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진 마늘 보다 고추장 공모(비평)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송곳니를 부탁해 (작가: 사피엔스, 작품정보)
리뷰어: 드비, 8월 20일, 조회 41

앞서 적사각님이 쓰신 리뷰를 보았다. 호평에 동의. 그 외 러프하게 생각나는 비평을 정리할까 한다. 따라서 선정을 바라는 글이 아니며 후다닥 짧게 남길 예정이다.   (나중에 덧붙임: 쓰고 보니 좀 길어졌다… 참 말이 많은 녀석이군…끙…)

 

1. 작품 소개에 ‘멸종 위기에 놓인 뱀파이어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이라 써놓으셨다. 하지만 낯설다. 이게 뱀파이어 라고? 이 글에 묘사된 호연, 호준, 그리고 호수는- 나만의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뱀파이어라는 판타지적 존재에 대한 상식?으로 미루어보면 공통점이라곤 송곳니로 피를 흡혈한다는 것 뿐이다.

 

이 부분에서, 적사각님 리뷰에 크게 동의하는데, 바로 백두산호랑이로 치환 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무리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찰떡이다. 조금 더 판타지적으로 버무리자면 백두산 호랑이 혈족의 수인이라는 설정이었다면 어떨까.

 

작품 곳곳에 묘사되는 주인공들의 면면을 보자. 수컷, 암컷, 뛰어난 후각, ‘몸내’, ‘발정’이나 ‘엉덩이를 들어 올린다’, 라는 묘사가 특히 그러하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을 인간의 형태를 한 뱀파이어 일족도 가지고 있는 주기적 특성이라 한다면 어색한 느낌이다.

 

개나 고양이과 동물과 달리 인간은 은폐 발정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했을 때의 현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특정 시기에 성욕이 집중된다는 이론인데, 여기서 핵심은 인간은 발정이라는 특성 자체를 숨기려 한다는 거다. 여느 문화권을 봐도 그걸 해학의 소재로 삼을 수는 있어도 대놓고 드러내려 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인간의 지적 상상력의 발현이라 할 수도 있는 판타지 세계관에서의 뱀파이어라면?

 

그 역시 만들어진 세계관이지만, 지금까지 축적되어온 뱀파이어라는 존재의 이미지는 귀족적, 초인적인 힘과 이능, 어둠. 흡혈 정도일 것 같은데, 위의 특성은 뱀파이어의 매력을 걷어차고 새로운 시도로 다른 동물적 특성을 접합한 것만 같다. 작가로서 새로운 시도는 항상 옳다. 그러나 그게 매력적인가 하는 것은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

 

이 작품에서는 뱀파이어의 이능 같은 것은 거의 묘사된 바 없다. 그냥 공권력 정도에 쫓기는 수준의 인간 기준에서는 상대적으로 강한 류인 정도, 수명이 엄청 길다 정도이다. ‘판타지’라는 장르의 특성을 가미하려 한다면, 주인공이 좀 더 강한 면모를 보이는 것도 좋다. 에이 말도 안돼 정도의 강함의 묘사가 독자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것은 오랜 판타지 작품들에서 증명된 바다.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는 있겠으나 오히려 강한 존재일 거라 기대되는 존재에게 그 강함을 박탈하는 것은 영리한 선택이 아니다.

 

혹은 반대로 생각해보자. 원래 백두산 호랑이를 주인공으로 쓴 글인데(+흡혈)이라는 특성을 접목한 것이었다면? 좀 더 자연스러운 하이브리드라는 느낌이었을 것 같다. 덧붙여 백두산 호랑이 혈족의 강함이 특징적으로 부각되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도 남는다.

 

흠… 그러면 비중과 키워드의 문제라 해야 할까나…

 

문득 쌈장이 생각났다.  이 쌈장이라는 것도 미묘한 것이, 비율이 존재한다. 주재료는 단연 된장과 고추장인데, 그걸 2:1이 정석이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1:2라 하는 분도 있고, 1:1이라 하는 분도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다진 마늘, 매실액, 참기름, 양파, 깨 등 부재료 역시 취향에 따라 다채로울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비유를 갈음하자면, 뱀파이어라는 키워드는 된장이나 고추장도 아닌 것 같다. 그냥 다진 마늘 정도. 이 작품 속에서 분명 맛을 내는데 없으면 허전할 재료이긴 하지만… 굳이 뱀파이어라는 키워드를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 속 흡혈 묘사로 충분하다. 비중은 백두산 호랑이의 후인이 크게 가져 가는 것으로 조정함이 옳다 (물론 제멋대로 레시피이니 참고만 하시라^^;; )

 

2. 송곳니를 넣었다 뺐다한다는 (구조)부분은 좀 의아하다. 과학적, 물리적으로 가능한 형태 같지가 않다. (로봇이 아닌 생물이라면) 평소 송곳니가 들어가 있다면 원래 그 자리에는 비어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게 대체되어 막이라도 씌우고 있는 것일까? 넣고 뺀다면 잇몸 쪽 가변적인 근육이 작용해야 할텐데, 어떤 기작으로??

