겠지만, 누군가는 10연승을 하게 된다. 나는 그 사람을 두고서 운이 좋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누군가는 10연승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게 운이 좋은 사내인 것이고.

 

뭐랄까, 대단히 구구절절 말이 많은 작품이었는데도 실제 내용은 얼마 없기도 하거니와 곁가지로 뻗어나가는 것도 상당하여 읽고 남은 감상이 이정도 뿐이다. 구어체에는 구어체의 장점이 분명 있을 테지만, 이 작품은 구어체의 장점을 하나만 살렸고, 하나 살린 장점마저도 단점으로 작동한다. 조금 정돈된 문장과 내용을 구사해보시는 것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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