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날’이라는 말을 어릴 적부터 많이 들었다. 이사, 결혼 등과 같이 주요한 일이 있을 때는 ‘손 없는 날’을 골라야 한다는 거였는데 그 의미에 대해서는 크고 나서야 생각하게 됐다. 리뷰를 쓰면서 검색을 잠시 해봤는데 ‘방위와 날을 따라 다니며 인간 생활에 해를 준다고 믿는 귀신’인 손이 어째서 손이라 불리게 되었는지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내가 참고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손이 존경한다는 뜻이 포함된 우리말이며 일면으로는 두렵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고 하는데, 그 외 몇몇 다른 자료에서는 이 손을 한자어 덜 손(損)으로 표기한다. 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보다 그 나머지 자료들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덜 손(損)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밑짐’, ‘해를 입음’ 등의 뜻으로 존경한다는 뜻과는 거리가 있어서 의아했다. 현재 소설의 제목 <손 오는 날>에도 역시 그 한자가 사용되고 있어서 한자어를 사용하는 게 맞는지, 혹은 순우리말인지, 다른 한자어가 따로 있는지 확인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맨 처음 했다. 글을 읽을 때 말맛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한자나 우리 말의 뜻을 파헤치는 편이라 더 궁금하다.
손이란 말은 비단 ‘손 없는 날’에만 쓰인 게 아니라 천연두의 역신을 부르는 말인 ‘손님’에도 그 발자취가 남아 있다. 바로 그래서, 나는 난치병으로 알려진 천연두와 같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해악’을 손이라고 생각했고, 어쩌면 그 거대한 ‘손’이 있기 때문에 여러 잡귀들이 해악을 끼칠 만한 ‘장’이 마련되는 날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곧, ‘손’이라는 말이 단순한 ‘악귀’로 치환되기에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을 읽으며 계속 좀 찝찝했다. 오컬트와 수사물을 잘 섞으려 시도한 점은 좋았지만 드라마 <악귀>를 볼 때와 비슷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서다. 드라마 <악귀>를 짧게 설명하기 위해 영화 <파묘>의 명대사를 잠시 빌리자면, ‘겁나 험한 것’이 깃들어 있는 물건을 받아버린 구산영이 악귀에 씌이면서부터 구산영과 귀신을 보는 민속학 교수 염해상, 경찰이 협력하면서 사건을 해결해가는 구조를 취했다. 특히 이 드라마의 경우 악귀가 ‘악귀 다운 행위’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그 외 다른 귀신들이 더 악독했다) 악귀의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었으며, 심지어 사연마저 많아서 오컬트 장르라고 보기엔 너무도 교훈적이었다. 더불어 설정 충돌, 세계관 붕괴되는 구멍이 참 많았다.
이 소설 <손 오는 날>은 사실 연재 중인 소설이라 리뷰를 남기기 조심스러웠지만 그때와 비슷한, 설정 부분에 대한 ‘아쉬움’에 글을 쓰게 되었다.
시작점은 좋았다. 주승이 악귀에 들리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호기심을 끌었다. 주승을 이용하려고 하는 소위 ‘미친개’ 형사와 주승의 관계성도 좋았다. 바로 그래서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두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더 갈등이 폭발할 것 같다 생각했지만 이건 작가의 선택에 달린 문제고, 나와는 방향이 다른 것 같다. 다만 민혁의 존재감이 지금 너무도 약한 상황이어서 뒷부분에서 조금 더 잘 보여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또한, 이 소설에 따르면 주승의 몸을 침범하는 귀신들은 정황상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로 보이는데 그들을 ‘악귀’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크다. 이 소설에 지금까지 적힌 바에 따르면 주승은 억울하게 죽은 자의 혼이 씌인 상태로 꼭 그들이 죽었을 때 겪었던 것을 경험하고 경찰에게 그들의 죽음을 알린다. 한마디로 그의 역할은 저주 받거나 빙의 당하는 대상이 아닌, ‘영매’인 셈이다.
영매=무당이라고 볼 순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한국의 무당처럼 몸주신을 비롯한 여러 신을 모시는 경우도 있겠지만, 단지 죽은 자의 영혼과 소통하는 이들까지 포함하고 있으니까.
