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폭로 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구토맨이야 (작가: 이규락, 작품정보)
리뷰어: cedrus, 3월 15일, 조회 100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부정 채용, 이주노동자 차별, 산업 재해, 스포츠 승부 조작, 개인정보 유출 등등. 경중을 막론하고 <구토맨이야>에서 읽어낼 수 있는 문제는 차고도 넘치며, 이는 몇 문단만 읽어보아도 분명해진다. 하나하나 골라내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 싶을 만큼 많은 것이 들어 있는 이 글에서, 각각의 의미를 엄중하게 추적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이토록 많은 문제 제기를 단 한편의 글 안에서 가능하게 만드는 힘, 그런 응집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상대방을 태권도 기술로 거꾸러트려 공을 가로채는’ 고릴라 행성식 조기축구, ‘확장현실상의 아바타를 온몸으로 조종해서 비보이 기술로 상대방 아바타와 공을 주고받는’ 비보이민턴, ‘격파 보호 장비와 점수를 계산하는 센서를 급소에 매달고 진행’되는 급소 격파 대결. 글을 읽다보면 이런 유별난 스포츠 경기가 여럿 등장한다. 오늘날의 평범한 스포츠와 별다를 것도 없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이어지는 경기 장면과 선수들의 묘사는 연신 현란한 이미지로 읽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것만이 아니다. 깡쥐 행성의 깡쥐다리, 깡쥐꼬리, 깡쥐코 위성이라거나, 개꿀잼 킹갓 레전드 네이밍, 개뼈다귀시에 위치한 개뼈다귀시립병원, 카페 던킨벅스 얼룩아지중앙역 지점 등 범상치 않은 명칭들은 발견하는 순간 뇌리에 박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구토맨이야>는 모든 이름과 인물과 장소에 있어서 진지함을 거부한다. 생소한 단어의 조합과 경악할 만한 장면들을 쉴 새 없이 쏟아 붓는데, 이러한 이미지에 사로잡히면 놓치기 쉬운 것들이 생겨난다. 홀린 듯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서야 글의 구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여유가 생겼고, 곳곳에 분산된 장면들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연결해보면 얼마나 촘촘한 의미 구조가 발생하는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과도한 이미지와 감정을 모두 걷어내면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해보자면, 한 노동자가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다 곤경에 처한 다른 노동자를 돕는다. 사고를 당하고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에게 특이한 힘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를 빌미로 오랜 친구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고생 끝에 같은 처지인 사람과 합심해 모든 비밀을 밝히기로 마음먹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이 모든 과정을 웃음기를 걷어내고 건조하게 서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냉담한 현실을 고발하고, 힘없는 이들의 절망을 증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토맨이야>는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미지의 과잉과 감정적인 충격을 통해, 이 모든 걸 부조리한 희극의 형태로 그려낸다. 인식의 낙차는 뼈아프다. 웃음 뒤에 숨어있던 것들을 끄집어내는 순간은 무척이나 섬뜩하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갓김치로 대표되는 사회의 구조가 글 안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된다는 사실이다. 범죄에 손 뻗기 쉬운 환경은 이미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필요한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법의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요령’이다. 진우와 영수, 정규가 속한 사회가 절대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돈’이다. 갓김치 주식회사로 대표되는 기업은 적극적으로 돈이라는 가치를 전도하고 있으며, 돈이 아닌 것은 생각도 못하도록 사람들을 조금씩 압박해 간다. 이들이 자리잡은 사회에서는 돈의 우상화를 경계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실패를 보상하려 한다. 여기서 약점을 드러내는 사람은 먹이사슬 가장 아래로 밀려난다. 돈이 최고의 가치이자 만인의 행동 원리가 되는 사회가 어떻게 그려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특정 인물 혹은 상황으로 대표되는 장면의 연쇄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대기업이 만들어내고 사회가 공고히 하는 가치는 특정 장면들에서 명확하게 작용하고 있다.

