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재미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적당한 분량을 톡톡 튀는 작가의 글솜씨를 즐기며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호러의 공식에 충실하게 초현실적인 사건이 제시되고 그 원인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에서 중간중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소재와 서술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초현실적인 사건에 대한 현실적인 해답이 제시되는 듯 했으나, 마지막에 다시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되죠.
혹시라도 다른 해석이 가능할까 글을 뜯어 보았지만 결론은 명확하더군요.
나는 기다린다. 답안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앞에 던져진다.
…
티셔츠를 훌렁 벗고 돌아서는 녀석.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타이트하게 잘 짜여진 한 편의 이야기입니다.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롤러코스터를 타고 한 바퀴 돈 느낌이에요.
여기서 제 의문은 작가님이 이 소설에 리뷰 공모를 걸었다는 데 다다릅니다. 이렇게 깔끔하게 잘 쓴 호러 소설에 무슨 리뷰를 할 수 있을까요. 추천이나 단문 응원이라면 얼마든지 좋겠지만요. 결국 무언가 적어보자고 시작한 제 리뷰도 단 2매에서 할 말을 다 해 버리고 막히게 됩니다. 그때 문득 HY님이 작성한 무려 38매짜리 리뷰, 리뷰라기 보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그 리뷰가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버터칼님은 리뷰를 공모한 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글을 읽고 한껏 끌어올린 호러 에너지로 리뷰를 빙자한 소설을 쓰면, 가장 마음에 드는 한 편의 소설을 채택하려는, 리뷰 공모를 빙자한 공모전이었던 것입니다. 상금은 20골드.
그래서 시작합니다…
그 녀석이 눈에 띈 건 신환회 때 부터였다. 신입생인 주제에 마치 세상을 다 아는 것 마냥 떠들어 대는 꼴이 마음에 들었다. 밤낮없는 입시 준비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소설 하나 읽어 보지 못했을 녀석들에게 스티븐 킹과 스즈키 코지라면 적당히 흥미를 불러 일으키며 자신의 지식을 풀어 놓기에 딱 좋겠지.
그 녀석은 초자연현상 전문가로 소문이 나는 것과 동시에 연애 문제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역으로도 유명해졌다. 그냥 듣고 싶은 정답을 말해 주는 것 뿐인데도 감동하는 사람들이라니. 어쨌거나 나에게는 잘 된 일이다.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슬쩍 불러내 이빨자국을 보여 주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뻔히 보이는 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이다. 입 안에 고이는 침을 삼켜대느라 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걸 보여주면 진저리를 치며 슬슬 피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도 이 녀석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억지로 설명을 가져다 붙이느라 안간힘이었다.
일단 물러났지만 녀석은 이미 손아귀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두려움. 모든 일에 합리적인 설명을 붙여 질서를 세우려는 그 안간힘은 그 질서가 무너졌을 때 그 녀석의 바닥에서 부터 드러날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녀석은 기이를 보았다. 그리고 그 기이를 지우려는 녀석의 안간힘은 호기심이란 이름으로 녀석의 발목에 족쇄를 채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 한 통으로 녀석은 끌려왔다.
녀석의 손에 들린 DVD에 새겨진 ‘주온’이라는 글자를 봤을 때, 난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녀석을 깨물어 줄 뻔 했다. 귀여운 녀석. 소주 세 병을 까며 영화를 보고나서 녀석이 묻는 말에 난 무심코 대답했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그냥 곱게 뒤져라”
알아는 들었을까. 역시나 녀석은 모든 일엔 원인이 있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설을 풀기 시작했다. 그래 그게 너의 세계지.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단다. 네가 아무리 조심하고 죄 안 짓고 살아도, 저주는 아무 원망도 없이 슬그머니 나타나 널 깨물고 사라진다는 걸. 너는 그냥 무력하게 그 운명을 받아 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내일 쯤엔 알 수 있겠지.
“너 사람 죽였냐?”
그 녀석의 질문에 문득 A가 생각났다. 아직 살아있을까. 지금쯤이면 그 하얀 알몸이 시퍼런 이빨자국으로 뒤덮였을 걸 상상하며 A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직 살아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 견딜 수가 없었다.
녀석이 잠든 틈을 타서 슬그머니 아래 층 침대로 내려갔다. 악몽이라도 꾸는 듯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녀석에게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댔다. 허리춤에 집어넣어 서서히 티셔츠를 밀어올리는 내 손길에도 녀석은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잔근육이 느껴지는 녀석의 등에 조심스레 이빨을 가져다대고는, 조금씩 조여갔다. 고통은 없을 것이다. 날카로운 이빨이 녀석의 살을 파고 들어가자 혈관에서 배어나온 녀석의 피와 이빨을 타고 흘러내리는 내 타액이 뒤섞였다. 나는 잠시동안 녀석의 몸 구석구석으로 내 저주가 퍼져나가는 것을 음미하다가 천천히 깨물었던 살덩이를 놓아 주었다.
덜덜 떨리던 녀석의 어깨가 조용해졌다. 서서히 돌아 눕는 녀석의 눈은 붉게 떠져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나를 더듬는 손길을 느끼며 나는 조용히 돌아 누웠다. 그리고 녀석이 차가운 이빨로 내 등에 저주의 인장을 남기는 순간을 만끽했다.
다시 침대 이층으로 올라와 눕고도 한참이 지나, 녀석은 깨어났다. 녀석의 몸 구석구석 퍼진 공포는 이제 아주 작은 발소리마저 녀석의 신경을 긁어대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절망적인 공포에 미쳐가다가 녀석은 스스로를 물어 뜯게 되겠지. 그 저주를 다른 사람에서 쏟아 넣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오래지 않아 녀석은 자신의 살조각을 입 안 가득 채우고 죽어갈 것이다.
너무 흥분했는지 몸 속의 피가 미친듯이 돌았다. 그렇게 저주를 쏟아 넣었는데도 또 다시 이빨이 간지러웠다. 그래, 딱, 딱 한 입만. 나는 벌떡 일어나 손목에 이빨을 가져다댔다. 부들부들 떨리던 몸은 손목 뼈와 이빨 사이에 짓눌려 세포들이 터져나가자 겨우 진정되었다.
녀석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의식은 완성되었다. 뭔지도 모르고 3만 2천원짜리 밥을 입 속으로 우겨 넣는 녀석의 모습에 또 다시 웃음이 나려는 걸 겨우 참았다. 사우나에서, 녀석은 미친듯이 내 등의 이빨자국을 문질러 댔지만 이미 계약은 이루어졌고 저주는 되돌릴 수 없었다.
“뭐 하냐?”
“아니. 새끼, 때 졸라 많네.”
“그만 밀어 새꺄. 거죽 다 벗겨지겠다. 돌아봐. 등짝 좀 보자.”
녀석의 등짝 한 가운데에는 대문니 하나가 살짝 비뚤어진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래도 되는 건지… 이상 리뷰 아닌 리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