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3대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산다는 말이 있다. 조부모 세대는 후진국에서, 부모 세대는 개발도상국에서, 자녀 세대는 선진국에서 살아간다는 말이 바로 그것.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당장 내 조부모님의 생활과 내 부모님의 생활, 그리고 나의 생활을 비교해보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24년생 김만춘>은 조부모 세대인 만춘을 중심으로 한 3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군상극이다. 만춘과 그의 아내 인숙, 그들의 자녀인 형식, 형만과 선희,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인 순지, 영옥과 명진, 만춘의 손자인 정호, 인호, 재호 등이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판타지나 SF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들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정말 평범하고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었을 뿐인데, 흡입력이 강해 소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만춘이 아내 인숙의 투병을 도우며 보내던 그 모든 일상, 투병기간이 길어질수록 꾀죄죄하게 바뀌어가던 만춘과 인숙의 행색과 그네들의 집안 모습, 결국은 요양원에 가게 되었던 만춘의 모습은 내가 보아왔던 조부모님의 모습과도 똑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를 돌보는 것도 힘에 부치니 간신히 생명 유지 활동만 이어갈 뿐, 집안 소제니 세신이니 하는 것들은 언감생심 그림의 떡이 되어갈 뿐이다. 그래도 최대한 자식에게 손벌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까지 어찌나 닮았던지.
형식과 형만은 그래도 만춘과 인숙이 제 부모들이니 최대한 돌보려고 나름 애를 쓴다. 그것이 애꿎게 아내들에게 불똥이 튀어서 문제지. 그들이 하는 것이라곤 아내들을 시켜 부모님께 반찬을 가져다드린다든지, 부모님 댁 청소와 빨래를 한다든지 하는 것이 전부다. 그 모습도 정말 현실이랑 똑같다. 작중에서 며느리들이 보이는 보여주는 태도는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으나, 내가 만약 그네들의 입장이었다면 나도 순지와 영옥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은 못하겠다. 조부모 세대에 절대적이었던 ‘부모가 늙으면 자식이 부모를 봉양한다’는 가치관은 어느 새 손자 세대로 내려오면서 ‘늙어도 알아서 각자도생해야 한다’로 바뀌었고, 형식과 형만부부들은 그 사이에 낀 세대니 어찌 보면 부담이 제일 막중한 입장이 아닐까.
“아마 형만이나 나나 우리는 부모를 모셔본 마지막 세대이자 더는 자식들에게 의존할 수 없는 마지막 세대일지 모르겠다. 이제 우리가 아프면 누가 집에서 모시려 하겠어. 스스로 요양원으로 갈 생각들을 해야지.”
형식이 말한 것처럼, 이제 더이상 내 노후는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 내가 알아서 내 삶의 마지막까지 책임져야 한다. 요양원에 스스로 들어간다고 한들, 그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자식에게 내 요양원 비용을 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시대니까. 그런 의미에서 만춘이 집을 팔아 장만한 피같은 2억 여원이 자식들의 호주머니로 흐지부지 녹아 들어간 걸 생각하면 좀 안타깝다. 순지로서는 그동안 자신이 맏며느리로 돌본 노력이 얼마인데, 그정도 돈도 바라지 못하냐고 하겠지만 주인공이 만춘인 만큼 아무래도 만춘에 좀더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게다가 내 생각엔 순지가 받아간 만큼 제대로 모신 것 같지는 않아 보여 더더욱이나 만춘 부부의 편에 서게 된다고나 할까. 솔직히 돈을 줄 땐 만춘에게 알랑거리고, 돈이 없다고 거절할 땐 칼같이 돌아서는 순지의 모습이 얄미워 보인 탓도 있다.
작가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나, 현재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와 그를 둘러싼 일가친척들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돈 이야기에 좀더 치중해 감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간 내 부모님과 나도 겪을 일이기도 하고. 중간중간 자식들 입시와 가계 문제로 속썩이는 형식과 형만, 선희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아직은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면 그네들에게 좀더 공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읽고 마지막까지 든 생각이 ‘확실하게 노후대비를 세워두자’인지라 상당히 민망하지만, 솔직하게 밝힌다. 결국은 돈문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하지 못하고 집에서 힘들게 투병생활을 이어나가야만 했던 인숙처럼은 되고 싶지 않다. 만춘과 인숙이 노력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나도 지금 노력한다고 해서 나중에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지금, 젊을 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노후를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할 뿐.
사족 : 작가님, 에필로그를 보면 만춘은 1933년 3월 24일 생인데 왜 제목은 24년생 김만춘인가요?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