 

1. 정규

낮잠 자느라 방심한 사이 내가 들어와 파이를 아작내버릴 줄은 몰랐을 거다! 이상하게도 피칸 파이는 군침이 도는 겉모습과 달리 더럽게 맛없었다. 그러나 식탐꾼이었던 정규는 절반가량 손으로 퍼먹은 뒤, 가래침마냥 찐득찐득한 시럽이 잔뜩 묻은 손 그대로 조기축구를 하러 나갔다.

정규의 첫 등장이자 진우의 놀라운 능력이 발휘되는 시작점이다. 이야기의 끝까지 확인한 지금은, 이 장면에 정규라는 인물의 핵심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상황상 진우의 것이 분명한 피칸 파이를 멋대로 집어먹으며 오히려 진우를 책망하고, 맛도 없지만 공짜로 얻은 피칸 파이니까 절반이나 먹어치운다. 타인에 대한 고려는 일절 없으며 비위생적이기까지 한 행동은 이후 보여주는 비윤리적 행보와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정규라는 인물 뿐 아니라 글의 뼈대가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말도 없이(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절반가량 퍼먹고는(맛이 아니라 ‘소유’ 자체가 더 중요하며) 시럽이 묻은 손 그대로(위생 관념을 비롯해 각종 사회적 문제에 대해 둔감한 채) 내 볼 일을 보러 떠난다.

정규는 빈털터리가 되어 허름한 집에 복귀한 진우를 손가락질했다. “멍청한 새끼, 그러니까 나랑 사업이나 하쟀잖아!”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온 진우에게도 박한 반응을 보이지만, 그가 구상하던 사업이란 것도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은 못된다. 그러나 진우와 달리 정규에게는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는데, 사회의 규칙을 체화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편법으로 승리하는 방법을 알아내고, 이를 사업화하며, 법망을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사업을 확장할 때는 상대의 약점부터 잡는다.

ㅡ증거를 다 남겨야 한 명이라도 뒤통수를 안 치지 임마. 기다려 봐. 여기 원장이랑 내가 아는 사이래도?

정규가 사업을 구상하고 확장하는 과정은 타인을 연루시키는 것으로 시작된다. 녹화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정규가 예비 고객들을 만나며 기록을 남기는 행위는 진우의 능력을 탐구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을 미리 차단하려는 시도다. 비밀스러운 행위인만큼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더라도 결코 혼자 죽지 않겠다는 심보가 그대로 드러난다.

갓김치가 깡쥐코의 토지를 야금야금 차지하다가 위성 전체를 독점한 것처럼, 정규는 중대한 사업 얘기로 진우를 구슬려 이용한다. 도핑 검사 기계로도 감지할 수 없는 특별한 재조립 음식, 진우가 토한 음식을 개뼈다귀시 중산층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팔면서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 갓김치가 타레스를 완전히 장악했듯, 정규가 진우를 마음껏 휘두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 영수

하루만에 진우는 영수가 진짜 위장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셔틀에서 대변에 관해 주절거린 이유는 만성적인 위장질환을 설명하고자 한 건데 승무원이 웃어버리는 바람에 농담거리로 변질된 것이다.

영수는 진우가 특이한 능력을 얻게 되는 원인의 일부이며, 타레스에서 일어난 일들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한다. 영수가 그만의 배설론을 진지하게 설파하는 장면에 금방 밀려나 버리기는 했지만 상비약조차 준비되지 않은 발전단지의 근무 환경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영수가 이 층 침대에서 절규했다. “뱃속에서 탈출시켜 달라는 대변의 속삭임이 들려!” 타레스에 도착한 이후 줄곧 이삼 일에 한 번 가까스로 싸고 있었다.

영수는 배변 활동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겪는다. 이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사고 이후에 변화가 생기기는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그려지긴 했으나 영수의 문제는 다른 장애로 치환될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연유로 영수의 존재는 발전 단지에서의 일을 단순히 웃어넘길 수 없게 만든다. 여러 신세대 전문가가운데 한 명이라고는 하나, 영수는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개인적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근무 환경을 노골적으로 부각시킨다. 당연히 개개인마다 다른 특징이 있고 다른 문제를 경험하기 마련인데, 갓김치와 타레스의 발전단지에서는 이러한 사실에 일률적으로 대처한다. 만성적 위장질환에 대해 토로하고자 해도 웃어버리는 바람에유야무야 흘러가버린 장면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장면에 대응되는 것이 갤락시휴먼 파이브이다.

