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좀비물을 봐오면서 항상 느꼈던 사실은, 모든 문제의 시작에는 인간이 있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마지막에도 인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돌이킬 수 없는 수많은 문제를 스스로 낳는 인간이지만, 결국에는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면서 미약하게나마 또 다른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반짝반짝 빛남에 약간의 다행스러움과 약간의 자랑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를 하나 잊고 있었는데, 인간의 빛남은 결코 혼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서 대부분은 혼자이기보다는 ‘함께’였다는 사실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인지- 잊고 있었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파괴된 세상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당연히 ‘함께’할 것으로 생각했다.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것이 그래도 나을 테니까, 누구나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드라마틱>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이런 모습도 볼 수 있구나 싶은 색다름과 당연하게만 하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한 호기심이 작품 속으로 나를 점점 더 빠져들게 했다.
-주인공의 추측에 의하면- 좀비 사태가 터진 지 석 달째다. 언젠가 핵까지 터져서 날씨마저 이상하게 변해버린 시간과 공간 속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그저 식량과 물을 구한다는 것에 불과했다. 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좀비를 1회 피할 수 있는 미끼를 구한다는 것 정도랄까?! 그에게 ‘함께’란 없었다. 그저 죽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먼저 죽이고, 필요한 물품을 구해가면서 생존을 해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우연히 한 살도 채 못된 아기를 만나게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생각하는 훈훈함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우선이자 유일한 고려사항이었고, 그 결과 아이를 데리고 치열한 생존의 현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드라마틱>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생존을 위한 생각과 행동, 그 자체만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보통의 좀비물과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몇 가지를 통해서 조금은 다른 그 재미를 느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주인공의 생존 과정에 재미있게 볼 요소들 가운데 첫 번째는 왜 그는 이렇게 냉철한 인간일 수밖에 없을까, 에 대한 상상이다. 사실 처음 이야기를 끝까지 다 읽고 나서는, 사람은 참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가 생각했다. 끝까지 보면 알겠지만 등장하는 시점부터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태도는 참 한결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니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처음에는 정말 한없이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아직 세상에 희망이랄 게 있던 시기라면서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면 서로를 보고 안도하고 웃었다고 하는 걸 봐서 그때도 그가 지금의 모습이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 한 달 남짓 하는 사이에 또 세상이 바뀐 것인데, 도대체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읽는 이에 따라서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 상상이기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독자가 이야기의 풍성함을 좌우할 수 있는 재미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한 생존 과정에 있어서 재미있게 볼 요소 중 두 번째는 주인공이 만난 -그리고 죽였던-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흡수(?!) 한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큰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에서도 살짝 언급되듯이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왜곡된 시선과 행동으로 나타나 그렇게 만든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미 그는 어떤 시점부터 자기 스스로를 잃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정체성은 물론이고 그 삶의 의미까지도 말이다. 그러니까 그저 다른 이의 삶을 자신의 삶인 양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오직 생존이라는 동물적인 감각만 남겨진 채로 말이다.
세 번째로 재미있게 볼 요소는 알파벳으로 사연의 주인들을 정리해 버린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은 그에게 희생되는 사람들을 A부터 Z까지 차례대로 알파벳으로 부른다. 이는 사연을 가진 사람들에게 익명성을 강조하는, 즉 주인공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아닌 그저 도구로 바라본다고 할까. 사연을 내놓는 자판기처럼 말이다. 또한, 이 알파벳으로 특정되지 않는 시간의 흐름도 짐작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이야기가 잘 구성되었구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요소는 내용적인 면에 있다. 사실 내용이 너무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오히려 흔히 예상할 수 있었던 방향이 아니라서 오히려 다행스러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래도 아기와 함께했던 시간이 있는데 약간의 동정심 같은 것이 들어서 끝까지 아기를 보호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래서 갑자기 모성애 같은 것이 생겨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행동은 작품의 시작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된 모습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무엇보다도 억지로 다른 감정을 갑자기 끌어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좋게만 다가왔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요소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해보면서, 결국에는 숨겨져 있는 다양한 재미를 직접 찾아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만큼의 가치는 있는 작품이라 생각되니까 말이다.
제일 앞에서 언급했듯이 <드라마틱>에서는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것이 나으리라는 보통의(!?) 생각과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서 잊고 있었던 의문이 다시 떠오를 것이다. 그렇게 ‘혼자’살면 뭐가 좋은 건데, 라는 질문말이다. 당연한 질문과 당연한 결론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당연함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보게된다. 그리고 덧붙여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원히 풀 수 없을 것만 같은 질문을 떠올려본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제대로 사는 것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