그런 한편, 주승은 주기적으로 이상한 귀에 씌어서 고통받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소설 안에서는 뭉뚱그려져 있는데 굳이 원혼과 이상한 귀를 분류해둔 것은 주승을 악독하게 괴롭히고 타인에게 무작정 해를 가하는 귀신과 살해 당한 원귀가 동일하다고 한다면, 살해 당한 뒤에 한이 풀리지 않은 귀신들=악귀라는 세계관이어서다. 이러한 접근은 여러모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손과 악귀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귀신(원혼)에 대한 세계관, 설정이 명확하게 확립되어야 할 것 같다. 죽음과 귀신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니 만큼 쓰기에 따라 달렸지만, 콘텐츠에 따라 그 나름의 ‘설정’이 명확하게 마련되어야 흥미롭다. 앞서 말한 드라마 <악귀>가 내겐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드라마 안에서 설정이 꼬이고, 캐릭터 붕괴가 일어나며 심지어 세계관이 뒤틀려버릴 만한 구멍이 여러 개 발견되어서다.
손은 억울하게 죽어 원귀가 된 자만을 뜻하는가.
원귀를 악귀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아니라면 악귀는 어떤 자들인가.
악귀와 원귀가 모두 주승을 공격하는가.
주승은 어떠한 사유로 공격 당하는가.
악귀와 원귀에게 핸디캡은 없는가.
이 소설 안에서 ‘손’이란 결국 무엇인가.
간단하게 소설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을 써보았다. 이와 같이 질문에 뚜렷하게 답할 만한 나름의 세계관이 필요하고, 그것이 있다면 16화 정도 진행된 이 시점에는 분명히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주승의 할머니가 ‘무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승의 몸에 악귀가 침범한다는 설정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무속에 대해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입장이라 더 의문스러웠던 점이다. 무속인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귀신 들리는 건 아니며, 귀신과 무속에서의 신은 명확하게 다르다. 또한, 무속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해도 신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다.
현실에서는 ‘우연’적인 일도 많이 생기지만 소설에서는 ‘그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 소설처럼 빙의 아닌 빙의를 소재로 한, ‘초능력’ 소재 소설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귀신 쪽 서사 외에도 의문인 조직이 있었는데 ‘한무리’다. 소설에 따르면 전직 경찰을 비롯하여 법조계 인사들이 즐비한 조직으로 국가의 사법권을 침범하며 독자적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걸로 보인다. 일단 ‘가능한가’는 차치하고 ‘왜 그래야만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든다.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는 세계관이나 설정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가능해질 수도’ 있는데 이 소설 안에서는 어쨋거나 경찰이 버젓이 살아 있고 국가 구조 자체도 현재의 대한민국과 비슷해서 더 의아했다. 바로 그래서 한무리라는 사조직이 어째서, 어떠한 사유로 존재하고 있는지 다분히 의문스러웠다.
이 소설의 설정상 소설 내에서 지금 다뤄지고 있는 살인사건 수사를 제대로 하겠다며 사회의 전면에 나서는 걸로 나온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다른 형태의 일을 하고 있었던 걸까. 사설 탐정 혹은 거대한 흥신소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건지 무엇인지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한무리의 존재감만 크니까 어지러웠다. ‘손’과 귀신에 대한 이야기에 한무리 이야기, 살인사건에 얽힌 갈등까지 지금까지는 모두 다 따로 노는 느낌이다. 서사는 흘러가나 의문이 쌓여간다는 의미다.
가독성이 있어 잘 읽히는 편이나 이렇듯 의아함이 쌓이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이 소설이 갖고 있는 매력이 잘 드러나긴 어렵지 않을까. 연재 중인 소설인 만큼 뒤에서 궁금증들이 해소될지도 모른다. 다만, 400매가 넘는 분량이라면 이 즈음에서는 세계관과 설정, 캐릭터의 방향성과 갈등 요소가 명확히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며 주절주절 의견을 써 보았다.
조심스럽지만 목소리를 내본 것은 내가 좋아하는 ‘소재’여서다. 소재와 기초 설정을 잘 가져오는 것도 소설가의 탁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설정, 세계관, 구성, 소설 내부에서의 당위성에 있었으니까. 뒷이야기가 더욱 더 탄탄하게 짜여지길 바라며 연재라는 힘겨운 길을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 작가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