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겨울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장벽 너머의 베로니카 (작가: 과카돌리, 작품정보)
리뷰어: 소중은하, 3월 19일, 조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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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면, 종종 좋아하는 다른 글을 읽고는 한다.

그렇게 몇 번 곱씹어 읽어보다가 저도 몰래 표절을 할까 두렵다. 하지만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좋은 독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아니, 독자의 결말은 작가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각설하고, 하나의 글을 읽고 나면,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 어떤 글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장벽 너머의 베로니카를 읽을 때는 소설에 채도, 깊이감을 담고 싶다는 생각을 되새긴다.

 

두 가지 관점에서 이 소설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표현, 두 번째는 서사이다. 서사 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서 읽으면 좋겠다.

 

1. 표현-거친 손길로 그린 유화처럼

장벽 너머의 베로니카는 표현이 정교하나, 아름답다고 하기는 어렵다. 물론 아름답다는 것에는 사람마다 그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내게는 그랬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짙은 채도의 문장들은 유려하기만한 문장보다도 더 깊게 풍경을 그려낸다. 마치 새하얀 유화를 보는 것 같다.

붓에는 한 가지 색의 물감 만이 묻어있고, 물감은 거칠게 캔버스에 닿았으나, 물감이 남긴 그림자가 짙어 깊이 있는 작품을 이루어낸다. 내게는 어려운 일이기에 부러운 문장력이다.

예시를 들고 싶으나, 어떤 것이 그러한 문체를 잘 보여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직접 읽어보시라.

 

2. 표현-눈과 코가 모두 아리게

학교에서 지겹도록 배우는 말이다. 하얀색은 순수함을 상징하며, 차가운 느낌을 준다고. 그 위의 붉은색은 하얀색과 대비되어 더욱 붉게 느껴진다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 예시로 교과서에 나온 시에서 그러한 감각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감각을 나는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었다.

새하얗다. 이따금 한 번씩, 피어오르는 숨결도 새하얗게 얼어붙는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그저 깨끗한 설원에, 차가운 온도가 그대로 느껴진다. 온 사방의 눈이 햇빛을 반사해 눈이 아린 것만 같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아무래도 너무 집중해서 핸드폰 화면을 보느라 안구건조증에 걸린 모양이다.

그 위에 떨어진 따듯한 핏방울은 선명하고 아릿하다. 그저 붉지만은 않은, 살짝 검은 빛깔이 도는 피의 색이다. 녹슨 쇠의 냄새가 얼어붙은 코를 뚫고 들어온다. 코마저 아리다.

많은 묘사 없이도 이러한 감각을 전할 수 있다는게 부럽다.

 

4. 서사-생명을 사랑하는, 그러나

베로니카는 늑대를 쫓고 있다.

늑대를 데리고 가야할 곳은 더이상 없다. 그러니 베로니카에게는 늑대를 쫓아야할 의무가 없다.

그러니 베로니카가 늑대를 쫓는 이유는 늑대가 품은 ‘수정’때문일 것이다.

작중에서 수정이 무엇인지 자세히 나오지는 않으나, 위험한 무언가인 것은 분명하다. 베로니카는 위험한 수정을 품은, 위험한 늑대가 누군가를 해칠까 걱정하는 것 같다.

베로니카의 돌아갈 곳에 대한 물음에 대한 표현을 보면 그 누군가는 아마 그녀와는 상관 없는 인물일 것이다.

‘남’의 생명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늑대를 쫓아 가던 길, 그녀가 만난 남자를 도움 것도 마찬가지다. 그날 처음 본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고, 상처를 지혈한다. 역시 ‘남’을 돕는 행위이다.

결국 늑대를 찾은 베로니카는 늑대를 죽이면서도 늑대를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늑대를 죽여야하기에 죽이지만, 그 생조차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베로니카가 그녀 자신의 생명을 귀하게 여겼는가하면, 확신할 수 없다. 작중 등장하는 베로니카의 생각은 다면적이기 때문이다.

베로니카는 누구였을까.

아무리 전쟁이 만연한 세상이라도 일반인은 알 수 없을 것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마 많은 것을 보고 경험 했을 것이다. 특히 삶과 죽음에 관련된 일들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모인 결말에서, 그녀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맨 처음, 늑대를 쫓은 것도, 다른 사람의 생을 걱정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을 내던질 곳이 필요했던 것일지 모른다.

이 짧은 소설로 베로니카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설령 단편이 아니라 장편일지라도.

베로니카는 누구였을까.

그녀가 진정으로 누구였는지 말해줄 사람이 남아있을까?

그녀의 생이 그 차가운 설원에서 끝나도 괜찮은 것이었을까?

잘 짜인 기승전결, 짧은 이야기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5. 서사-편집부 추천사에 대한 첨언

내게는 편집부의 추천사에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없는 점에 관련해서 몇 마디 덧붙이고 싶다.

세계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판타지 N년 차 독자들은 이미 단어만으로 어떤 사건이 있었을지 추측할 수 있다. 오히려 흐릿한 사건의 전말이 베로니카라는 인물을 더욱 부각시킨다. 독자들은 알아서 설정을 채워넣는다. 흐릿한 명암에 정교한 무늬를 그려넣는다. 베로니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두 설명했다면, 오히려 매력이 줄어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내게 이 소설을 뚜렷하지 않아 아름다운 인상파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물론 판타지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그저 난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판타지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이 소설은 선물 같은 글이 될 것이다.

다만,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그 대전쟁에 대해, 북부에 대해, 수정에 대해, 마법에 대해, 베로니카에 대해.

 

내가 글을 쓸 때, 단문응원 하나가, 리뷰 하나가 너무도 큰 힘이 되었다.

내 리뷰로 과카돌리 작가님께서 힘을 받아서, 이 세계관의 다른 작품을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맞다.

이건, 리뷰가 아니라, 사심을 담은 연작 기원 축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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