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리뷰는 결말을 포함합니다.
작품을 먼저 보시고 리뷰를 읽으시길 권합니다.
처음 써보는 리뷰입니다. 좋았던 점과 더불어 아쉬웠던 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글을 보고 이러니저러니 평가를 하는 건, 그 글을 짓는 노고에 비하면 훨씬 간단한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리뷰는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독자가 쓴,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에 불과하니 너그러이 이해 부탁드립니다.
짧은 문장, 군더더기 없는 서술
이 글은 60페이지입니다만, 매우 술술 읽혀서 길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문장도 짧습니다. 매 글줄마다 마침표가 있을 정도로, 짧고 쉬운 문장의 연속입니다. 글이 길어지면 문장을 짧게 끊어 맺은 다음, 남은 문구를 덧붙이는 도치법도 자주 보입니다. 그래서 쉽게 느껴집니다. 또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치 옆에서 누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요.
훌륭한 심리묘사
이야기는 일인칭으로 서술되어 ‘미치겠다’는 심정을 시작으로, 이야기 내내 자신의 격정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토해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의 서술은 이야기를 계속 따라 읽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벽간 소음, 이렇게 해결해도 되는가?
이제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원룸에 사는 우리의 주인공은, 시끄러운 옆집 때문에 하루하루가 괴롭습니다. 옆집 남자가 매일같이 자신의 여친을 데려와 온갖 소음을 내기 때문이죠. 주인공은 벽간 소음 해결을 위해 이런 저런 방법을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자 마침내 ‘부적’을 사용해서 옆집 남자를 여친과 결별시키려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이거 정말 황당한 해결책 아닌가요? 불법, 합법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소설에서 이렇게 전개를 해도 괜찮은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괜찮다고 봅니다. 화자는 별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습니다. 왜 부적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는지는 묻지 마시라고.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요.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뛰어듭니다. 저는 이것이 요즘 트렌드에 맞는 도입부라고 여겨집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어떤 이야기가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는 퇴마사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할까요? 첫 문장으로 많은 것들이 설명됩니다. 퇴마는 무엇이고, 사후세계나 귀신이 존재하는가 아닌가에 대해 자세하게 늘어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독자는 그런 줄 알고 수긍합니다. 한 문장만으로 세계관과 설정, 처해 있는 상황,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모두 설명됩니다. 이 소설의 도입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하자면, ‘부적을 사용하기로 한 결정’은 이야기의 ‘서사’가 아니라 ‘설정’으로 작용합니다. ‘옆집이 시끄러운 것’ 뿐만 아니라, ‘부적으로 커플을 결별시키기로 한 결정’까지가 이야기의 컨셉인 것이고 이제 독자들은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지켜보면 되는 것이죠.
따라서, ‘부적으로 연인을 결별시켜 벽간 소음을 해결하겠다’라는 다소 이 황당한 결정은 이야기의 ‘도입부’이기 때문에 충분히 허용된다고 봅니다. 오히려 이러쿵저러쿵 사연을 붙이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습니다. 뭐 부적이면 어떻고 강령술이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해서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되지요. (하지만, 만약 이야기가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부적’이라는 수단이 문제해결의 결정적인 열쇠로 선택이 되었다면, 그 결정에는 납득할 만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게다가 이런 색다른 설정은 이야기에 기대감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내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도둑을 잡기 위해 내가 집어든 게 식칼이 아니라, 주걱이라고 칩시다. 저는 이런 설정이 식칼을 드는 것보다 더 개성있고 권장할만 하다고 봅니다. 이제 저 주걱으로 어떻게 도둑을 물리칠 지가 더 궁금해집니다.
물론, 주인공이 ‘부적을 써야겠다’라는 결심을 하기에 앞서 인터넷에서 ‘커플 헤어지게 하는 법’을 검색하다가 ‘부적으로 커플 헤어지게 하는 법’을 찾았다면 조금 더 자연스러웠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훌륭한 반전
저는 작품을 읽기 전에 댓글에서 ‘반전이 좋았다’라는 말을 미리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반전이 주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주된 요소’이면서도, 또 공공연하고 무신경하게 행해지는 행위가 바로 ‘반전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언급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름지기 반전의 묘미란, 아무것도 모르고 읽다가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라고 뒤통수를 얻어맞아야 재미있는 것이지, ‘반전이 있다던데 무슨 반전이 있으려나’하며 보는 것은 작품의 재미를 온전히 살리면서 볼 수 있는 감상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저는 ‘반전이 있다’는 댓글을 읽었음에도, 그 반전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단서를 아주 잘 숨겨두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반전의 내용은 ‘옆집 남자의 여친은 귀신이었고, 내가 쓴 잡귀쫓는 부적으로 그 여자를 물리친 거였다.’라는 거였죠. 그럼 나는 왜 이 반전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하고 돌이켜 보았습니다.
무당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의 주된 관심사는 ‘내가 쓴 결별 부적이 효력이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당언니는 ‘그렇지 않다’라고 답장을 보내며 ‘잡귀나 쫓는 부적일 뿐’이라는 내용을 슬쩍 갖다 붙입니다. 이것은 아주 잘 설계된 반전의 모범사례라고 봅니다. 독자들은 ‘결별 부적의 효력 여부’에 집중하느라 덧붙인 말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저만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부적의 효력여부에 신경을 쓰도록 화자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도 했고, 더불어 곳곳이 삽입된 깨알같은 유머가 정신을 빼놓은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의심을 피하기 위해 다른 집 현관문에도 전단지를 붙여두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저는 나름 이것이 ‘독자의 짐작에 혼란을 주기 위한 장치’로 작용했다고 느껴집니다. (저만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반전이 있다는 걸 알고, ‘뭔가 아랫집과 연관이 있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쉬운 점
저는 옆집 남자가 ‘전단지에 뭔가가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된 경위가 조금 설득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헤어진 여자 친구가 ‘집이 이상해졌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전단지를 찾아내고 전단지에 뭔가가 깃들어있다는 것이라고 남자가 짐작한다? 저는 이 부분이 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전단지를 붙이는 게 뭐가 그리 수상한 일일까요? 전단지 붙이는 장면을 CCTV로 보았다고 해서, 그 전단지가 어떤 기능을 한다고 예측하는 게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사고방식일까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 부분은 도입부와는 달리, 사건이 많이 진행된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좀 더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
전단지를 찢자마자 여자가 나타난 점이, ‘마치 촛불이 꺼지자마자 유령이 나타난 것 같은’ 초자연적인 느낌이 들어 인상적이었구요. 나중에 여자가 귀신인 줄 알게 되었을 때, ‘아 그래서 그렇게 갑자기 나타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한결 더 여운이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