석중은 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패널을 꺼내 영상을 재생했다. 대충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일을 대신해주는 내용의 광고였는데, 자세히 보아하니 한 대의 인조 신체에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접속해서 분야가 다른 각종 업무를 원격으로 처리한다는 의미였다.

신세대 전문가들을 제외하곤 모든 인력이 갤락시휴먼 파이브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아마 가능하다면 갓김치 측에서는 전문가마저도 모두 갤락시휴먼 파이브로 대신하고 싶었을 것이다. 인간은 그럴 수가 없다. 모든 분야에 통달할 수도 없고, 개개인의 특성을 무시할 수도 없다. 위성 지구에 일하러 온 이들을 한 명의 노동자가 아닌, 여타 시제품들과 같은 노동력 취급한 것이 놤양011 사고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상비약도 없냐는 불평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워낙 기상천외한 사고였다는 점은 차치하고, 영수의 만성적 위장질환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비책(혹은 안전대책)을 고려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는 아니었을까. 내부와 외부의 오염을 구분하지 않고 오염 범위를 최소화하는 데에 주력한 놤양011의 판단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놤양011은 사타구니에서 곧바로 유독성 물질을 감지했다. 이 물질은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뿐만 아니라 똥독이라는 엄청난 질병의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재앙이었다. 쫄쫄이 주인은 이미 엉덩이가 사정없이 오염되었다. 놤양011은 주인을 포기하기로 했다.

외부의 시선에서 보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판단이지만, 사람이 없고 시스템만 있는 이곳에서는 이게 당연한 판단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밀폐된 쫄쫄이안에 갇힌 영수는 마구 날뛰기 시작했고, 화면에 보이는 그는 팔다리를 채찍처럼휘두르는 스판덱스 광인으로 보인다. 대피 방송이 나오는 데다 위성 경찰대에서는 살상 드론까지 출동시켰다고 하니, 놤양011에 의한 피해자가 순식간에 위험인물로 전환되는 과정은 무서울 정도로 신속하게 진행된다. 진우의 결심이 아니었다면 그는 괴인인 채 처분되었을 것이고, 지침을 따르지 않아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으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처음 하수구에서 똥을 쌀 때는 내 신세에 눈물이 났어. 어느 날 더러운 하수구 썩은 냄새를 맡으며 싸는 와중, 네가 떠올랐지. 나만 이상한 능력이 생긴 게 아닐 거라고!”

타레스에서 죽을 위험에 처한 영수를 구한 건 진우였고, 정규에게 능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진우에게 희망을 준 것은 영수였다. 두 사람이 겪는 문제의 양상은 꽤 다르기는 하지만 갓김치 주식회사에 의해 산재를 은폐당하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데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타레스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의도하진 않았지만) 불합리한 상황을 수면 위로 부상시키던 영수는 이번에도 새로운 국면을 끌어낸다.

 

3. 구토맨/진우

이봐! 저 사람 그냥 바지에 똥을 쌌을 뿐이라고요!” 진우는 벌떡 일어나 스크린에 대고 다그치면서도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진우의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간이다. 채용 과정은 의심스럽지만 멀리 타레스까지 일을 하러 왔고,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하루 종일 혹사당했으니, 정확히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긴 어렵긴 하다. 다만 이 순간 이후로 진우는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며, 갓김치에 의한 산업재해와 정규에 의한 노동력 착취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런 중요성과 함께, 작중에서 유일하게 타인을 향한 선의가 작용한 장면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려는 선의나 친구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약점이 된다. 이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우리가 긍정적으로 여기는 미덕이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한다는 게 명백하다

게다가 영수가 날뛰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무엇보다사람이 단지 똥을 지렸을 뿐인데 살상 드론에게 총알 세례를 맞고 죽는 꼴을 가만히 앉아 구경할 수는 없었다!

