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일까 아닐까 감상

대상작품: 세 번째 옵션 (작가: 김형준, 작품정보)
리뷰어: 청보리, 8월 18일, 조회 14

AI.

현재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분야다. 아니, 미래가 아니라 현재 각광받고 있는 분야라 해도 되겠다. 현재 AI는 원격진료, 각종 상담, 투자, 생활 관리 등 다방면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것도 꽤나 깊이있게. 더 이상 AI는 SF 영화나 소설에서 보던 미래 기술이 아닌 것이다. 이런 AI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고, 다양한 물체에 접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는 이 AI를 로봇에 결합시켜 인공지능로봇이 사회 전반적인 면에서 활약하도록 하는 것이 대세다. AI로봇으로 요리 및 서빙을 하게 한다거나, 집안을 관리한다거나, 혹은 반려동물을 돌보게 한다거나, 혹은 아이 및 노인과의 놀이 상대가 되어 정서적 교감을 하도록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특히 마지막 예시와 같은 AI 로봇이 한층 더 발전한다면 우리가 SF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봤던 것과 같은 그런 로봇, 안드로이드를 우리 생활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의 배경도 그러한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다. 특히나 죽음으로 인해 내 곁을 떠나버린 소중한 대상의 기억이나 외형을 그대로 복제한 로봇을 곁에 두고 그리움을 달랠 수 있다는 한 회사의 홍보가 꽤나 인상적이다. 살아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를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마케팅 포인트로 보인다. 일각에선 복제인간도 생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 복제인간을 판매하는 회사는 복제인간은 단순한 제품일 뿐이라며 선을 딱 긋는다.

주인공도 불의의 교통사고로 떠나보내야 했던 아내를 잊지 못하고, 아내의 복제인간을 주문해 수령한다. 소설 중간중간 등장하는 ‘새로운 아내’라는 표현이 어찌나 어색하게 다가오던지.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새로운 아내를 주문했다는 서술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이질적으로 보였다. 디지털 액자로 아내를 그리워하던 ‘나’의 모습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였는데, 거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아내와 똑같은 복제인간을 주문했다는 것에서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예전처럼 같은 생활을 영위하고싶어 아내의 복제인간을 주문한 것이겠지만, 이게 과연 맞는 길일까. 죽은 사람은 그대로 보내주고, 나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건 아닌가. 죽은 사람과 똑같은 복제인간이 내 곁에 왔다 하더라도 예전같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 특히 이 부분이 제일 궁금했다. 내가 이미 ‘돈을 내고 제품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박혀있을텐데, 정말 예전처럼 상대방을 대할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물건을 대하듯 복제인간을 다루지 않을까?

결말에서의 ‘나’의 행동을 보면, 내 생각이 그렇게 틀린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정말 아내를 사랑했기에 아내의 복제인간을 주문한것이겠지만, 정작 아내의 복제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매우 입맛이 쓰다. ‘살아있던 아내’는 자기와 같은 인간이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었고(함부로 대하면 당장 법적인 걸 포함해 다양한 문제가 불거지게 될 테니까), ‘주문한 아내’는 어쨌거나 ‘제품’이기에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나’의 무의식에 있었던 게 아닐까. 세 번째 옵션을 ‘아내’에게 추가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내 추측이 썩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주인공이 아내의 복제인간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작중에서 잠깐 스쳐지나갔던 토론 프로그램이 지나갔다. 복제인간을 인격체로 존중해주어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진행되던 프로그램이었다. 어쨌든 본질은 로봇이니 단순한 물건취급을 해야하는지, 아니면 사람의 외형과 사람의 기억, 그 모든 걸 갖고 있기에 인격체로 대우해야 하는지. 결론이 나오려면 꽤나 지난한 일이 될 것이고 어쩌면 결론이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드시 사회적으로 토의를 거쳐야 할 부분이 아닐까. 그러지 않는다면 이 소설의 결말은 어린아이 장난같은 수준으로 보일 법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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