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벌하는 것의 모순 감상

대상작품: 김문조의 스케치 (작가: 김아직,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4월 28일, 조회 10

인간이 인간을 벌할 수 있나.

 

이는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을 고민케 한 질문이다. 누군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질타받을 만한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해 보자. 그를 처벌하는 건 누구의 몫일까. 아주 오래전, 법과 국가의 체계가 없고 사람을 대표할 만한 사람이 없을 때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식으로 복수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기준으로 타인을 벌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사람이기에, 그리고 모든 사건이 전부 사실만을 드러내지는 않기에, 때로는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누군가가 처벌받거나, 벌을 피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벌을 내릴 권한을 지닌 사람이 보편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불공정한 잣대로 누군가의 죄를 판정할 때, 대중은 분노한다. 그리고 차라리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법이 기능을 상실하고, 권력이 공정이 아닌 더 큰 권력을 향하는 걸 바라보고만 있을 때 느껴지는 무력함은 생각보다 크다. 이 무력함은 때로 실제의 분노로 나타나기도 하며, 그 형태는 다양하다. 감정의 분출을 막지 않고, 직접 목소리와 몸으로,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피어난 이야기는 개인에게 초능력을 부여한다. 우리가 이렇게 평범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달라졌을까.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창작된 대표작은 역시 일본의 만화 『데스노트』다. 이 만화의 ‘데스노트’는 이름만 적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공책으로, 이미 대중들에게는 ‘데스노트에 이름을 적다’라는 표현이 관용구처럼 사용될 정도로 익숙하다. 법관이 되기 위해 공부하던 대학생 야가미 라이토가 법의 불완전함에 고민하던 중 데스노트를 주우며 시작하는 이 만화는 ‘사람이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공책이라는 구체적인 물건을 제시하며 작가만의 의견을 펼친다.

이런 노트가 ‘법관’을 꿈꾸던 라이토의 손에 들어간 것은 안전을 위한 장치였을 테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역시 노트로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음에 길드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개인에게 부여된 처벌권도 질서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사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이 사람에게 복수가 가능한 가상의 이야기는 언제나 비극으로 흘러가는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안에서 최선의 가능성을 가늠한다.

김아직 작가의 단편 〈김문조의 스케치〉는 이런 맥락에서 이미 비극이 예견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대로 이루어지는 남자 김문조. 그는 평범하지 않은 그 능력을 40년 만에 사용하기로 한다. 누군가를 ‘벌’하기 위해서다. 독자는 소설의 도입에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 『데스노트』의 라이토가 그랬던 것처럼, 김문조 역시 파멸의 길을 걷지 않을까. 그럴 수밖에 없지만, 한 이야기의 결말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서, 그 과정까지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벌써 결론을 예측할 수 있는 주제를 작가가 굳이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김문조는 40년 만에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그가 살고 있는 시대는 코로나19 팬데믹의 한가운데, 질병과 개인주의의 악당이 즐비한 2021년의 한복판이다.

 

 

슬픔보다 강한 세월을 몰아낸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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