영수는 타레스에서도 지속적인 불편함을 겪었고, 사건 이후 불편의 종류가 달라진 케이스였던 반면, 진우에게는 이전에 없던 현상이 발생한다. 진우가 토해낸 음식은 어째서인지 멀쩡한 음식의 형태로 재조립되며, 이걸 섭취한 사람은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이 향상된다. 맛이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해도 잘만 쓴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도 잠시뿐이다. 진우의 능력을 가장 먼저 알아챈 정규는 이걸로 스포츠 선수 도핑이라는 사업을 떠올린다.

토하고, 한 시간 뒤 음식을 먹고, 다시 토하고. 다시 먹고, 토하고! 진우는 하루에 열 번은 넘게 위장에 허리케인이라도 발생한 것만 같은 복통에 휘말려 자신이 뭔가를 먹으면 소화시키는 음식이 있는지, 허기에 시달리기나 하는 건지, 무엇을 토하고 무엇을 끼니로 때우는 건지 하나도 분간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며 초능력이며 하는 것들이 일반적인 영웅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초능력이란 돈이 되는 특이한 자원에 불과하고, ‘~은 가까운 친구에게 착취당한다.

진우는 정규가 재조립된 음식을 들고 거래를 하러 외출하는 시간에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놀랍도록 잘되는 사업덕분에 정규는 미래의 금융인사가 된 자신을 상상하는 반면, 진우는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며 하루하루 괴로운 시간을 보낸다. 어디까지나 진우의 능력에 기대서 가능한 사업인데, 어느 순간에는 관계가 뒤바뀌어 있다. 선심 쓰듯 우리가 함께 하는 사업이라 말하지만, 이 사태의 실제 수혜자는 정규임이 명백하다. 진우는 더 이상 초능력자가 아니라 자원이다. 먼저 차지하고 써먹는 사람이 임자인 돈벌이 수단. 여기서 진우의 상태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고, 사업의 수익성을 제외한 다른 문제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진우는 자신만 초능력의 고통 속에 살고 있지 않다는 동질감에 입을 떼려고 했다. 그러다 정규가 떠올랐다. 잠시만, 이 사람한테 우리가 학부모들한테 토를 팔아먹었던 일에 대해 말해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스포츠 승부조작에 가담한 걸 들킨다면? 이거 잘못 털어놓았다가 교도소에 끌려가는 거 아닌가?

결말은 어땠을까. 영수에게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대중 앞에 자신의 능력을 보이는 일은 진우에게 있어 이중의 굴레에 맞서는 일이기도 했다. 갓김치가 은폐한 사건을 꺼내고, 정규가 숨겨온 사업의 비밀을 공개하는 것. 양측의 해코지에 대비해야만 했던 상황에서, 진우의 약점은 다시 한번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진우는 정규에게 아무것도 알리지 않고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규에게 가담하긴 했지만 스스로 바보 같이 행동해왔다고, 뒤늦게 깨달은 진실을 견디지 못하고 메시지를 전송했다. 그런데 단순히 정규에 대한 복수심만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진우에게 정규는 룸메이트이자 친구였다, 이때까지도. 갓김치의 해코지는 걱정해도 정규로 인한 위험은 상상조차 못했다. 갑자기 생긴 능력 때문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이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4. 갓김치 주식회사

진우는 본사가 아니라 인력업체를 통한 계열사 서비스업종에 지원했는데 어떻게 그 정보가 갓김치 에너지사로 들어간 건지 모르는 채 신세대 전문가명함을 달고 여기까지 파견된 것이다.

