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분노 감상

대상작품: 원더풀 월드 (작가: 청와, 작품정보)
리뷰어: 청보리, 8월 13일, 조회 19

살면서 분노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희노애락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분노를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분노가 잘못된 방향으로 뻗어나갔을 경우엔 나를 스스로 좀먹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뻗어나갔을 경우엔 무언가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분노가 꼭 타인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건 인류 역사가 이미 증명했으니까요.”

무의 말은 지난 세기 분노는 불공정에 시달리던 약자들에 의해 사회 변혁의 밑거름이 되었고 실제로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당장 본문만 봐도 이를 긍정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당장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던 각종 혁명들만이라도 떠올려보자.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낙진이 몸담고 있는 사회는 분노가 제거된 사회다. 그것도 인위적인 ‘블루필’이라는 약물에 의해. 당연하게 존재해야 할 감정이 인위적으로 사라진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분노는 에너지를 꽤나 많이 요구하는 감정으로, 거기에 포함된 역동성 또한 대단하다. 그러나 ‘가벼운 무기력과 나른함’을 유발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블루필 알약으로 분노가 거세된 사회라면 역동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낙진이 무와 함께 수사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느낌은 더 강해진다. 

 

“What a wonderful world!”

안정, 질서, 평화. 그야말로 뭐 하나 부족할 것 없는 멋진 세상이었다.

과연 멋진 세상일까? 정당하게 화내야 할 때도 화를 낼 수 없는 세상이? 안정과 질서와 평화를 추구하다보면 절로 그 사회는 고여서 썩기 마련이다. 안정과 질서와 평화라는 가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라면 응당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분노는 동반되기 일쑤인데 그걸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사회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한 곳에 모아 격리시켜 관리한다. 그들이 어떻게 관리되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블루필때문에 사람들은 이 처사가 부당하다고 이의를 제기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저 수긍하고 따를 뿐. 얌전히 주인의 말을 따르는 우리 속 가축같은 느낌이 강한 사회라고나 할까. 그리고 이 가축을 다루는 주인은 바로 안이다. 낙진은 결말에서 불씨를 되살리려 노력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갑자기 낙진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흐름이 다소 치밀하지 못해 아쉽다. 어머니와 시온을 겹쳐보며 동기부여가 된 모양인데,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충실하게 블루필을 맞아온 시민인 그가 이렇게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것일까? 그래도 낙진의 미래 행보가 어떻게 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시온을 데리고 어떻게 불씨를 살리려는 것일까.

별다른 의문없이 하루하루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낙진이 어떻게 자신의 분노를 보여주고, 어떻게 그 역동성을 살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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