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이 시끄러워 미쳐버릴 것 같다.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다. 옆집을 조용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저주든, 무엇이든.
나는 한 5층짜리 빌딩의 원룸에 살고 있다. 1층은 부동산이, 2층부터는 한 층에 세 개의 가구가 있는 건물이다. 나는 일 년 전 이곳의 502호에 이사 왔다. 저렴한 월세는 아니었지만 주변에 깔끔한 산책로가 있고, 직장까지 한번에 가는 지하철 노선이 있어 선택했다. 살아보니 꽤 괜찮은 곳이었다. 한 달 전 까지는.
최근 깨달은 바로, 이 건물의 방음은 쓰레기였다. 원래 내 옆집인 503호에는 인근 대학병원의 간호사가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살고 있을 때까지는 소음으로 문제를 겪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 집에는 방음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옆집 간호사가 매일 나이트 근무를 서느라 집에 돌아오지 못해 조용했었다는 사실을. 한 달 전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온 후, 이 잘못된 믿음이 깨졌다.
새로 온 사람은 인근 대학에 다니는 20대 남자였다. 현관에 놓인 신발, 택배 상자에 쓰인 이름, 생활 패턴 등을 보면 추리할 수 있었다. 사실 추리고 뭐고 벽을 넘어오는 대화만 들어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의 신상 정보는 매일 밤마다 얇은 벽을 타고 옆집으로 누출되었다. 정작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건물의 방음만이 아니었다. 남자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왔다. 그 둘은 밤마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그 대화의 흐름을 온전히 느껴야 했다. 그래, 너네는 곧 백일이 되는구나. 학교에서 우연히 만났구나. 여자 집은 편도로만 두 시간이 걸려서 허구한 날 여기에 오는 거구나. 홀로 그들의 사정을 읊조리며.
대화는 귀여운 축에 속했다. 가장 최악인 순간은 그들이 사랑을 나눌 때였다. 끙끙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들이 방에서 운동이라도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달뜬 숨 소리가 연속해서 울렸을 때, 난 깨닫고 말았다.
이 새끼들은 지금, 섹스를 하고 있다. 이 좁아터진 침대 위에서.
그래, 할 수 있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얇은 벽 너머에서 이 소리를 함께 들어야 하는 나는 무슨 죄란 말인가? 그들의 성적 자유권은 나의 수면권 위에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자 울분이 터져 누운 채로 벽을 쾅쾅 쳤다. 그러나 나의 울분은 그들의 격렬함에 묻힌 채, 서글프게 울릴 뿐이었다.
출근길, 피로로 인해 생긴 두통에 머리를 짓누르며 생각했다. 이제 정말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소음을 멈추고 나의 수면을 되찾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처음에는 물리적인 방법을 시도했다. 다이소에서 작은 고무망치를 사와 시도 때도 없이 벽을 두드렸다. 옆집이 시끄럽게 굴 때는 물론이고, 내 고통을 느껴 보라고 평소에도 아무때나. 그런데 문제는 503호가 시끄럽지 않은 순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옆집이 적막할 때는 집 주인이 없을 때뿐이었다. 남자는 집에 들어오면 꼭 여자와 떠들거나, 전화통화를 하며 소음을 발생시켰다. 옆집이 시끄러울 때는 망치를 두드려봐야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 뒤로 각종 방법을 모두 시도했다. 집주인에게 이르기, 경고 포스트잇 붙이기, 스피커로 귀신 소리를 틀어서 벽에 붙이고 있기 등. 하지만 그들은 견고했다. 잠시 조용해지는 척 해도 몇 시간 후엔 금세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미쳐가던 나는 새로운 방법을 하나 떠올렸다. 바로 ‘부적’을 쓰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러한 사고 흐름으로 흘러갈 수 있는지 묻지 말라. 누구에게나 사연 하나쯤 있는 법이니까.