모든 일이 시작된 3개월 전 타레스로 돌아가보자. 진우는 지원하지도 않은 기업에 고용되었으며 타레스로 파견되는 운송 셔틀 안에서 아무리 고민해보아도, 채용 기준조차 짐작할 수 없다. 발전 단지에 도착해서는 하루 종일 위험한 환경에서 일을 해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 시판도 안된 보급품들이 망가지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데다, 진우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역할은 단순하다. 삼십 년 넘은 값싼 작업 로봇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값싼 노동력이다. 작업 로봇보다 값나가는 보급품들은 어디까지나 효율을 위한 물건으로, 노동자들은 보급품 덕에 안전한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보급품이 망가지지 않게 보호해야 할 처지다. 안전보다 효율, ‘전문가보다 기슘엑스가 중요한 환경에서 안전 사고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진우는 질질 끌려가면서 벽에 어깨를 들이받아 아픔에 겨워하는 와중, 발전기 내부로 향하는 개구가 활짝 열려있는 걸 보았다. 끊임없이 작동하는 프레스기와 터빈 한가운데에 빛을 발하는 물체가 있었다. 저게 왜 열려 있지?

놤양011 사건과 더불어 결국 사고가 터졌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열려 있으면 안 될 장치로 보이는 개구가 개방되어 있다. 어쩌다 발전기 개구가 열려 있었는지, 진우와 영수의 사고 이후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이야기가 진행되어도 결국 밝혀지지 않는다. 갓김치가 어떻게든 은폐하려 했고, 실제로도 효과적으로 은폐에 성공한 사례이다. 개구의 개폐 뿐만 아니라, 진우와 영수가 겪은 사고 자체도 재산 손괴 범죄로 조작된다.

당신, 권진우는 갓김치 에너지발전사에 귀속된 제품 LEX0123를 손상시킨 사건에 연루되었으며, 갓김치 건설과 위성 주거 관리 복지재단이 주관하는 타레스 주거 도시 계획에 지대한 위협을 드리웠습니다. 실제로 이영수 씨는 현재 재산 손괴 범죄에 관해 위성 경찰대에서 조사 받을 계획이며…”

개뼈다귀시 병원에서 깨어난 진우는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가 되어 있다. 갓김치는 각종 조항을 들이밀며 오히려 진우의 책임을 묻고, ‘자비롭게합의해 주겠다며 산재 은폐를 시도한다.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영수에게 벌어진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갓김치는 진우와 영수가 만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해했으며, 이들의 사고는 그대로 영원히 묻혀버릴 뻔했다. 영수가 진우를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그야, 쇼킹한 장면으로 주목시키는 거지. 기슘엑스가 우리에게 뭔 짓을 했는지 말이야!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못 박아버리면 갓김치도 쉽게 우릴 해코지할 수도 없고.”

갓김치가 주도한 개발 사업에서 갓김치의 시제품을 사용하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인데, 사실 그대로를 밝히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들이 도움을 받을 만한 제도가 부재하며,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직접 기자들과 연락하고 대중 앞에 서기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는 중에도 갓김치의 해코지가 따를 거라는 걱정은 당연하다는 듯 따라붙는다. 비슷한 처지이지만 피해자들끼리 서로의 상태를 따져보며 덜 추잡한 방법을 골라야 한다.

‘보호받고 싶어서 찾아왔더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 상황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지, 진우의 한 마디보다 뼈아프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한쪽에는 정규, 한쪽에는 정체불명의 검은 공중 차량, 다른 한쪽에는이것. 선택지는 결국 이 세 개 중 하나였다.

갓김치가 제공하고 정규가 악화시킨 비관적인 상황에서, 진우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내키지 않지만 자원센터 앞에서 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적어도 같은 처지인 영수와 서로 돕는 일이고, 마지막까지 진우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이것만 해내면 뭔가가 달라질 것이다. 정규에게 위협당하는 일도 끝날 것이고, 타레스에서 겪은 사고에 대해 조금이라도 보상을 받을 것이고, 아무튼 뭔가는 달라질 터이다. 그런 믿음으로 자원센터 앞에 섰건만, 진우의 마지막 용기는 빛을 보지 못했다. 모두가 우스워지는 세상에서 우스워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모든 사태를 알면서도 나설 필요가 없었던 건 갓김치 주식회사였다.

