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실패담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천하에 소용없는 노력과 망한 인생 (작가: 대혐수, 작품정보)
리뷰어: 뿡아, 6월 21일, 조회 36

   

*  결말을 포함합니다. *

 

저는 이 소설을 ‘빛나는 실패담’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단, 여기서 빛나는 것은 ‘실패담’이지, ‘실패’ 자체가 아닙니다. 이 소설은 흔한 청춘 성장 영화처럼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와 같은 말로 망한 인생을 위로하거나, ‘아름다운 도전, 시도는 좋았다’는 정신 승리로 쓸모없는 노력을 미화하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 온전하고 순도 높은 실패담이 됩니다. 인간의 경험이나 감정을 유형 상태로 보존할 수 있다면, ‘실패’라는 견출지가 붙은 유리병에 표본으로 담고 싶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실패의 특징은, 그 원인이 철저하게 사회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쓰레기 더미에서 고리(됴…)를 찾은 주인공은 그걸 목에 걸고 돌리는 데에 온갖 열정을 쏟습니다. (이때만 해도 아직 ‘실패’란 것은 그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밥도 쌀도 나올 리 없는 됴… 돌리기에만 빠져 있는 주인공은 가족에게 외면받다가, 됴…를 활용한 스포츠가 인기 종목으로 인정받는 외계행성에 스카웃됩니다.

그전까지 주인공의 삶은 ‘사회적으로’ 보잘것없었습니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가족에게 무시당하던 주인공은 외계행성에서 선수로 활동한 초기에 잠깐 스포트라이트를 받습니다. 하지만 우주의 벽은 높았고 그 짧은 성공 경험은 결과적으로 나중에 주인공을 더 깊은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스포츠 스타로서 실패한 주인공은 그 사회에서 방출되는 것이 아니라 제 손으로 지구행 티켓을 끊고 쓸쓸하게 낙향하고 맙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순수한 내면의 충족감이 사회에 의해 몰락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밀도 높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단순한 취미 수준이 아니라, 깊고 진지한 열정에 의해 그 대상이 직업이 되면 생활 대부분을 바쳐야 하며, 나아가 인정받기 위해 누군가와 경쟁까지 해야 하는 구조에서 오는 비극입니다.

 


 

소설가 헨리 밀러는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경험 속에 자신의 무엇을 쏟아 넣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와 반대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무작정 뛰어들 것이 아니라, 성과 낼 만한 걸 고르는 게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현실적으로는 내면의 충족감 하나에만 의지하며 살아가기 어려움을 짚어냅니다.

그래서 천하에 쓸모없는 뻘짓 따위에 열정을 쏟을 게 아니라,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한 행동을, 그것도 ‘잘’ 해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에 실패합니다.

됴…돌리기가 사회에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외면받았던 주인공은, 그것이 인정받는 사회로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에서 주목받을 만한 성취를 하지 못해 또다시 외면받습니다.

만약 주인공이 스포츠 스타로 크게 성공했다면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테지만, 그렇다 해도 극소수의 상위층을 제외한다면 누가 되었든 필연적으로 레이스에서는 패배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좌절감으로부터 보호받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열정이 사회화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 즉 ‘혼자 놀기’ 밖에 없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런 슬픈 진실을 대변합니다.

여긴 지구지만 우주공간에 버려진 것 같다.

 


 

‘목에 고리를 넣고 빙빙 돌렸다’라는 낯선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어떤 삶에든 대입될 수 있습니다. 혹시 <KBS 인간극장>이란 프로그램을 보신 적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어쩌다 한 번씩 보게 되는데, 거기엔 성공한 사람만 나오지는 않습니다. 때로 평범하거나 남루한 삶을 조명하고 그럼에도 인간의 삶을 예찬합니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삶은, 어느 하나라도 엄숙하지 않은 인생이 없습니다.

어째서 이 소설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걸까요? 그것은 이 작품 속에서 인생의 진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이야기에는, 다른 어떤 대단한 기교보다도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큰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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