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남기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파타 모르가나, 알거나 모르거나 (작가: 엄정진, 작품정보)
리뷰어: 리체르카, 17년 7월, 조회 62

가장 첫 줄, 알베르 카뮈의 말을 인용하며 글이 시작되는 것에 반해 이야기는 협소하게 진행됩니다. 고독보다는 유사한 존재가 우주 어딘가에 있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거든요.

우주가 얼마나 큰지 알려주는 것은 거대한 고독 뿐이다.

-알베르 카뮈

바로 이 문구 말이지요.

글의 제목이자 작중에서 내내 이야기하고 있는 파타 모르가나(Fata Morgana)가 뭘까 찾아봤습니다. 독일어로 신기루라는 의미를 갖고 있더군요. 확실히 기계와 과학 문명으로는 관측할 수 없으나 눈에만 보이는 것에 붙을 법한 이름으로는 아주 적절한 것 같습니다.

파타 모르가나는 사람들의 삶에 아주 당연한 존재로 자리잡은 뒤에 곧 사라져버립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이들은 하늘에 지구가 떠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되었다는 몇 문장을 보면서 열 살 이하의 어린이들은 대통령이란 곧 흑인이라고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어쩌면 의도하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세계야말로 가장 정직하고 직관적이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최면에 걸린 것처럼 하늘에 떠 있던 세계를 받아들였다가, 이내 잃은 것에들 익숙해졌겠지요.

작중에 텔레파시 가능자들이 나타남에 따라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의문은 제가 짧은 리뷰를 적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단문 응원에도 몇 자 적어놓았으므로 작가님께서는 짐작하시겠지만,

파타 모르가나의 의미 그대로를 뜻하신 것이라면. 때문에 허상일 뿐인 세계에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아무튼 운명이란 것이 크게 변할 수 없다는 의미라면. 신기루에 머리를 처박아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은 생채기 뿐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신 것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쯤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어떤 식으로건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되었던 텔레파시 가능자들은 그저 약간의 가능성을 미리 귀뜸해주는 식으로만 소모되어버리니까요.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파타 모르가나는 사라져버렸고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가능성 역시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변화되었다고 한들 이제는 육안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으므로 그것이 진짜 변화인지 아닌지 알아채기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홀연히 나타났으나 서로를 변화시키지는 못한 후천적 쌍둥이의 모습 같았고, 흥미롭게 읽었으나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긴 이야기여도 좋았을 것 같아요. 단편으로 소모되기는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의 마지막에 다다를 때 쯤에는 그래도 어떤 유의미한 변화가 있기는 하지 않았을까. 그저 볼 수 없었던 것 뿐인것은 아닐까 생각할 말미를 얻게 되어 기뻤습니다. 어떤이들의 만남이 과연 파타 모르가나 의미 그대로만 끝날지, 아니면 새로운 변화를 도출해내는 시작이 될런지는 아무래도 작가님만이 아시겠지요. 그래도 저는 그 마지막에서 서로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찾고 싶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