 

5. 개뼈다귀시와 긴다리행성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스포츠에 조금이라도 재능을 보이면 우리 아들이 미래의 리오넬 호두라고, 딸이 미래의 킴연켱이라고 예언 아닌 예언을 해놓고는, 청소년 시기를 거치며 나타나는 진짜 스포츠 신동들과 자식의 변변찮음을 비교하며 한껏 실망했다가, 정체불명의 악취나는 음식을 먹은 자식들이 다시 경기장을 날아다니기 시작하면 그 능력이 진짜 자식의 재능이라고 착각했다.

개뼈다귀시와 긴다리행성에서 성공은 다시 돈으로 치환되는 가치이다. 6개의 녹화 자료에서도 보았듯, 정규의 사업은 열렬한 호응을 받으며 승승장구한다. 이들이 사는 사회에서 최우선의 가치는 오직 돈이고,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긍정적인 가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승리를 위해서는 공정함을 버리고, 돈을 위해서는 신의를 버리며, 성공을 위해서 타인을 짓밟는 것이다.

사업화가 가능한지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정규의 아이디어에 즉각적이고 확실한 반응들이 돌아온다. 갑수 원장이 그랬고, 개뼈다귀시 학부모들이 그랬으며, 긴다리행성 농구팀이 그랬다. 어느 분야가 안 그렇겠냐마는, 오랜 노력과 공정한 시합이 가장 주목받아야 할 스포츠가 주요한 사업 대상이 된다는 점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닥쳐! 하던 대로 토해. 주문치는 열두 개야. 동네 학부모들보다 수십 배는 더 큰 돈이 들어올 거라고. 긴다리행성 농구팀과는 사흘 뒤에 거래하기로 했지. 넌 오늘 모두 만들도록! 벌이야!” 정규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함질렀다.

첫 등장부터 이기적인 면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고는 하나, 정규 혼자서는 이렇게까지 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토 냄새 나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혹시나 부작용이 있지는 않은지 궁금해 하지 않는 고객들의 존재가 정규의 행동을 정당화해주었다. 룸메이트의 피칸 파이나 마음대로 집어먹던 인물이 진우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이라며 가혹한 행위를 강요하는 인물로 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세했는지 모른다.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진우는 검은 차량이 갓김치 자원센터 직원용 주차장에 주차된 걸 보았다.

진우의 고난과 용기는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해는 점점 높이 떠오르며 그늘을 몰아내고, 날이 조금 따뜻해졌다고 느낀 순간에 농구공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너무나도 선명한 진실의 예감 속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장면은, 허탈하다 못해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동안의 난장판은 오직 이 장면을 위해서 준비되었다. 정신을 쏙 빼놓는 이미지들의 향연 속에 은밀히 감춰진 것을 감지하게 만들고, 가장 고조된 순간에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농구공 하나로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버렸듯이.

갓김치가 주도하고 사회가 적극적으로 동참한 부조리한 세상에서, <구토맨이야>가 오직 비관적인 전망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진우의 죽음과 막내 선수의 구속은 그 자체로 하나의 증명이자 경고로 작용한다. 약한 자를 착취하며 쌓아 올린 구조는 결국 가장 약한 고리부터 무너질 것이다. 정규의 새로운 사업 상대인 긴다리 행성 프로 농구팀, 그중에서도 막내 선수가 살인에 가담했다는 점은 경고의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자들은 은폐마저도 스스로의 손으로 행하지 않는다. 정규와 코치가 그랬고, 갓김치 주식회사가 그랬다.