바로 유튜브에 ‘부적 쓰는 법’을 검색했다. 과하게 다양한 종류의 부적들이 검색 결과에 주르륵 띄워졌다. 검색어 앞에 ‘이별’을 붙이고 다시 엔터를 쳤다. 최상단에 ‘얄미운 커플 부적 써서 헤어지게 함… 효과 실화냐?’라는 썸네일의 동영상이 있었다. 채널 이름은 ‘무당언니’, 조회수는 13만. 클릭했다. 천박한 문구와 다르게 채널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설명은 간결하고 신뢰감 있었다. 심지어 가끔씩 던지는 농담에는 위트가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영상을 다섯 번 정도 돌려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당장 부적 작성에 돌입하자고. 준비물과 작성법은 이미 머릿 속에 있다. 남은 것은 행동 뿐이다. 나는 비장한 각오로 결심했다.
문제는 부적을 어떻게 옆집에 건네느냐, 였다. 무당언니의 말론 부적은 대상이 되는 사람이 소지하거나 거주지에 두어야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옆집 남자와 말 한 마디 나눠본 적 없었다. 우리가 나눈 유일한 의사소통으로는 그가 소음을 내고, 나는 닥치라고 벽을 쳤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부적(심지어 자신의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하는)을 주고 소지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그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현재 IT기업에서 UX/UI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UX는 User Experience, UI는 User Interface의 준말인데, 실은 아무거나 디자인하는 잡부나 다름 없었다. 때문에 웬만한 디자인은 다 할 줄 알았다.
그러니 전단지를 만들어 503호 현관문에 붙인다면? 흥미로운 내용이라면 분명 전단지를 떼어 집에 가져갈 것이다. 이 밖에도 가스검침 안내 종이, 수도세 고지서 등을 후보로 고려해 보았으나, 범죄가 될 가능성이 있어 전단지로 결정했다.
남자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킬 전단지 내용을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벽을 타고 들리는 대화에 의하면, 남자는 요즘 헬스클럽에 다닐까 고민 중이었다. 나는 구글에 헬스클럽을 검색했다. 포토샵을 켜고, 그 중 적절해 보이는 이미지를 갖다 붙였다. 트레이너인 양 몸 좋은 사람의 사진도 넣고, 한 달에 99,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큰 문구로 강조했다. 여기에 적당한 가공을 더하니, 정말 동네 어귀에 위치한 헬스클럽 전단지 같았다. 연락처 란에는 내 휴대폰 번호를 적어넣었다. 전화가 오면 대충 둘러댈 작정이었다.
며칠 후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전단지 100장을 배송 받았다. 내 디자인 경력 7년, 회심의 역작이었다. 그리고 준비해 둔 레몬즙과 붓을 꺼냈다. 레몬즙으로 글씨를 쓰면 보이지 않지만 불에 그슬리면 글씨가 나타난다고 어린이 과학동아에서 읽은 적 있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 부적을 만들어 낼 것이다. 나는 전단지 한 장을 뒤집어 붓을 댔다. 이미 여러차례 연습을 거친 터라, 어렵지 않게 글씨를 써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획. 붓을 떼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됐다, 완성했어. 광택지에 레몬즙으로 작성한 부적이 얼마나 효과 있을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의 첫 작품이었다.
나는 테이프를 잘라 전단지 세 개에 붙였다. 현관문을 열고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우리 층에 있는 세 개의 집 문에 모두 전단지를 붙이고 들어왔다. 자신의 집 앞에만 붙어있으면 수상하게 여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501호 사람은 운동에 관심이 없기를 빌었다.
저녁 열 시쯤 됐을까, 옆집 남자가 들어오는 기척이 들렸다. 문을 쾅 닫는 소리가 울리자, 나는 참지 못하고 밖에 나가 확인해보았다. 없어져 있었다, 전단지가. 내 계획이 성공했다. 혹여 버리지는 않았나 싶어 문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깨끗했다. 한결 산뜻해진 기분으로 방에 들어갔다.
그 날도 옆집 남자는 전화통화를 밤새 나누었다. 이미 새벽 두 시였지만, 내일은 아침 여덟 시까지 출근을 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웃으며 잠들 수 있었다. 내일은 새로운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