그냥 송곳니가 스스스 커지고 작아지는 판타지적 설정이면 편할 텐데 왜 굳이 이런 물리적인 설정을 하신 것일까? 참고로 자연계 동물 중에는 위와 같은 가변적 치아를 가진 존재는 없다. 유사하게 상어나 악어의 예가 있지만 이들은 잇몸 속에서 거의 주기적으로 새로운 송곳니가 자라면서 기존 송곳니를 대체하는 형태이지 넣었다 뺐다 하는 구조는 아니다.

 

그 외 인상적이었던 부분

 

1. 바로 호연이 자신의 속에 호준(왕니) 그리고 도윤(뭉니)의 씨를 함께 품었다는 것. 작품 속에 ‘암컷은 자신이 원하는 수컷과 교미할 권리가 있다.’는 서술이 나온다.  분명히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한 배에 두 씨를 품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는 받아 들여지기 힘든 일이다. 허나 동물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아주 오래전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문학 작품에서, 동네 암컷 강아지가 여러 수컷 강아지와 교미를 하고, 털 색이나 점박이 등 복수의 수컷 강아지 개개의 특성을 가진 새끼들을 낳았다는 묘사를 본 적이 있다. 이건 판타지가 아니다. 개, 고양이, 토끼, 돼지 등에서 나타나는 ‘다배란’ 특성으로, 한 암컷이 한 번의 발정기 동안 여러 수컷과 교배하여, 태어나는 새끼들은 서로 다른 아빠를 가질 수 있는 현상이다. 이상한 것도 아니다. 자연계에서 이루어지는, 보다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위해 다양한 유전적 조합을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의 과정일 수도 있다. 이것을 인간의 시각에서 함부로 제단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호연의 선택은 자신이 사랑한 복수의 두 존재를 받아들이는- 지극히 자연 속 동물의 그것이니, ‘인간’인 우리 독자들로서는 더욱 색다름을 주는 것도 같다. 호준도 그것을 썩 유쾌해하진 않지만 쿨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약간 문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남성인 나로서도 가부장제는 굳이 지켜야 한다 주장하고 싶은 것 따위가 아니다. 유교가 득세한 조선시대 이전, 고려와 그 이전 시대에는 모계 사회였으며 여성의 권위가 존중받고 그만큼 컸음을 떠올릴때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만 인간은 하위 생태계와는 다른 매커니즘과 문화를 가진 개체이니만큼, 현실적인 반영에는 무리가 있다. 남성 여성 구분할 필요없이 1대 다수의 성관계는 통상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될 여지가 크다. 물론 동시가 아닌 순차적인 관계도 그러하다. 무엇보다 생명의 잉태를 본능적인 전제로 관계를 맺는 자연계와 달리 인간들의 관계는 욕구가 우선시 되는 경우가 태반이니, 순수함?에서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작품 속 서술들로 유발되는 흐뭇한 상상은 대리 만족하는 쪽으로 함이 옳을 듯 하다. (아 작가님의 의도에서 너무 벗어나 혼자 망상을 전개한 것 같다. 당신만 그렇다고? 크흠… 슬슬 다시 버로우를 시전해야 할듯 하다^^;)

 

2. (서둘러 정리해 보자) 한국전쟁 당시의 민족의 비극적 상황 속에 (헤어짐) 자연스레 주인공들의 역사를 녹여 내었다는 것이 좋았다. 사실 이 역시 백두산호랑이와 궤를 같이 한다. 곳니, 왕니, 뭉니, 앳니라는 용어도 그렇다. 찾고, 지키고 싶은 존재… 그래서 더 백두산호랑이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민족적인 정서를 건드려 좋은 느낌으로 발전시킬 여지가 크다고 본다.

 

시간이 없어 후다닥 썼기에 퇴고를 못했다. 정돈되지 않은 잡설일 수도 있다. 감안하여 보시기 바란다.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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