모든 게 끝나리란 사실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코치와 정규는 막내 선수까지 범죄에 연루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밤 늦은 시간에 남몰래 불러내고, 토 냄새 나는 피칸 파이를 강제로 쑤셔 넣고, 농구공을 던지도록 지시했다. 피칸 파이의 효능을 몰랐다고는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람 머리에 있는 힘껏 농구공을 던지라는 지시에 순응하는 막내 선수의 모습은 먼젓번에 정규의 사업 제안을 받아들인 진우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마지막까지도 긴다리 행성 농구팀 감독과 대표이사는 코치의 단독 범행이라며 연루 의혹을 극구 부인한다. 정규는 체포되었지만 갓김치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진우와 영수의 비밀은 결국 밝혀졌지만 그들이 겪은 산업재해는 기적적인 초능력 시대의 서막으로 포장되었다. 갓김치의 주가는 무섭게 치솟고, 진우와 영수와 막내 선수는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다

 

전개만 놓고 본다면 이보다 절망적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구토맨이야>가 일관되게 그려낸 구조를 떠올려보면 결코 무시하지 못할 비밀이 이 안에 숨어있다. 그 잘난 갓김치 주식회사도 결국 진우와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 아무리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은근슬쩍 사각지대로 발을 빼려고 해도, 결국 <구토맨이야>라는 거대한 구조물 속 요소라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글은 글 바깥까지 확장된다. 철저히 글 바깥에 위치한 우리도 더 넓은 관점에서는 세상의 일부이다. 혼자 안전하고 풍족하게 잘 살겠다 해도 세상이 없으면 그런 삶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글의 결말은 사회를 향하는 경고일 수밖에 없다.

반짝 스타로 떠올랐던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이며, 기슘엑스로 만든 영양제는 대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진우와 영수가 기슘엑스를 섭취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갓김치사가 제안하는 효과 자체도 미심쩍다. 그런 의미에서 토 냄새 나는 피칸 파이 <구토맨이야>의 모든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이미지가 아닐 수 없다. 피칸 파이/돈만 얻을 수 있다면 제조 과정이나 유통, 그로 인한 부작용이나 승부 조작 같은 결과물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세상이 아니던가. 피칸 파이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나 이용 가능한 자원이 어떻게 소모되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게 돈이 되는지, 내 손에 들어올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관심도 없는 태도는, 미래에 대한 상상이나 변화, 어느 것도 가능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 상황을 유리하게 써먹는 극소수의 인간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미래를 휘젓게 된다. 구조적 은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스스로를 타인과 함께 갈수록 좁아지는 세상 속에 가두는 셈이다. 써먹을 수 있는 건 하나씩 뜯어내고, 필요 없어지면 미련 없이 잘라내고, 뿌리 끝부터 하나씩 도려내다 보면 결국엔 무엇이 남을까. 정규와 영수가 꺼내놓는 욕망은 사회 규범에 의해 억압받는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 타인을 존중하기를 거부하는 태도에서 기원한다. 특히 정규는 대기업이 만들어내는 부정적 세계관을 확산, 증폭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의 사회 규범이나 예의, 미덕을 무너뜨리는 정규의 최후가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한껏 우스꽝스럽게 그려놓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두려운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게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기만 할까? 돈이 되는지가 최우선의 가치라면, 과연 어느 것까지 돈벌이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 바닥이란 게 존재하기는 할까?

우스꽝스러운 사태에서 우습지 않을 수 있는 인물. 문제투성이 사회에서 오히려 문제 취급을 당하는 행위. 인간의 존엄성이 영양제보다 덜 중요한 사회. 풍자를 통해 성립한 구조는, 그러므로 매순간 전복을 발견하는 동시에 다시 의미를 부여하도록 유도한다. 구조를 목격함과 동시에 구조 안에 없는 것을 끊임없이 상상해야 한다. 이토록 많은 문제를 한 자리에 버무리면서도 구조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웃음을 통한 완충 작용이 일어난 덕분이다.

그와 동시에 일말의 엄숙함도 허용하지 않는 태도는 새로운 제안을 던진다. 은폐될 수 있는 것들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침묵을 지키느니 뭐라도 말해보자는 제안. 거리낌없는 솔직함은 글 전체를 휘어잡으며, 욕망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인물들은 그럼으로써 은폐된 것들을 부각시킨다. 때로는 웃음이 효과적인 폭로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구토맨이야>는 치밀하게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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